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즈니스위크지 선정 ‘아시아 스타’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 ] ******************
인터넷 게임 ‘리니지’를 개발한 김택진(35) 엔씨소프트 사장은 “결코 저는 게임광(狂)이 아닙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한국을 게임 천국으로 만든 사내의 체구는 작고 단단했다.
“책을 보는 것이 제 일상(日常)입니다. 게임 제작 회의에서는 역사·철학·신화·심리학 등 온갖 얘기가 쏟아지죠.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멋진 게임이 나올 수 없어요. 요즘에는 시를 읽는 중입니다. 한국의 대표 시인 전집을 다시 보고 있죠. 윤동주(尹東柱) 시는 영역본으로 읽으니 새로운 느낌이 옵니다.”
국내 300여만명의 남녀노소를 리니지 게임에 빠져들게 한 그는 책 읽느라 새벽이 온 줄 몰랐던 대학 시절을 이야기했다.
― 그런데 청소년들은 당신이 만든 리니지 게임에 몰두하는 만큼 책을 덜 읽게 되지 않을까요?
(* 현재 리니지 게임의 회원은 하루 평균 1.8시간씩 게임을 하고 있다.)
-> “우리 집에는 컴퓨터가 없어요. 아이가 기계에 익숙해지기 전에 부모와 사람과 친해지기를 원했기 때문이죠.
사람과 먼저 대화하고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좋은 엔지니어가 되고, 훌륭한 의사나 판·검사도 될 수 있어요.
제가 게임을 하는 모습을 우리 아이에게 보여주기는 하죠. 그러나 게임은 생활 안의 즐거움으로 남아야지 생활을 파괴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그는 액면가 500원짜리 주식이 23만6000원이 된 벤처기업을 이끄는 경영자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인간은 동물에서 떨어져 나온 것은 정신을 추구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진정한 실존이란 정신적인(사이버) 세계에 있는 게 아닐까요.
독서는 정신을 추구하려는 욕구에서 수동적이죠. 게임은 능동적입니다. 요즘 게임은 단순히 자극과 반응의 놀이가 아닙니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해석을 담고 있죠.
게임을 통해 많은 걸 나눌 수 있어요. 게임의 가상적 상황을 통해 더 많은 현실을 느낄 수도 있죠.”
그는 ‘아래아 한글’을 공동개발하고, ‘한메소프트’(컴퓨터 타자 프로그램)를 창립한 주역이다. 그런 그가 유희적인 게임을 만들기 위해 돈을 빌리러 다닐 때 주변에서는 한심하게 여겼다.
“게임은 컴퓨터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도전해볼 만한 분야죠. 컴퓨터란 당초 사무작업을 편하게 해주는 기능이 위주였지요.
하지만 TV가 뉴스 전달만 아니라 오락(entertainment)의 영역으로 갔지 않습니까.
인터넷도 마찬가지죠. 정보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게임에서 꽃이 활짝 필 것입니다. 게임에는 자신의 철학이나 세계관을 집어넣을 수 있죠.”
― 당신 이전에는 인터넷 게임에 도전한 이가 없었나요?
-> “일본과 미국은 비디오 게임이나 PC 게임이 발달해 있었죠. 그 쪽 승부에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무대를 바꿨죠.
우리의 장점은 다이내미즘(dynamism)입니다. 가능성 있는 분야에 돌진하는 거죠. 인터넷 망이 깔리고 PC방이 생겨난 것도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반면 기존 게임이 발달한 미국과 일본에서는 오히려 인터넷 게임으로 전환하는 데 부담이 많았지요. 그러나 우리의 독주가 계속되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은 우리가 못 가진 힘이 있어요. 올해부터 경쟁이 치열할 겁니다.”
회사의 작년 매출액은 1247억원이었다. 그 중 90%가 국내에서 발생됐다. 이 때문에 국내급(級)이라는 ‘혐의’를 받고 있다.
- > “국내에서는 직접 판매하지만 해외에서는 로열티만을 받아요. 매출액의 기준이 다른 거죠. 작년 로열티 매출이 100억원대였고, 올해는 160억원대로 늘어납니다.
로열티 매출은 그대로 수익이지요. 가령 1%의 이익이 남는 전자레인지를 팔아 100억원을 남기려면 1조원 가량의 제품을 수출해야 가능합니다.”
그가 시작할 때인 5년 전 ‘리니지’의 개발 멤버는 7명. 지금은 672명이다. “초기 멤버는 얼마나 남아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게임 업종은 잔인합니다”라고 말했다.
