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가 취미인 사람들은 '베텔스만'이라는 북클럽에 대해 들어본 일이 있을 것이다.

베텔스만에 대해 '책 만드는 곳이 얼마나 클까' 하는 생각을 했던 이들도 정작 회사 규모를 보고는 깜짝 놀란다.

베텔스만은 현재 전 세계 60여 나라에 뿌리를 내린 거대한 미디어 제국이다. 이 제국에는 1백 종류가 넘는 신문·잡지와 역시 1백여곳의 출판사, 24개의 TV 방송국, 17개의 라디오 방송국, BMG를 비롯한 수십개의 음반사, 그리고 온라인 서비스망이 있다.

지난 1835년 독일에서 조그만 가족 기업으로 시작한 지 1백70여년 만에 8만1천명의 직원을 거느린 세계 최대의 기업으로 성장한 베텔스만.

1940년대 말만 해도 매출액이 1백만 마르크에도 못 미쳤으나, 지금은 이보다 무려 4만1천배나 증가한 4백10억 마르크를 넘어섰다.
불과 몇 십년 전만 해도 영세한 출판사에 불과했던 베텔스만이 이렇게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 회원제 판매로 기반 일궈 >

베텔스만은 독일의 베스트팔렌주 동부 귀터스로라는 작은 마을에 본사를 두고 있다.
외양만 봐서는 도저히 전 세계 미디어를 지배하고 있는 그룹의 본사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 작은 곳에서 '신화'는 시작됐다. 그리고 그 신화는 라인하르트 몬(Reinhard Mohn)이라는 경영자의 철학에서 나온 것이었다.

올해로 만 82세를 맞은 그는 지금도 귀터스로에 있는 검소한 베텔스만 재단 사무실로 매일 출근한다.

“사무실은 깊이 생각하면서 편안하게 일할 수 있도록 정리 정돈돼 있고 조용하면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

그는 결코 호사스러운 외관과 겉치레를 용납하지 않는다.

라인하르트 몬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잿더미로 변해 버린 베텔스만의 건물에서 사업 재건에 나섰다.

당시는 생존에 필수적인 소비재를 구매하기에도 벅찬 상황이었다. 출판업이 잘 안되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견할 수 있을 만큼 경제는 피폐했고 베텔스만을 비롯한 많은 회사들은 자금난을 겪어야 했다.

라인하르트 몬은 이런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1950년 6월1일 시작한 '레제링'(Lesering)이라는 '회원제 서적 판매조직'이 그것.

'독자들이 우리에게 올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책이 독자를 직접 찾아가야 한다'는 레제링은 베텔스만과 고객들 모두에게 윈윈이었다.

출판사로서는 매출을 미리 예측할 수 있어 보다 많은 책들을 훨씬 값싸게 생산해서 많은 독자들에게 공급할 수 있어 좋았고 독자들은 가만히 앉아 좋은 책을 받아볼 수 있었다.

이같은 방식은 대단한 호응을 불러일으켜 시작한 지 1년 만에 회원수 10만명을 돌파했고, 4년 후에는 1백만명, 그리고 1960년에는 3백만명의 조직이 됐다.

당시로서는 기적에 가까운 대성공이었고 베텔스만이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으로 부상하는 기반을 마련해 준 것 또한 이 레제링이었다.

60년대에 이르자 베텔스만은 더이상 작은 규모가 아니었다. 직원수가 5천명을 넘어섰고 연 매출도 1억5천만 마르크를 넘어서는 대기업이 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라인하르트 몬은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회사를 잘 경영할 수 있었지만 회사가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다 보니 새로운 경영방식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일정 규모 이상 성장하면 모기업과 분리시켜 동반자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파트너십 모델이었다.

모기업과 분리된, 독자적인 경영권을 지닌 수익센터의 대표는 인사·자본 운영·생산에서 최고경영자와 비슷하게 수익을 분배받는 것과 동시에 상당한 경영 자율권을 보장받았다.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경영방식이었다.

물론 쓰라린 아픔도 있었다. 93년 독일 쾰른의 TV 방송국인 VOX사가 파산하면서 베텔스만은 설립 이래 가장 큰 소용돌이에 휘말려야 했다.
실질적으로 수익을 내지 못하는 수익센터들이 늘어나면서 부실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베텔스만의 경영진은 이같은 징후를 통해 내실 강화에 대한 필요성을 느껴 성장 일변도 정책을 수정했다. 사실 그것은 제대로 된 선택이었다.
경영진은 우선 각 수익센터의 정리·통합작업을 통해 90년대 말까지 그룹의 면모를 일신시켰다.

98년 11월 회장으로 취임한 토마스 미델호프는 인터넷 시대에는 무엇보다 스피드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세 가지 경영 원칙을 발표했다.

'High speed', 'Content is king', 'High Trust'가 그것이다.
이때부터 베텔스만은 이 세 가지 경영 원칙을 근간으로 하고,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전략방향을 설정해 실천하고 있다.


< 독특한 기업문화 '베텔스만 에센스' >

이제 베텔스만은 더 이상 출판사가 아니다. 베텔스만의 영역은 엄청나게 넓다.
신문과 잡지·음반·라디오·TV방송은 물론이고 온라인 서비스와 검색엔진·전자상거래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소니처럼 고객과 접점을 확보할 수 있는 콘텐츠 플랫폼 구축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기존의 서적·영화·음악 등의 각종 콘텐츠를 고객에게 직접 제공할 수 있는 다각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콘텐츠의 생산과 배분을 모두 담당할 수 있는 통합 미디어 그룹으로 성장하는 것을 비전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전 실현을 위해 베텔스만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사업 전개와 더불어 기업문화의 재구축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우리는 네트워크 문화 창조를 목표로 한다”는 미델호프의 말은 기업 내 신뢰의 문화, 빠른 생각과 판단의 문화를 더 확고하게 구축해야만 인터넷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라인하르트 몬·마르크 뵈스너·토마스 미델호프로 이어지는 베텔스만 경영자들의 철학은 형식보다는 내용을 중시하는 실용주의적 가치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
바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원동력인 것이다.

베텔스만의 직원들은 이러한 그들만의 기업문화를 '베텔스만 에센스'라 부르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전 직원들이 자신들의 자산을 기업에 투자하고 공정하게 수익을 배분받는 독특한 기업 문화, 이러한 기업 문화가 직원들이 회사의 성공을 위해 다함께 노력하도록 하는 동인이 됐으며,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직원들과 함께 나눈 성공.' 이것이 바로 오늘의 베텔스만을 있게 한 성공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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