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삼호중공업 박학래 반장 )
“미친 사람 아니예요?” 현대삼호중공업 건조2부 박학래(46) 반장이 한때 하루에 서너 번 씩 들어야했던 소리다.
그가 지나가면 동료 직원들은 등뒤에서 손가락질을 하며 수근거리곤 했다.
“어디가 이상한 것 아니야?”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박 반장이 무려 6번에 걸쳐 '사내 제안왕' 상을 받으면서 그를 바라보는 동료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이제는 다들 그를 부러운 눈길로 바라본다. '사내 왕따'에서 '사내 영웅'으로 말 그대로 '인생 역전'을 한 셈이다.
그가 아이디어 제안을 시작한 것은 지난 95년 말. 81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박 반장은 95년 말 전남 영암군에 있는 현대삼호중공업 조선소로 직장을 옮기면서 사내 제안을 시작했다.
동기는 단순했다. 낯선 일터에서 일하자니 서먹한 마음이 들어 빨리 정을 붙이기 위해서였다.
“하루 종일 육체노동을 하다보면 쉽게 지치고 짜증나는 경우가 많았죠. 그런데 '제안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자 현장에 있는 볼트, 너트 하나도 예사롭게 보이지가 않고 계속 머리를 굴리게 되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일이 좀 쉬워질까, 어떻게 하면 안전장치를 좀 더 튼튼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일하다보니 몸이 지치는 것도 모르겠더군요.”
이렇게 시작한 제안이 지난해 말까지 무려 1만2000건. 하루에 평균 7∼10건씩 아이디어를 낸 셈이다.
가히 '제안 중독증' 수준이다. 박 반장은 “집에는 당직을 서러간다고 말해놓고서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도 회사에 나와 혼자 제안서를 만든 적이 부지기수”라며 “부부싸움도 참 많이 했다”고 털어놓았다.
다행히 지난96년, 97년, 99년에 이어 최근 3년간 연속으로 '사내 제안왕'상을 받고 나서 부터는 아내도 물심양면으로 그를 지원해 준다는 설명이다.
어떤 아이디어를 냈냐는 질문에 답하는 박 반장의 목소리에는 열정이 넘쳤다.
“배를 만들 때는 데크에 무거운 쇠로 만든 뚜껑을 덮습니다. 무게가 엄청나서 설치할 때 현장 근로자 4∼5명이 동원되곤 했죠.
이동을 하다가 떨어뜨려 발을 다치는 등 안전사고도 종종 발생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지렛대 원리를 이용하면 훨씬 쉽고 안전하게 옮길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직접 '지그'라는 기계를 고안했습니다. 이 기계를 써봤더니 인력도, 시간도, 경비도 절감됐습니다. 물론 안전사고도 없어졌고요.”
그가 만든 '지그'는 지금 조선소 현장 곳곳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이 밖에도 부품을 한꺼번에 여러 개씩 실을 수 있는 지게차용 받침대, 컨테이너 이동용 대형 중장비 대신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이동용 간이 중장비 등 조선소 내에 그가 직접 아이디어를 내 설계하고 설치한 기구는 셀 수 없이 많다.
이렇게 회사 경비를 아껴준 대가로 뭘 받았냐고 물어봤더니 “지난해에는 총 430만원 정도 '보너스'를 받았다”고 답한다.
한 건을 제안해서 채택되면 받는 보상금은 2000원. 이 2000원이 차곡차곡 쌓여 연간 430만원이 된 것이다. 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너스다.
그는 이렇게 받은 돈으로 지난해 디지털 카메라 한대를 장만했다. 현장에서 눈에 띄는 게 있을 때마다 사진기로 찍어 제안서에 붙이기 위해서였다.
박 반장의 출근 가방에는 항상 새로 산 디지털카메라와 사내제안서, 볼펜, 전자계산기, 5색 사인펜, 다이어리 등이 준비돼있다. 연초에 받은 두꺼운 다이어리는 틈틈이 메모한 아이디어들로 벌써 절반 가량이 채워져 있었다.
1년에 다이어리 2~3권은 거뜬하게 쓴다는 설명이다.
제안을 하면서 얻는 보람을 묻자 곰곰 생각한 후에 내놓은 그의 대답이 참 소박하다.
“내가 낸 아이디어로 작업 환경이 조금씩 나아지는 게 좋고, 제안이 채택돼 받는 보너스로 동료들에게 음료수 돌리는 재미가 좋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건 퇴근 후에 항상 테이블을 펼쳐놓고 제안서를 쓰곤 했더니 '학구적인 분위기'가 조성돼 아이들 성적이 많이 올랐다는 겁니다.”
그는 “대학교에 다니는 맏딸은 이번에 장학금도 받았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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