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동구리무’ 팔며 책 쓰는 장돌뱅이 작가 안효숙 ] **********************



“밑바닥에서 희망을 사고 판다”

물건이 넘쳐나는 백화점과 할인점이 보편화된 요즈음, 아직도 5일장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이의 심정은 어떨까? 그것도 어린 아이 둘을 먹여 살려야만 하는 아녀자라면....

충북 청주에서 의류 대리점을 운영하던 안효숙(43)씨는 IMF를 맞아 어려움을 겪은 끝에 가게문을 닫아야 했다.
남편의 술주정과 구타까지 겹치면서 모든 것을 잃고 거리로 나앉은 안씨는 ‘그냥 대충 살자’는 남편의 자포자기에 더 깊은 절망을 느꼈다.

남편의 폭력으로 상처를 입을수록 안씨는 더욱 살고 싶었다고 한다. 운명은 자신을 외면하는 듯 보였지만 말이다.

안씨는 거칠대로 거칠어진 남편을 피해, 어린 아이 둘과 함께 간신히 몸을 누일 만한 방 한칸을 얻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정말이지 무슨 일이든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심정을 갖고서.

상경한 안씨는 밀입국한 조선족 여인과 함께 식당일을 시작했다. 거리에서 빵도 구워 팔았다.
팔다 남은 빵 반죽으로 바닐라향이 역하게 코를 찌르는 수제비를 끓여 먹으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부끄러움을 없애기 위해 소주 반병을 마시고 차량들 사이를 오가며 일회용 면도기도 팔아 보았다.

안씨는 지금 전국의 5일장을 떠도는 ‘장돌뱅이’가 돼 좌판을 펴고 싸구려 화장품을 팔며 지낸다.

더 내려갈 곳 없는 인생이지만, 그래도 어린 두 아이들과 함께 살을 비빌 수 있는 옥탑 방이 있어 행복하다.

폭이 1m도 채 안되어 보이는 작은 인도(人道) 한켠에 마련한 좌판을 지나는 사람들은 안씨를 보며 아는 체 한다.

“아! 그 작가시구먼. 책 잘 읽었습니다. 열심히 사세요.”
안씨는 더욱 몸 둘 바를 몰라 어색한 웃음으로 인사를 한다.

안씨가 ‘유명세’를 탄 것은 장돌뱅이라서가 아니다. ‘젊은 여자’ 장돌뱅이여서도 아니다.

지난 2월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 석자가 들어간 책을 냈기 때문이다. <나는 자꾸만 살고 싶다>는 제목에 ‘오일장 떠돌이 장수 안효숙의 희망통신’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

4월 화창한 봄날 이른 아침, 충북 옥천의 장터에서 만난 그는 더 내려갈 곳 없는 삶을 살아 온 사람치고는 여유 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나이 마흔 셋에 몇 년째 5일장을 돌아다녔으니 말씨가 거칠만도 하건만, 안씨는 내내 수줍은 모습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오전 8시반. 벌써 자리를 잡은 장돌뱅이 이웃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눈 안씨는 중고 승합차에서 화장품이 담긴 플라스틱 소반 여남은 개를 내린다.
그리고 자신보다 몇배는 커 보이는 파라솔을 꺼내 능숙한 솜씨로 펼쳤다.

옥천농협 앞 계단에 만든 그림자가 ‘영업공간’인 셈이다. 무질서해 보이는 장터지만, 장돌뱅이들에게는 저마다 자리가 있다.
농협 앞 계단은 몇 년째 안씨의 전용공간이 돼있다.

“처음엔 화장품을 길바닥에다 펼쳐 놓고는 세 번째 계단에 앉아서 팔았죠. 혹시라도 아는 사람을 만나면 그냥 계단에 앉아서 쉬는 척하려고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두 번째 계단으로, 그 다음에는 첫 번째 계단으로 내려와 앉게 되더군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기 때문에 이젠 부끄러움 같은 건 없단다.

안씨는 면장갑으로 화장품에 앉은 먼지를 닦아낸다. 그래 봐야 이리저리 뒹군 흠집을 숨길 수 없는 싸구려 화장품인데도 정성스레 닦는다.
그리고 파라솔 그늘 밑 계단에 앉아 신경숙씨의 소설 <종소리>를 펼쳐 든다.