“위에서 정리해고를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도태된 사실을 알게 만드니까요. 아이디어 회의나 작업을 할 때 우리는 직위와 상관없이 평등합니다. 경력과 보상(報償)의 함수 관계가 없습니다.
자신이 더 이상 쓸모가 없다는 걸 깨닫고 스스로 물러나는 경우도 있고, 테스트 요원으로 들어온 친구가 게임 개발의 주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뒤 “우리 회사에서는 최고령자가 42세”라고 했다가,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게 정상이고 그렇지 않은 게 비정상이지요”라고 바꿨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끔 스릴을 느끼기도 합니다. 물론 어느 순간 제가 그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지 모르지요.
저는 가끔 산사(山寺)를 찾습니다. 왜 이 자리에 있는가를 묻게 됩니다. 돈도 명예도 사회 기여의 책임 때문도 아닙니다. 즐기기 때문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게임을 만드는 제작과정이 너무 재미있다는 것뿐이지요.”
―그럼에도 작년에 소유 주식의 평가액만 1553억원이었으니, 마음이 느긋하겠습니다.
-> “그런 말을 듣지만 실제로 돈을 만져보거나 주식투자를 해본 적도 없습니다. 이에 대해 아무런 감정의 반응이 없기 때문에 아직은 제 자신을 신뢰하는 겁니다.
벤처업계에 몸담은 13년 동안, 인생의 흥망성쇠를 바로 곁에서 봐왔습니다. 성공과 실패는 스쳐가는 바람…, 잠시 내 앞에 있다가 없어지는 허상 같은 것이지요.”
그는 작년에 미국의 한 게임전문가 그룹을 스카우트하는 데 470억 원어치의 주식을 줬다. 그의 배짱은 업계에서 화제가 됐다.
“그런 비용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었죠. 게임산업의 미래에 대해 우리는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죠.
게임에는 무한한 창의성이 발휘될 것이며, 장차 게임 속 세상에서 사람은 즐겁고 재미있고 미치게 될 것이며, 영화산업을 훨씬 앞지르게 될 것이라는….”
그에게 “당신의 몸값은 얼마인가”라고 묻자, “나를 비싸게 주고 사는 사람은 능력이 없는 겁니다. 돈을 많이 주고 데려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나를 싸게 사는 사람이야말로 능력이 있고 같이 일할 만하지요”라고 응수했다.
― 그러면 어떤 직원과 함께 일하기를 원합니까?
-> “권선징악을 믿는 사람입니다. 잠깐 속일 수는 있어도 세상을 길게 속일 수는 없죠. 결국 옳고 바르게 사는 것이 힘이 됩니다.”
―당신에게 소중한 가치는요?
-> “사람의 존재 의미는 이타심(利他心)에 있다고 봅니다. 행복감이란 내가 좋은 밥 먹고 편한 잠을 잘 때보다, 다른 사람을 도와 그렇게 만들 때 있습니다. 이타심이야말로 가장 이기적인 본성일지도 모르죠.”
◆김택진은 누구/ 온라인게임 리니지 개발 벤처기업가
김택진(金澤辰) 사장은 작년 6월 비즈니스위크지(誌)가 선정한 ‘아시아의 스타’로 뽑혔다. 또 홍콩 의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도 ‘아시아 변화를 주도한 인물’로 선정했다.
인터넷 게임 ‘리니지’의 영향력 때문이다. 실제 대만에서는 ‘천당(天堂)’이라는 명칭으로 리니지의 강한 바람이 불고 있는 중이다. 홍콩·중국을 거쳐 일본·미국 시장에도 서비스되고 있다.
그는 바쁜 업무로 하루 평균 4 시간을 잔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육상을 했다. 중학교 때 축구 시합에서는 혼자서 14골을 넣었다. 후반전에 상대 선수들이 모두 지쳤을 때 혼자만 뛴 결과다. 별명이 ‘정력맨’이었다.
리니지 게임은 중세 유럽을 무대로 주인공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왕권을 찾는 내용이다.
게임을 하는 과정에서, 마법의 액체를 마시면 갑자기 캐릭터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투명 망토를 쓰면 투명인간이 돼 괴물이나 상대방 캐릭터를 쉽게 물리칠 수 있다.
괴물을 물리치면 돈을 벌어 더 좋은 장비의 구입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일부 게임에 몰입한 청소년간에는 해킹을 통해 다른 게이머(gamer)의 무기를 훔치거나, 실제 돈으로 거래하는 일이 빚어져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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