1993년 ..

어느덧 내가 군입대를 한지도 20개월 가까이 흐른 것이다.

상병6호봉 까지 오르기 위하여 나는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 그리고 밤이슬을 맞으며 아내을  얼마나 그리워 했던가.  거꾸로 돌아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고 했는데 나에게도 그런  똑같은 시간 이었지만 왜 그리도 더디게 갔던 시간들 이었던가...

병장이 그리 멀리 있지도 않았다.  고참들에게도 인정 받고 나름데로 나의 위치도 굳건히 다져진 그런 시간이었었고 군생활도 이제는 꽃을 조금씩 피울때가 된것이다.

아직 제대는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예전 이병, 일병 때에 비하면, 갓 상병일때에 비하면 너무도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군대활 이라는 것이 훈련 아니면 교육, 경계근무, 것도 아니면 남는것은 작업 아니던가.

저 산을 떠서 이 산으로 옮겨라 하면 하는것이 군대아닌가?

유난히 그 즈음  작업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날  후임 몇명과 굵기가 큰 나무를 몇그루 캐내어 다른 곳으로 옮겨 심으라는 명을 받고 작업을 하는 날이 있었다.

5명이 작업을 하였는데 그 당시 이병은 두명이었다.

이제 자대배치 받아 온지 2달은 넘긴 신병인 것이다.

군대라는 것이 잘 못해도 열심히 하려는 의욕과 목소리가  우렁차야 되는 곳 아니던가?

누구는 태어나면서 부터 삽질 잘하고, 쾡이질 잘하고 낫질 잘하는가?

그런데 유독 의욕도 없고 신병이 신병 답지 않고 작업에 성의가 없는 이병이 있었다.

(이제부터  이름과 성을 따지지 않고 이 이병을 "공이병"이라 부르자.  나에게 공부를 가르쳤으니, 아주 중요한 공부를 가르 쳤으니..)

 

작업에 나도 고참이라고  게으름을 피우거나 열외를 하지는 않았다.

어릴때 부터 해온 삽질이고 일이었으니 체질 이었다.  서투른 후임에게는 가르쳤다.

곱게 자라서 군대 올때까지 삽 자루 한번 , 이런 작업 한번 못해본 후임도 많았다.

그런데 오늘 이 작업에 너무도 서투르고 성의가 없는 공이병...

" 야  그렇게 해 가지고 날 새겠다.

임마!  삽질은 이렇게 하는거야 .  잘 보아라."

내가 시범을 보였다. 이런 저런 설명을 해가며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살짝 얼굴에 미소를 띄는 것이 아닌가?

신병이 낼 모래면 상병 선임 될 고참 앞에서 살짝 웃는다.

하도 기가 막히고 가소로워서 웃으면서 내가 그랬다.

 

" 이놈 봐라 . 고참이 직접 가르쳐 주는데 쪼개냐? "

하면서 삽자루로 장난스럽게 이마를 툭 쳤다.

그런데 이마위에 머리에 삽 자루 중간인 나무가 아닌 쇠에 맞은 것이다.

그래서 머리가 살짝 긁였다.

나는 장난 이었지만 쇠로 친 것이 미안해서

" 야 고의가 아니었다.  미안하구나.  그러게 어디 고참앞에서 까부냐. "

내가 고참이고 상대는 이병이었지만 명분도 없이 함부로 구타를 하지는 않을 때였다.

군 체계상 냉정하게 서열을 따지고 계급상의 상하 체계는 엄격했지만 작업을 하거나 같이

일을 할때면 고향 형처럼 편안하고 인간적으로 대해 주려 노력하고 있었다.

어차피 나도 똑같이 겪어온 시간들 아니었던가?

작업을 하던중 빵과 음료를 px 에서 사가지고 왔고 같이 나누어 먹던중

공이병의 머리를 보니 아까는 쾐찮았던 부분이 피가 약간 묻어 있었다.

나는 장갑으로 닦아 주었고 또 한번의 사과를 했었다.

