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코리아’ 하벨야나 사장

‘돌 코리아’ 임마누엘 하벨야나 사장(51)은 두 개의 인생을 살고 있다.

전반부 절반은 두 다리로, 그리고 후반부 절반은 한 다리와 의족으로. 하벨야나 사장은 다리 하나 없는 뒤쪽 인생을 덤으로 얻은 것이라 생각한다. 필리핀인으로 현재 다국적 청과기업 돌에서 맡고 있는 역할은 ‘돌 코리아 대표이사’ ‘돌 아시아 부사장’ ‘돌 뉴질랜드 대표이사’ ‘DLC 대표이사’ 등. 그가 경영인으로서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지, 또한 얼마나 노력하는 삶을 살았는지를 보여준다.

하벨야나 사장의 인생을 변화시킨 사건은 1978년 6월 일어났다. 필리핀 아테네오 드 마닐라 대학을 졸업하고 설탕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위험한 근무지로 단신 부임한 하벨야나 사장은 늘 베개 밑에 권총을 장전해 두고 잠을 잤다. 강도 등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불의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사고는 새벽 2~3시까지 일하고, 곧바로 5시에 일어난 더운 어느 여름날 일어났다. 잠에서 깨어 장전을 풀다가 오발사고를 일으켰다. 발사된 총알은 오른쪽 넓적다리로 들어가 발꿈치로 빠져나왔다.

3주 동안 수술을 7번 받았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다리를 자르기로 의료진이 결론을 내리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는 “목숨을 잃었을 것을 다리 하나로 막았다”고 생각한다. 불확실한 상황보다는 무언가 확정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게 더 좋았다.

절단수술 중의 일화. 수술대에서 마취 처치를 해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떴는데, 회복실이 아니고 여전히 수술실이었다는 것. 물론 척추에 마취를 해서 고통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뼈 자르는 소리와 같은 수술 과정의 모든 소음을 들었다. 심지어 의료진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4시간여에 걸친 수술을 끝낸 뒤 마취약의 힘을 빌리지 않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25세의 나이에 다리 하나를 잃은 것에 크게 좌절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운동선수도 아니었고, 좀 불편하겠지만 사는 데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 다만 예전처럼 운동을 즐길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축구와 골프를 어려서부터 배웠다. 의족을 차고 축구를 하기는 불가능했고, 골프만은 포기하기 싫었다.

수술 후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마자 걷기 연습을 시작했고, 퇴원 후 한달 반 만에 업무에 복귀했다. 골프채도 다시 잡았다. 골프는 5살 때 변호사인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처음 시작했다. 소년기·사춘기를 거치면서 즐겁게 체득한 골프. 골프에는 아버지와 성장기의 기억이 담겨 있다. 사고 당시 핸디캡은 4. 그때로서는 프로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실력이었다.

동네 축구장에서 한 다리로 처음 골프 연습 스윙을 시작했다. 당연히 넘어졌다. 당장 균형을 잡기조차 어려운 형편에서 골프채를 휘둘렀다. 넘어지고, 일어나고, 또 넘어지고. 하벨야나 사장은 다시 일어났다. 그 풍경은 그러나 비장하지 않았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즐거웠다. 두 주먹 불끈 쥐고 눈물을 훔치는 그런 광경이 아니라, 즐거운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소년의 열망 같은 정겨운 모습이었다고 그때를 기억했다.

지금 핸디캡은 11~12. 싱글에 근접하는 실력이다. 스윙 자세가 달라지긴 했지만 라운딩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수영·스키 같은 계절 스포츠도 빼놓지 않고 즐긴다. 여름이면 의족이 훤히 드러나는 반바지를 입는다. 그에게 장애는 부끄러움이 아니다.

하벨야나 사장은 태생적으로 요즘 말하는 ‘아침형 인간’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침 6시 전에 일어난다. 어려서 아버지에게서 골프를 배울 때도 6시에 라운딩을 나갔다. 부모님이 아침형이었고, 장성한 딸도 그렇다.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오후 6시에 재워 다음날 아침 6시에 깨웠다고 한다.

인생을 낙관하고 부지런하기에 다리 하나의 부재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기업인으로서 경영관에서도 이러한 특성은 그대로 반영된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늘 강조하는 두 가지는 상식과 집중이다. 지난 91년부터 3년 동안 돌의 한국 진출을 진두지휘할 때나 2001년 돌 코리아로 다시 부임한 이후나 일관되게 관철시킨 경영철학이다.

하벨야나 사장은 말한다. “인생이나 경영에 장애는 없다. 극복 가능한 불편만 더러 발견될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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