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명기업의 사원에서 전경련 회장까지… 손길승의 5가지 성공비결 ] ***************
"미래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다보고 준비하는 것이다."
“제가 성공했나요? 글쎄요…. 저는 열심히 일해 온 것 밖에 없어요. 일은 우리의 삶에 존재가치를 부여해줍니다. 일은 저를 지탱해 주는 삶의 가치였고, 그 자체가 목적이었습니다. 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성공은 결코 멀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언젠가 손길승 SK 회장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이름도 없는 작은 회사의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회사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든 산증인이면서 동시에 오너가 아니면서도 총수에 오른 이유에 대한 답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는 국내 재벌들의 대변단체인 전경련의 선장이 됐다. ‘오너 클럽’의 비오너 회장이 된 것. 전문경영인이 되는 것도 쉽지 않은 터에 샐러리맨 출신의 전경련 회장 탄생은 이례적인 사건으로 비춰지고 있다. 과연 그는 어떤 능력이 있었길래 ‘재계 총리’라는 전경련 회장에 오를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을 추려보았다.
< 비결 1. ‘저 사람과 함께 일하면 좋겠다’는 말을 들어라. >
‘일이 삶의 가치이고 목적’이라는 말에서 보듯 손회장은 엄청난 일벌레로 유명하다. ‘정통파 일벌레’라는 별명도 그래서 붙여졌고 스스로도 일을 통해 생긴 스트레스는 일로 푼다고 할만큼 일 속에 파묻혀 살아온 삶이었다.
실무자 시절 그의 특기는 밤새우기였다고 하는데 그가 세운 밤새우기 최고 기록은 1박 9일. 지금까지 깨어지지 않고있다. 당연히 출퇴근이 따로 없었고 꼭두새벽이라도 일이 생기면 부하직원의 집에 전화를 걸어 업무를 물어보는 게 일상적인 패턴이었다.
업무에서는 이렇듯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그는 항상 일이 끝나면 공을 다른 사람에게 돌렸다.
몇 년 전 어떤 유형의 직원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내가 해서 혼자 공을 세워야겠다’는 사람보다, 잘한 것은 상사나 동료에게 공을 돌리고 자기는 빠지는 사람을 좋아한다”며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저 사람과 함께 일하면 좋겠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 좋은 예다. 스스로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을 중시한다. 기업경영의 성패도 사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지난 1998년 그룹 회장에 오르자마자, 그룹 내에서 영원한 맞수였던 김항덕을 야인으로 머물러있게 하지 않고 곧바로 회장 대우 상임고문으로 영입, 자신의 집무실 바로 옆에 자신의 방과 똑같은 크기의 공간을 만들어 경영상 중대한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수시로 상의해오고 있는 것은 좋은 예다.
< 비결 2. 설익은 쇠는 무기가 아니다. >
일밖에 몰랐던 손회장은 지난 94년 한 선배의 조언으로 ‘잡기’라고 할 수 있는 골프에 입문했다. 당시 그의 나이 53세. 골프 입문으로는 ‘아주’ 늦은 나이였다. 하지만 그는 ‘좀 어렵지 않겠느냐’는 주위의 우려를 핸디12라는 실력으로 보여줘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놀라는 이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떻게 50대에 골프를 시작해 핸디 12의 실력에 이르렀냐고 칭찬하지만 저는 골프가 기 수련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필드에서 정신 집중을 하며 매타 최선을 다하다 보니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골프는 집중력입니다. 한 타, 한 타를 잘 쳐야 합니다. 앞으로 어찌 되느냐를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남이 잘 치는 것을 시샘해서도 안 됩니다. 지나간 것도 잊어버리고 벙커도 겁내면 안 되지요.”
손회장의 이런 치밀함과 집중력은 그의 삶에 깊숙히 배어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난 78년부터 98년까지 전무후무한 국내 최장수 기조실장을 지낸 것. 일반적으로 대기업의 기조실장은 2∼3년마다 바뀌는 것이 일상적인데 유독 그만이 20년 동안 기조실장을 지냈다. 덕분에 ‘직업이 기조실장’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 “저는 완전히 쇠를 달군 다음에 내놓고 싶습니다. 설익으면 안 됩니다”라는 말은 그의 치밀함을 대변한다.
< 비결 3. 상대를 감동시키는 마당발 인맥관리, ‘뛰어야 산다’>
41년 경남 하동 출신인 손회장은 하동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진주로 이사해 서부 경남지역의 명문인 진주중·고를 졸업한 후 59년 서울상대에 진학했다. 이 59학번은 ‘한국경제를 움직인다’는 말이 나돌 만큼 대단한 힘을 가진 이들이 많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박용성 대한상의 회장·손병두 전경련 상근 부회장·박재윤 전 재무부 장관·이필곤 전 삼성물산 회장·김태구 전 대우자동차 회장 등이 그들이다.
이런 자연적인 네트워크 이외에도 손회장은 새로운 네트워크 형성에도 적극적이다. SK의 한 관계자는 “재계·관계·금융계 등에 구축해 놓은 손회장의 인맥은 대단하다 못해 놀라울 정도”라고 말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는 사내 공식회의만도 1백회 이상의 스케줄을 참석한 초인적인 인물.
