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견디는 힘이 더 멀리 뛰게 한다.
참을성이 적은 사람은 그만큼 인생에 있어서 약하다. 한 줄기의 샘이 굳은 땅을 헤치고 솟아 나오듯
참고 견디는 힘이 마침내 광명을 얻게 한다. 하나의 어려운 일을 참고 극복하면, 강한 힘의 소유자가
된다. 고난과 장애물은 언제나 새로운 힘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고난과 장애물 앞에서 결코 낙심하지
말자. 오히려 그것을 딛고 일어서서 더 멀리 바라보자.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더 멀리 뛰자. ‐러셀
가수 김흥국 씨는 무명 10년 만에 ‘호랑나비’로 일약 유명인이 된 케이스이다. 무명 10년은 그의 말
마따나 가진 건 몸 밖에 없으니 그저 몸으로 때워야 했던 시절들이었고 남몰래 눈물도 많이 훔쳤다.
어릴 때 그는 축구를 좋아했지만 축구화를 살 수 없을 정도로 생활이 어려웠다고 한다. 유명해진 이
후 남들보다 축구 홍보에 앞장 서고 월드컵 때도 대대적인 활약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굉장
히 낙천적인 소유자인 그는 어떤 고난과 장애물이 와도 참고 견디는 힘을 길렀고 그것을 통해 딛고 일
어서고자 노력했다. 이런 원동력이 주위에 어려운 분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했다. 비록 가
진 것을 없지만 나누려고 했다. 그가 크고 작은 선행을 베푼 것도 바로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
문이다.
‘호랑나비’가 뜬 이유는 아마도 그의 천성대로 상식을 깨는 춤과 꾸밈 없이 노래를 불러 편안했기
때문이다. 특유의 허스키한 웃음이 들어간 노래는 원래 의도된 것이 아니라 기분이 좋아 그냥 낄낄거
린 것이 녹음되었는데, 콧수염이 그 모습의 일부이듯 "낄낄"거리는 웃음소리도 성공적인 요인이 된 것
이다. 그의 얼굴은 항상 웃는 얼굴이다. 오랫동안 억지로라도 웃는 표정으로 살다 보니 얼굴 근육이
그대로 굳어버렸다는 김흥국 씨는 결코 낙심을 모르는 사람이다.
Q. 김흥국 씨를 생각하면 가수에서부터 축구, 불교, 해병대 등 많은 것이 떠오릅니다. 처음 연예인
이 된 계기는?
A. 어렸을 때부터 모든 것에 호기심이 많았던 저는,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 음악에 좀 더 많은 관
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서라벌고등학교 재학시절, 밴드부에 가입하게 되었죠. 엄격한 선
배들의 군기를 참아가면서 음악의 묘미를 제대로 느끼게 되었고, 내가 앞으로 쭈욱 해나갈 수 있는
일, 진정으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이 음악이구나… 하는걸 깨닫게 됐습니다. 하지만 사회
에 나가 전문적으로 음악을 하다 보니 힘든 점도 참 많더군요.
B급 그룹의 일원으로 서러움을 맛보기도 했고, 작곡가 사무실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며 눈치만 보던 시
절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10여년간의 무명생활을 지내던 어느날, 열심히 노래를 부르며 다니던 끝에
제 노래가 빛을 발하게 되었고 그렇게 인기가수라는 힘든 대열에 낄 수가 있게 되었죠. 오죽하면 ‘무
명가수 무명가수’해서 제 이름의 호가 혹시 '무명'이 아닐까 할 정도로 기나긴 무명생활의 끝에 찾아
온 기회였습니다.
Q.유명연예인으로 각종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데, 가장 큰 비결은?
A. 편안함과 솔직함, 이것이 제게 있어 가장 큰 무기이자 장점입니다. 사실 연예인으로 살아가다 보
면, 카메라 앞에서, 관객 앞에서 자신을 속이고, 포장하고, 돋보이려 노력하고자 하는 충동이 일어나
곤 합니다. 하지만 그건 그저 연기일 뿐, 제 진짜 모습은 아니죠. 방송국과 각 가정의 라디오 및 TV까
지는 거리가 아주 멀지만 마이크를 타고, 브라운관을 타고, 또 제 목소리를 타고서 진실은 통하는 법
입니다. 저도 고생을 했던 사람이고, 평범한 소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저 마음을 통할 수 있는, 그러
면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좋은 친구이자 형제, 혹은 동네 아저씨처럼 마음을 다할 뿐이죠. 아, 저 사
람도 우리랑 똑같은, 아니 어쩔 땐 나보다도 더 부족한 면도 있는 내 주위의 이웃일 뿐이구나… 하는
동질감이, ‘김흥국’이란 인간에 대한 호감도를 더 높여주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Q.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A. “쥐구멍에도 해뜰날있다”는 말이 있죠. 하지만 그 쥐구멍도 문이 닫혀있으면 아무리 해가 떠도
그 빛은 들어오지 않습니다. 노력 없이 기다리기만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죠. 가끔 보면, 제대로 된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언젠간 풀리겠지… 하는 안이한 마음으로, 주위
에 잘되는 사람들을 보면 운이 좋아 저러겠지… 하는 질투심만 키운 채 하루하루 시간을 버리는 사람
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 좋은 기회가 찾아온다고 해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축구할 때도 보
세요. 자신의 포지션에서 가만히 서 있는다고, 게임이 풀립니까? 공을 쫓아 이리저리 뛰어다녀야만 볼
을 잡을 수 있고, 그래야만 슛을 날릴 수 있는 겁니다. 앉아만 있기엔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
다. 좀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서 열심히 뛰는 것! 그것만이 좀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지름길일 것입니
다.
김흥국 씨의 퍼스널 브랜드 전략 3가지
1. 솔직하게 접근하라.
김흥국 씨의 가장 큰 무기는 솔직함이다. 자신을 속이고, 포장하지 않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
고 노력했다. 가끔 그것이 지나친 애드립으로 주위 사람을 당황하게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평범한 이
웃 같은 이미지를 확보하는데 그의 천성대로 꾸밈 없이 솔직하게 접근한 것이 브랜드 전략에 주효했
다.
2.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
김흥국 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축구를 위해 뛰었다. 자연스레 축구사랑모임 회장, 월드컵문화시민예술
단 단장, 한.일 월드컵축구대회 안전홍보위원 등 축구에 관련된 직함을 여러 개를 갖게 되었고 축구
에 대한 사랑으로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며 널리 자신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3.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를 확보하라.
김흥국 씨는 콧수염, 너털웃음 등 자신의 트레이드마크(trademark)를 확보하여 동네 이웃집 아저씨 같
은 이미지를 굳건히 하였다. 1989년 각종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한 '호랑나비'로 일약 ‘10대 가수’
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TV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나와 결혼 상대자 소개와 태어날 아
이의 이름을 ‘번칠이’로 짓고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공개해 더욱 인기를 높였고, 유행어 '아~응애
에요'로 히트를 쳤다.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를 확실히 대중에게 포지셔닝 하여 그의 방송생명력을 길
게 연장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