그런 "공이병도 쾐찮습니다.  뭐 이런것을 가지고 그러십니까? "

그렇게 아무일도 아닌것처럼 지나갔고 그 보다 더한 일들도 많이도 지나갔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그 아무일도 아닌것 같은 그일이, 참으로 남들이 보기에 장난이었다 보였던 그일이,

 

나를 그 숨쉬기도 힘들게 할만큼 고통을 주는 일이 될것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그후 십여일이 흘렀고 그저 묵묵히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이병은 첫휴가를 가게 되었다.

그저 휴가를 가려니 했었다...

 

공이병이 휴가를 다녀온 다음날 바로 부대는 발칵 뒤집어 지게 되었다.

 

헌병대에서 짚차가 우리 중대에 도착해 구타사고가 일어났으니 상황보고를 하라는 것이었다.

구타 사건이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구타금지를 완전히 뿌리 뽑고 가혹행위를 근절 한다고 했지만 어디 그것이 심하진 않았지만하루아침에 이루어 진다는 말인가?     그리고 대체 누가 연루가 되었다는 말인가.

그런데 다름 아닌 나와 김상병이 상황실로 호출을 받게 된것이다.

 (김상병은 나의 한달 바로밑 후임이라 굉장히 친했고 아끼는 후임이었다, 너무 친하여 나중에는 둘이 있을때는 형, 동생 할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다.)

아니 자다가 홍두깨도 아니고 나와 김상병이 누구를, 대체 무슨일로 구타를 했다는 말인가?

 

사건 전말은 이러했다.

공이병이  휴가를 나가서 집에서 모든 이야기를  말했단다.

그리고 집 에서는 아주 끝발있는 그 누군가에게 말했단다.

 

" 김상병은 아주 집합을 너무 자주시키고, 차마 말할수 없을 정도로 가혹행위와 언행에

군생활을 감당할수 없을정도로 정신 적인 피해를 주고 후임들을 갈군다는 것이다.

그 강도가 지나쳐 도저히 군생활을 할수가 없더란다. 그리고 귀뺨을 한차례 맞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 나는 항상 욕을 살벌하게 하여 사람 기를 죽이고, 상습적으로 후임들을 집합시키고 후임들에게 공포의대상 이기에 후임들이 군생활을 하기에 사사로이 괴롭게 한다는 가혹행위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십여일 전 작업때 삽으로 머리를 고의로 내려쳐서 엄청난 피를 흘렸고

머리가 아파서 몇일을 생활하기 힘들게한 고참이다. 그때 맞았던 충격으로 군생활이 무섭고 힘들어 같이 군생활을 못하겠다는 것이다."

 

김상병과 나는 아주 사람도 아닌 인간백정에 흉악범이 되어 있었다.

너무도 어이가 없고 한심해서 우리는 절대로 그러지 않았다고 하는데도 말이 통하지가 않았다. 우리는 피의자가 되게금 만들어져 있었다.

우선 공이병은 대학때 데모 가담 또는 학생운동을 참여했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러니 이런 일들에 대하여 논리가 정연하게 말하는 것은 어렵지가 않았겠지.

사전에 벌써 이를 갈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어떻게든 등뒤로 비수를 꼽으려고 준비를 철저히

각오를 한것이었다.  아주 나와 김상병을  벼랑으로 떨어 뜨리려 작심을 한듯하다.

사람이 이토록 앙심을 품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알수가 없으니..

그리고 아주 잘맞아 떨어지는 것이 집안친척이 국방부 고급장교로 근무하고 있었기에

우리 두사람 정도는 엿 먹이기에는 힘이 들 것도 아니라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밤을 세우듯 진술서를 몇백장을 쓰고 찟고 다시 쓰고 반복 하기를 이틀여..

그 당시 작업 하였던 후임들까지 다 불여들어 확인대조에 같이 진술서를 쓰기를 또 하루..

탈렌트도 아니건만 그 많은 간부들 앞에서  그 현장과 같은 재현 하기를 수십번...

징계위원회는 사람을 아주 범죄자로 만들었고  정신을 너무도 힘들게 하는 고문이었다.