임원 시절에는 사내 교육에 거의 빠짐없이 참석해 사원들 사이에서 ‘사장 얼굴은 몰라도 손실장 얼굴은 안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중국 진출에 있어서도 그의 이런 인맥관리는 빛을 발하고 있다. 지금도 SK의 중국 내 인맥관리를 총 지휘하고 있는 그는 중국에서 누가 온다고 하면 반드시 그 사람에 대한 기본 정보뿐 아니라 그가 신문에 기고한 내용이나 책까지 모두 구해 보고 만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공통의 화제를 찾아내고 한번 만나면 그 자리에서 친구를 만들어 버리는 그의 특기는 이제 한국을 찾은 중국 VIP들이 꼭 만나고 돌아가는 사람으로 입지를 굳혔을 만큼 탄탄함을 자랑한다.
< 비결 4. 탁월한 경영능력과 리더십 >
20여년간 기조실장이라는 자리에 있으면서 ‘빼어난 2인자’ 소리를 들었던 손회장이 지난 98년 9월 최태원 SK주식회사 회장의 추대를 받아 그룹 회장에 올랐을 때 주위에서는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으로 가득했다. 오너가 있는 회사의 수장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4년 반이 지난 지금 안팎의 우려와는 달리 손회장은 내부의 잡음을 최소화시키면서 SK를 세계적인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많은 재벌그룹이 IMF 사태라는 격변기를 맞아 대부분 마이너스 성장에 시달려왔으나, 손회장을 수반으로 한 SK그룹은 오히려 절정을 구가했다. 재계순위 5위에서 3위로 올라섰을 뿐 아니라, 내실로만 본다면 사실상 재계 2위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이처럼 기업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 것이 손길승 회장이라는 점은 그룹 내외에서 모두 인정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과의 쌍두마차 체제가 잡음없이 몇 년째 유지되고 있는 것도 손회장이 탁월한 경영능력과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SK 관계자들은 “손회장이 큰 틀에서 외곽을 튼튼히 하고 있다면 최회장은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실무를 챙긴다”고 말한다.
특히 그의 경영능력은 시대를 내다보는 선견지명과 통찰력으로 집약된다. 그는 언젠가 “나는 항상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해 왔으며, 불가능은 없다는 패기로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 왔다”고 말한 적이 있었을만큼 앞을 내다보는 혜안에 충실해 왔다.
실제로 선경직물이라는 무명 기업에서 굴지의 대기업이 되기 까지 크고 작은 변화가 있을 때마다 ‘손길승’이라는 이름 석자가 빠진 적이 없었다.그룹의 성장 토대가 된 워커힐호텔 유공(현 SK) SK증권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그리고 최근의 SK생명에 이르기까지 SK그룹의 성장은 손회장의 머리와 손끝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공을 인수하기 전에 울산에 미리 석유공장을 지어 준비했던 것이나 91년 대한텔레콤을 설립해 놓고 때를 기다리다가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룹 회장에 오른 이후에는 발 빠르게 ‘21세기 황금시장인 중국’ 진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 비결 5. 허세는 망하는 지름길 >
SK그룹에는 ‘일을 처리하는 5단계 방법’이 있다. 최종현 선대 회장 시절, 손회장이 그룹 내에 보급시킨 5단계 방법은 손회장의 일처리 방식에 다름 아니다.
일처리 5단계란 어떤 직책이나 직위에 관계없이 일을 하는 기본 방법을 정리한 것. 5단계의 첫째는 일에 대해 완벽하면서도 입체적으로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자신의 일은 본인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채 일을 수행하는 경우가 흔하고, 과거의 일처리를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둘째는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핵심요소는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다. 이렇게 찾아진 요소가 과연 회사에 이윤 극대화를 가져다 줄 것인지를 생각하라는 것이 셋째이다. 다음으로 목표와 현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요소를 모두 추출해 보고, 마지막으로 그 장애 요인을 제거할 방안을 수립하고 실행해 나가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형식과 명분을 특히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형식과 실질은 같아야 합니다. 실속 없이 외형만 추구하는 기업은 오래가지 못합니다.”SK 안팎에서 행해지는 손회장의 강연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이 말은 그의 성격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의 일상은 이 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일상에서도 그는 필요 이상으로 말을 하는 법이 거의 없다. 개인적인 문제를 회사에 대입시키는 경우도 없다. 지난 99년 3월에는 차남이 결혼을 했지만 외부에 전혀 알리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됐고, 두 달 뒤인 5월에는 모친이 별세했는데도 외부에 절대 알리지 못하게 해 신촌 세브란스 병원의 영안실이 썰렁했다고 한다.
‘SK그룹 임직원들은 절대 발을 들여놓지 말라’는 엄명에 사장단만이 간신히 조문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손회장은 그룹 회장에 오른 이후 자신의 집무실이 있는 서울 서린동 SK 본사 23층에서 북한산을 조망하는 취미를 가지게 됐다고 한다.
그룹의 미래를 생각하기 위해서다. 이제 그는 서린동이 아닌 여의도 전경련 회관의 회장실에서 북한산을 바라봐야 한다. 여의도에서 바라본 북한산이 그와 전경련에 어떤 미래를 가져다 줄지 모두들 궁금해하고 있다.
* 손길승 약력
1959년 진주고 卒
63년 서울대학교 상학과 卒
65년 선경직물 입사
78년 선경합섬 경영기획실 실장
82년 유공해운 대표이사 사장
88년 선경그룹 경영기획실장 사장
94년 한국이동통신 대표이사 부회장
98년∼現 SK그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