도대체 장사에 생각이 없는 사람 같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 호객행위를 하지는 못하더라도 지나가는 손님을 불러세워 물건은 팔아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안씨는 “모르는 소리 말라”고 한다. 손님에게 말 많이 하지 않고 편하게 물건을 고르게 하는 것이 최고라고 둘러댄다.

오전 10시 반이 지나서야 할머니 한 분이 화장품에 관심을 보이며 좌판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이날의 첫 손님이었다.

“손 터진 데 바르는 약 있수?”

“그럼요.”

능숙한 솜씨로 크림을 손가락으로 듬뿍 찍어 할머니 손에 발라 주며 “5,000원인데 단골이니까 4,000원만 달라”고 한다.

하루 4만~5만원을 번다는 안씨가 나름대로 터득한 장사법이다.


< 단칸 옥탑방에서 싹튼 ‘희망글’>

고된 삶에서 그를 지탱해준 것은 글이다. 파김치가 된 몸으로 아이들을 재우고 밤을 하얗게 새우며 글을 썼다.
글을 쓰면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고, 2년 전 암으로 작고한 어머니의 숨결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하고 사람 냄새나는 그의 글은 지방신문 공모에서 당선되기도 했다.

2001년 가을부터 인터넷에 하나, 둘 올린 메모글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안씨는 팬클럽까지 생겼다.

“영화로 제작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힘내라” 등 격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마침 그의 글을 읽은 한 출판사 사장이 책을 내자는 제안을 해와 책을 내기에 이르렀다.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고 재판, 삼판을 찍어야 할 정도가 됐다. 이 이야기가 언론을 타면서 안씨는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그냥 손 한번 만져보고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산에서 이것저것 먹을 것 사 들고 와서는 한아름 안겨주고 가는 사람도 있다.

“인터넷과 기사, 방송을 접한 사람들이 된장, 고추장, 김치까지 담가 보내주세요. 저희는 김치가 떨어진 적이 없어요.
아직은 따뜻한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아이들 평생장학금을 주겠다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돈은 정말 못 받겠더군요. 부담이 돼서요.”

안씨의 거처는 대전광역시 송촌동 한 상가건물의 옥상에 있다. 일어서면 머리가 닿을 정도인 옥탑방이 그와 두아이의 보금자리다.

게임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다는 아들 유영림(16)군과, 선생님을 꿈꾸는 딸 영비(14)양을 데리고 1칸짜리 옥탑방으로 이사 오던 날, 아이들이 “백설공주에 나오는 난장이 집 같아 좋다”며 엄마를 오히려 위로했다고 한다.

5월초 그는 옥탑방을 벗어난다. 그의 책을 읽고 비로소 사정을 알게 된 집 주인이 2층 방이 비었다며 안씨 가족을 불러내린 것이다.

“아이들이 무척 좋아해요. 옥탑방은 정말 춥고 더워서 아이들이 안쓰러웠거든요.”

스스로를 ‘장돌뱅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안씨는 이제 MBC 라디오 <여성시대> 초대 손님으로, 그리고 CBS 라디오 <행복한 아침>에 고정 코너를 맡아 5일장 이야기를 들려줄 정도로 유명해졌다.

“현모양처가 되고 싶었죠. 그런데 이젠 거지가 되는 게 꿈이에요.”

삶의 밑바닥에 있으면 위를 볼 수 있기 때문이란다. 또 욕심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돈이 좀 모이면 더 깊은 시골로 갈 겁니다. 빈집이라도 내 집 삼아 살 수 있잖아요. 그리고 거동 못하는 시골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물건 파는 방물장수가 되고 싶어요.”

올 가을쯤 장터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표현한 책을 낼 것이라는 안씨는 앞으로도 책은 계속 쓰겠노라고 했다.
글은 그의 유일한 삶의 탈출구이자 위안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옥천에 장이 서는 날이면 그는 화장품 좌판을 펴고 농협 계단에서 책을 읽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