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성 최초 미술품 경매사 박혜경 ] *****************************



<“명작은 내 손에서 완성된다.”>

“다음은 가장 화제가 됐던 박수근 화백의 유화작품 ‘아이업은 소녀’입니다. 5호 크기의 이 작품 경매는 3억9천만원부터 2백만원씩 호가(呼價)하겠습니다”

이달 초 서울 종로구 평창동 서울옥션 지하 1층 경매장. 미술품 수집가, 미술관 관계자, 화랑 주인, 미술전공 학생 150여명이 경매가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들의 시선은 모두 검은 원피스 차림의 미모의 여인에게 집중됐다. 그들의 눈동자는 ‘미술품 경매사’ 박혜경(朴蕙卿·35) 팀장의 당차고 유연한 말솜씨와 손짓에 따라 한 무리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4억1천4백만원 나왔습니다. 자, 4억1천6백만원 없으십니까?”. 시작부터 응찰자들의 열띤 경합. 다른 작품 같으면 벌써 새주인을 찾았을 시간인 2분을 지나 금세 4분이 넘어갔다.

“4억9천8백만원 전화응찰 확인해 주십시오. 자 이제 5억원입니다. 5억, 5억. 5억2백만 있으십니까? 5억2백만원 나왔습니다… 5억5백만원. 더 없으십니까? 자, 세번 호가하겠습니다. 5억5백만, 5억5백만, 5억5백만원. 182번 손님에게 낙찰됐습니다”

경매 시작 5분여 만에 ‘땅’하고 방망이 소리가 장내를 경쾌하게 울렸다.
국내 현대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였던 박화백의 또다른 작품 ‘초가집’의 4억7천5백만원 기록을 한달 만에 3천만원 경신하는 순간이었다.

“그런 거액을 제시한 낙찰자가 대체 누군가요?”.
박팀장은 그러나 “전세계 경매장 어디서나 낙찰자 신원은 밝힐 수 없는 게 원칙”이라고만 했다.
이날 출품된 작품 69점 중에서 그녀는 48점을 중개했다. 이날 박씨의 70% 낙찰률은 경매사상 최고 기록이며 현금으로 환산하면 22억원대가 넘는다.


박팀장의 전공은 미술과 전혀 관계없는 사학.
단국대 재학 시절 학교방송국 아나운서로 활동한 그녀는 졸업 후 광고회사 AE 생활 3년과 진로그룹 홍보실 근무 4년 뒤에 국내 최대 화랑인 ‘가나 아트갤러리’의 아트디렉터로 자리를 옮겼다. 불과 6년 전 일이다.

미술에는 문외한이었지만 미술품 마케팅 전문가가 되기 위한 꿈을 키웠다. 늘 유명작가의 작품을 보며 메모하고 화집을 뒤지면서 매일 1~2시간씩 공부를 해 심미안을 길렀다.

아트디렉터는 경매사라는 꿈을 실현시키는 ‘정거장’이었던 셈이다. 화랑에서의 2년 동안 홍보쟁이 경험을 살려 무대를 넓히기 시작했다.

케이블TV LG홈쇼핑의 ‘아트 컬렉션’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해설자로 나섰다. 시장조사를 통한 기획서 작성, 깔끔한 프레젠테이션의 귀재였던 그녀에게 화랑의 새 거래처를 뚫고 주 1회 방송을 하는 1인2역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두드리는 자에게 문은 열렸다. 99년 서울옥션이 창립 멤버 구성을 위해 ‘러브콜’을 했다.

회사 오너는 “방송에서 미술품 판매도 해봤으니 고객을 상대로 경매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박씨는 이를 두려움 없이 받아들였다.

그녀의 경매사로서의 변신은 화려했다. 국내 유일의 여성 옥셔니어(auctioneer)로 통산 60여회의 경매를 진행했고, 겸재 정선의 대작 ‘노송영지(老松靈芝)’를 지난해 사상 최고가인 7억원에 중개했다.

이 경매에서는 낙찰자를 밝히지 않는 관례를 깨고 인천 송암미술관이란 사실이 소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술관이 일반인 공개를 목적으로 구입했기 때문에 세간에 알려진 것이다.

"피카소도 예술은 돈이라고 말했어요. 명작은 감동의 대상이면서 투자 대상이기도 합니다. 돈과 관련되는 직업이니 자연히 긴장의 연속일 수밖에 없지요."

그녀는 작품을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중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정하고 정확한 진행이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가장 좋은 시작 가격과 호가 폭의 선정을 위한 마케팅 전략으로서 그녀만의 ‘호가의 룰’이 있다고 귀띔했다.

박팀장은 “미술품 경매사는 작품 가치를 고객들에게 알리고 베팅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응찰 유도뿐만 아니라 위탁자들과 상담, 작품 수급과 전시기획도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작품 선정부터 낙찰까지 대개 한달 정도가 걸린다. 프랑스는 정부 공인 예술품경매인이 있지만 그 밖의 나라에서는 자격증이 있는 것이 아니고 회사에서 자체 프로그램에 따라 선발 경매사를 교육하고 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5~6명선. 그녀는 “연봉은 일반 화랑에서 일하는 직원보다는 높은 편”이라고만 밝혔다.

경매를 진행한다고 해서 특별한 인센티브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경매사가 되기 위해서는 승부사의 기질과 매너도 중요하지만 작품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기 위해 깊이있는 공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혹 낙찰받은 후 작품구입을 포기한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될까.’ 충동이나 ‘중독’ 또는 경쟁 심리로 응찰을 한 뒤 마음이 달라지는 고객이 있지 않느냐는 일반의 궁금증을 전달해보았다.

박팀장은 “계약 위반시에는 회사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면서 “불미스런 일을 미리 막기 위해 경매 참여는 연회비 10만원을 내는 회원으로 제한된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그녀는 “경매장은 고가 물품만 거래되는 곳이 아니라 신선한 문화체험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니 가족끼리 자주 찾아달라”는 ‘홍보’의 말을 잊지 않았다.

엔지니어와 결혼, 7년 만에 낳은 아들 정우가 아직 돌이 안 지났다는 그녀는 “아이가 자라 온가족이 손을 잡고 갤러리를 돌아다닐 생각을 하면 가슴이 설렌다”고 말했다.

5월의 초록이 눈부신 북한산 자락에서 만난 박혜경씨. 그녀에게서 나는 프로의 향기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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