말이 생각도 나지 않건만 그 당시 했던 말을 똑같이 하라는 주문, 삽을 어느 각도로 쳐서 어떻게 맞았고  어떻게 피가 났는지, 심지어 욕은 어떤 욕을 어떻게 했는지 까지 ..

거의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나는 중죄인이 되어 갔다.

그렇게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7일이 흘러갔다.

말이 7일이지 잠은 제데로 자지도 못했지, 신경은 머리끝까지 곤두서  머리 속은 폭발 할것만 같아 사는 것이 사는게 아니었다.

 

그래.  좋다.

내가 심했다 치자,  아무리 군대라지만 내가 욕도 심하고 후임들을 집합시키고 많이도 힘들게 했다고 치자.  거친 행동을 했다고 하자, 내 자신을 합리화 시켜 내기준으로 판단하고 생각하여 후임들을 힘들게 했다고 하자.

하지만 이 군대라는 곳이 뭐하는 곳인가?

양촌리 청년들  회관에 모여 친목다짐 하는 곳인가?

아니면 중고생들 보이스카우트 주말 체험 현장인가?

왜 좋은 말로 하고 잘 동생 처럼 해주지, 때리고 욕 하냐고?

나도 묻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싶다...

 

대체 시원하게 때려나 보고 주먹질 이나 해보았음 억울 하지나 않지..

저기 김상병은 또 뭐람, 나는 삽으로 때려서  그랬다고나 하자 ..

저 친구는 얼마나 더욱 억울 하겠나....?

(공이병 정도면 죠수아님의 저서 "33세 14억 " 에 사격장 사건에서 처럼 가까이에 있었다면 나 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할  사람이다.)

 

그렇게 시간이 몇일 가면서 가장 무서웠던 적이 있었다.

일부러 공이병을 우리 가까이에 오게도,같이 있게도 하지 않았지만  저멀리 보이는

공이병에게 달려가  내안에 또다른 내가 법으로 금지된 그 어떠한 행위라고 할것같은, 폭발할것 같은  그 어떤 충동을 자제하는 것이 참으로 정말 참으로 크게  두려웠다...

그렇게 10일 가까이 흐르니 연병장을 돌던지, 군기 교육대를 가던지, 군대영창을 가던지

그래 무엇이라도 좋으니 빨리 결말이 나기를 고대 했다.

어차피 사람 죽으로 가는 곳도 아니고 어떻게든, 어느 곳에 가든 이 힘든 시간을 탈출 하고 싶었다. 이것은 사느니 사는 것이 아니었고 어데든 이순간 보다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너무도 간절했다...

 

그리고 몇일후 결말이 났다.

군대영창 15일!

15일이라..  그래 이제야 마음이 홀가분 하구나.  이제까지 이겨온 시간이 13일 이었다.

그 15일 못견디랴.   그 곳도 사람사는 곳이 아니 겠는가?

그래 이제야 숨을 제대로 쉴수 있겠구나..

무심코 던진 돌맹이 하나에 개구리가 배터져 죽었고 나는 그 댓가를 정말 무참히도 치루는 구나,  내가 알지도 느끼지도 못한 돌맹이 였는데...

 

그 밤에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일주일에 2~3 통씩 편지를 보냈는데 15일을 보내지 않으면 걱정을 하겠지.

적당한 분량으로 훈련중이고 바빠서 그런다고 군생활을 잘하는 것처럼, 나는 아주 잘 지내는 것처럼 편지 3통을 썼다.

후임에게 5일 간격으로 부치라는 당부를 꼭 전했다.

그리고 날짜는 다르게 썼고,   보고싶다,, 그리고 사랑한다 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편지를 쓰는 그 순간 만큼은 이제 까지의 모든 일들이 꿈처럼 느껴졌고

너무도 행복했다.  몇일간을 쓸수 없다는 것이 굉장이도 아쉬었지만 나는 그 순간만은

모든 두려움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이 밤이 제발 서서히 가기를 바랬고   그렇게 나는 새벽을 깨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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