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G생명보험 세일즈 리더 이대균 / 3년 만에 10억 연봉 고지에 오른 보험업계 최고의 맨파워

이대균 세일즈 리더는 한때 만성 신부전증으로 인해 삶을 포기하려 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 후 그는 3년 만에 연봉 10억의 보업업계 기린아로 성장했다.

체력, 경제적 여건 등 모든 면에서 보통 이하로 시작한 그의 성공은,
누구든지 하고자 한다면 어떤 여건이나
환경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큰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1996년 이대균 세일즈 리더(이하 리더)는 지긋지긋한 인생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만성 신부전증으로 혈액 투석을 받은 지도 어언 6개월.
신장이 피를 걸러주는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몸 속의 피를 몽땅 밖으로 끄집어내
걸러낸 다음 시 주입하는 일을 이틀에 한 번씩 6개월 동안 한 것이다.

만성 신부전증 환자는
물 한 방울만 들어가도 심장마비를 일으키기 때문에,
목이 마르면 젖은 수건으로 입술을 축이는 것으로 갈증을 대신해야 했다.

결국 말라서 죽는 무서운 병이다.
자살을 결심하는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이제 막 돌이 지난 애기를 안고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다

돌아서서 눈물짓는 아내의 모습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가족들에게 행복한 삶을 안겨줘야 해.’
그래서 그는 죽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살기로 결심했다.
1997년 1월 그는 아내와 동료들의 노력으로
신장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었으며,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빈손으로 보험업계에 투신해
3년 만에 연봉 10억의 신화를 이룩해냈다.

벼랑끝에서의 도전
1997년 병원에서 퇴원했을 때,
막대한 수술비로 그는 빈털털이가 되어 있었다.
업친 데 덥친 격으로 IMF가 닥쳤으며,
다니던 경남은행에서도 명예퇴직을 당하게 되었다.

그 무렵 운명처럼 다가온 것이 보험 일이었다.
미국 AIG생명보험에 가입한 그의 장모가 세일즈 매니저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는
사위에게 아주 적합한 일이라 생각해 권해 왔던 것이다.

“당시 보험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이 많아서,
몇 번 제의가 들어온 보험영업 일을 무조건 거절했었는데,
장모님의 소개여서 일단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AIG생명보험 세일즈 리더와의 첫 만남은 느낌이 아주 좋았어요.

그의 명함을 받는 순간, 이 일을 꼭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나 아내를 비롯한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만류하고 나섰다.
그는 신장을 이식했기 때문에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하는데,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체력이 세 살배기 수준밖에 안 된다.

예를 들어 감기가 걸려도 치료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하루에 다섯 번의 눈물을 극복하라”
그러나 이대균 리더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이미 한 번 죽었다 살아난 목숨이니 목숨을 하늘에 맡기고 뛰자고 마음먹었다.

그는 이때의 결정을 ‘벼랑 끝에서의 도전’이라고 표현한다.

어느 일요일 이대균 리더는 가족과 함께 나들이 삼아 가까운 친척을 찾았다.
그런데 그 친척의 반응이 아주 냉담했다.
이대균 리더가 보험 일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친척이,
혹 보험가입 권유라도 할까봐 미리 선수를 친 것이다.
그리곤 보험을 권하려거든 다시는 오지 말라는 매몰찬 말을 남겼다.
뜻밖의 당황스런 일을 당한 그는 어쩔 줄 몰라했으며,
되돌아 앞서 가는 그의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

이대균 리더도 ‘내가 왜 보험 일을 선택해서아내에게 이런 고통을 주는가’
싶어서 뒤따라가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는 오기가 솟구쳤다.
‘내가 여기서 무너져 버리면 정말 구걸하러 온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나는 꼭 일어서야 한다.

그 후에도 그는 수없이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러나 그에게 눈물을 흘리게 한 사람들은
지금은 그 친척을 포함해서 모두 그의 열렬한 고객이 되었다.

“하루에 다섯 번 솟구치는 눈물을 극복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는 거절의 아픔을 극복해냈으며,
보험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타고난 적극성, 학생회장을 역임했던 리더십 등이 보험영업 일에 잘 조화되면서
그의 실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그는 점점 정말 이 일이야말로 자기가 원하던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한번은 친한 선배를 찾아갔다.
그러나 이 선배는 이대균 리더의 말을 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보험 일이라면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때 이씨는 이렇게 말했다.
“선배님의 거절은 저한테 굉장히 많은 자극이 되었습니다.
선배님의 거절을, 나의 고객이 안 되겠다는 거절이 아니라,
나를 좀더 나은 세일즈맨으로 트레이닝시키려는 의도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 다음날 그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보험에 가입하겠다는 것이다.
그 후 그 선배는 그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인간 이대균의 역사’ 파일로 가슴을 팔다
이대균 리더의 성장 밑바탕에는
‘인간 이대균의 역사’라고 이름 붙여진 파일이 있다.

이 파일에는 이대균 리더의 어린 시절, 학창 시절, 학생회장 시절의 모습,교사자격증, 아내의 편지,
AIG생명보험에서의 시상 장면 등 자신의 모든 것을 망라해서 담아놓았다.

“어차피 ‘AIG생명보험’이라면 고객들은 잘 모릅니다.
결국 나를 팔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평생 애프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신뢰감만 심어준다면
고객은 나를 믿고 따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대균 리더의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그의 파일은 고객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고,‘
이런 사람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겠다’라는 신뢰감을 주었다.
그는 비로소 보험은 가슴으로 영업하는 것임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인생을 책임지겠다는 신뢰가 상대편에 전달될 때,
비로소 거래 관계가 성립된다는 것을 깊이 깨달은 것이다.
“저를 통해서 보험에 가입한 친구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마산 앞바다에서 회식을 하다가 실종되어서 시체로 떠올라 2억을 보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남아 있는 미망인과 애들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어요.

그 친구가 보험에 들때 조금만 더 설득을 했더라면
4억을 보상받도록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너무 안이하게 대했다는 데 대해서 가슴을 쳤던 겁니다.”
그때부터 그는 고객을 만날 때,이 사람은 오늘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전제하에
그 사람이 최대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고객을 설득해 나갔다.
그에게 보험은 하나의 사명으로 각인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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