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은 준비된 자만이 누리는 특권”>


복(福)이란 엄밀하게 말하자면 주관적 개념이다.

그러나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큰 돈을 벌었거나 힘든 일을 성취해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면 성공했거나 복 받은 사람이라고 쳐준다.

당사자도 내놓고 자랑하지는 않지만 내심으로는 행복해 한다.

‘운(運)이 좋았다’는 대체로 성공한 이들이 다소 겸양의 표현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사람 입장에서 보면 노력 부족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운이 없어서’라고 자위하기도 한다.

운이든 복이든 성공 CEO로는 삼성그룹의 창업자인 이병철 전 회장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생애를 통털어 하늘이 낳은 큰 부자 소리를 듣기에 충분했다.

상징적으로 ‘돈병철’이란 세인의 부러운 탄식을 듣기도 했다. 호암은 중요 사업구상 때마다 일본에서 보내곤 했다.

삼성재팬에서 이십수년 그의 수발을 들었던 정준명 사장에게 보여준 호암의 사람을 사로잡는 일화다.

격려 차원에서 ‘백지수표’를 당시 정 과장에게 준 것이다.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신뢰와 존경으로 승화됐다.

사람 경영에 뛰어난 그는 ‘사람복’이 많았다. 그것이 ‘돈복’으로 이어졌다. 그런 그에게도 안 되는 게 있었다.


< ‘무에서 유’를 창조한 행운아들 >

자식 농사와 골프점수, 그리고 자동차사업 진출이 그것이다. 뒤집어 얘기하면 그 세가지 빼고는 모두 만족스럽게 이뤘다는 말이 아닌가.

그의 ‘1등주의’와 ‘사업보국’이라는 경영철학과 투지, 그리고 노력으로 그는 모든 것을 달성했다.


현대그룹의 창업자인 고 정주영 전 회장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공 CEO다.

큰 부(富)를 이뤘을 뿐만 아니라 남북분단의 상징인 삼팔선 육로를 통해 우람한 소 1,000여 마리를 끌고 다닌 한국의 거인이었다.

그는 강원도 산골짜기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10여세 때 가출해 ‘시련은 있어도 절망이 없는’ 인생드라마를 일궜다.

그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다. 그는 조선소 건립을 위한 자금을 꾸기 위해 런던에 갔다.

거북선이 있는 한국화폐를 보여주며 한국의 몇백년 된 조선산업 역사를 역설했다.

행운이 왔다. 아마 거북선보다 그의 기업가 정신에 감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와 같이 행운의 여신인 티케(Tyche)는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들 편이었다.

그리스 신화의 티케는 로마신화의 포르투나(Fortuna)와 동일시되는 신이다. 영어에서 행운을 뜻하는 ‘포춘’(fortune)의 어원이기도 하다. 티케는 손에 마술 뿔을 갖고 있다.

티케가 돌아다니는 길에서 마주친 사람은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 여신이 풍요의 뿔을 뒤집어서 선물을 듬뿍 쏟아줬기 때문이다.

역시 부지런하게 돌아다니는 사람이 티케를 만날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작은 부자는 사람이 낳지만 큰 부자는 하늘이 낳는다’는 속담도 있지만 행운을 내 편으로 하려면 근면은 기본이 아닌가 싶다.

한국 건설 사상 최초의 해외공사는 태국의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건설이었다.

태국 정부가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의 차관을 도입해 1965년 9월30일 국제경쟁 입찰에 부쳤다.

현대건설은 서독·일본·프랑스 등 16개국 29개사와 경쟁한 끝에 공사를 따냈다.

66년 1월7일 착공에 들어갔지만 공사는 계획대로 진척되지 않았다. 아무런 경험 축적도 없이 의욕만 갖고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 기회는 슬그머니 찾아온다. >

장비 부족·경험 부족·기술 부족으로 현장 내부에서 여러 가지로 갈등이 고조되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말단 경리담당 이명박 사원은 밀린 장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갑자기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한국에서 온 인부들이 군용 단검을 들고 난동을 부린 것이었다. 폭도들은 사무실 금고를 목표로 삼은 듯했다.

이명박 사원은 금고와 경리장부를 지키기로 결심했다.

드디어 사무실 문이 ‘쾅’ 하고 열렸다. 폭도들은 15명 정도였다. 술 냄새가 확 풍겼다.

그들 중 한명이 들고 있던 단도를 갑자기 이명박 사원 책상 위 금고 옆에다 내리꽂았다.

“야, 좋은 말로 할 때 금고 열쇠 내놔!” “못 내놓겠다.”

벽으로 뒷걸음질친 이명박 사원 목의 왼쪽으로 칼이 날아와 꽂혔다. 앞이 캄캄했다.

‘이러다가 죽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열쇠를 내줄 수는 없었다. 회사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명감 같은 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단지 굴복당하기 싫은 본능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금고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야, 뭉개버려!” 옆구리와 등, 엉덩이, 온 몸에서 불이 났다.

그럴수록 있는 힘을 다해 금고를 끌어안았다. 그때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금고 사건이야말로 이명박 사원에게는 행운의 출발점이었다.

금고 사건으로 이명박 사원은 일개 대리에서 현장 소장으로 발탁되며 정주영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얻을 수 있었고,
고속 승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연도 큰 운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처럼 큰 행운은 없다.

프랑스의 독립투사 드골 사령관과 프랑스의 문화를 짊어진 작가 앙드레 말로의 만남이 그렇다.

그들은 동지이며 친구이며 프랑스의 자존심으로 국가 경영을 함께했다.

농민 마오쩌둥(毛澤東)과 지식인 저운라이(周恩來)의 만남 또한 그렇다.

저운라이는 당 서열과 학식을 포기하고 미련 없이 주인공 자리를 마오쩌둥에게 내주고 나라건설 공동지도자로 활약했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과 한신혁 부회장도 40년 지기로 알려지고 있다. 김 회장에게 있어 한 부회장은 드골의 앙드레 말로이며 마오쩌둥의 저운라이였다.

김 회장은 대학생 때부터 아버지 김진만 회장을 도와 1960년대 미륭건설 창업에 동참했다.

그래서 김 회장은 1944년생이면서도 1.5세대 기업가로 호칭된다. 김 회장은 오늘날 한국의 10대 기업군 동부그룹을 일궈냈다.

이러한 역사 속에는 그의 오랜 동반자인 한 부회장이 함께하고 있다. 한 부회장은 그 흔한 매스컴에 얼굴 한번 내비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낮고 조용한’ 리더십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늘 난국을 해결했다. 행운을 만들곤 했다. 사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경영의 귀재라고 불리는 GM의 잭 스미스 전 회장이 노자의 ‘무위자연’을 좌우명으로 삼은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런 행운을 창조하는 만남은 어디 동부그룹의 김 회장과 한 부회장뿐이겠는가.

LG그룹의 구(具)씨 가문과 허(許)씨 가문의 동반자 관계가 그렇고, 최태섭 한국유리 전 회장과 이봉수 전 신일고등학교 재단이사장의 관계가 그렇다.


< 최고 연봉의 윤윤수 회장 >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은 약 10년 전 당시 18억원이라는 깜짝 놀랄 만한 연봉을 받은 것으로 장안의 화제를 뿌렸다.

그런데 그 연봉 책정은 아주 사소한 실수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행운의 여신 티케의 장난인지 모르겠다.

윤 회장과 휠라비즈니스 파트너인 미국의 알티스가 휠라에서 손을 떼며 본의 아니게 큰 도움을 준 것이다.

휠라그룹 본사가 윤 회장을 휠라코리아 사장으로 앉히며 알티스에게 윤 회장의 가치가 얼마인지 물었다.

“그 사람은 휠라 에이전트를 하는 것만으로도 1년에 100만 달러 이상을 번다. 그것을 고려해서 대우를 해 줘야 할 것 같다."

사실 알티스는 윤 회장에 대해 잘 몰랐다. 윤 회장이 휠라비즈니스로 1년에 100만 달러 이상을 번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 돈을 알티스는 윤 회장이 모두 챙기는 줄 알았다. 그 돈이 회사를 운영하는 데 들어간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 결과 150만 달러의 연봉이 결정됐다.

만약 본사가 윤 회장에게 직접 얼마나 받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면 결코 그렇게 엄청난 액수를 요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는 한국 대기업 사장 연봉이 10만 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어쨌든 윤 회장은 당당하게 최고의 연봉을 받은 뒤 세금을 내고도 느긋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 투명 경영을 통해 한국에서 글로벌 경영이란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은 한국 경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스타 CEO다. 대부분 기업 CEO들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구조조정이라는 명분 아래 감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문 사장은 오히려 감원 대신 4조 2교대로 일자리를 나누면서 충분한 휴식과 평생학습으로 종업원 모두를
지식근로자로 양성하고 생산성을 배가시켰다.


< 국에 빠진 파리도 삼켜... >

그의 ‘새로운 패러다임 운동’은 고용 없는 성장시대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문 사장의 이러한 놀라운 경영 대안은
어느 날 갑자기 생성된 것이 아니다.

1980년대부터 그는 사장에 오를 경우에 대비해 미래학자 존나이스빗을 멘토로 메가트렌드를 연구하고 대비했던 것이다.

채수삼 서울신문 사장도 ‘욘사마’의 매력을 지닌 열정적인 농부형 CEO다. 현대상사 무역인 출신이지만 광고회사
금강기획 사장 시절 ‘채수삼 열풍’을 일으켰었다.

특수 스프링 메이커인 삼원정공은 연간 매출액이 200억원밖에 되지 않는 작은 기업이지만 50억원 상당의 순익을 내는 무서운 기업이다.

시테크와 초절약형 경영자로 알려진 양용식 사장의 일화 한토막이다.

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그는 당시 문학무 사장집이자 공장에서 먹고 자고 일했다. 종업원이라고는 사장과 양용식 사원
둘뿐이어서 그들은 늘 겸상을 했다.

어느 날 국에 죽은 파리가 있었다. 사장님과 사모님이 면구해할 것을 염려해 그는 국과 파리를 모두 꿀꺽 먹어 치워버렸다.

이렇게 절절하게 사는 양 사장에게 어찌 행운이 따르지 않겠는가. 시테크 경영강사로도 유명세를 타면서 회사도 알차게 키웠다.

가정적으로도 행운이 따라왔다. 아들 둘 모두가 최고 명문대학을 나와 유학을 마치고 당당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세상에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 있느냐’는 말이 있다. ‘맑은 물에서는 고기가 살지 못한다’는 속담도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현실에서는 흠이 없을 수 없다는 뜻이다. 박정희 정권 때 유한양행의 CEO인 유일한 박사는 정권에 아부하지 않았다.

아부는커녕 소집명령(?)에도 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세무사찰이란 사형선고(?)가 떨어졌다.

당국의 날고 기는 십수명의 세무공무원이 덮쳤다. 그러나 아무리 뒤지고 까 봐도 먼지 하나 나지 않았다.

당시 최고 권력자가 “다시는 유한양행 근처에 얼씬거리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화가 복이 된 것이다. 유일한 박사는 모든 부를 사회에 환원한 공인형 CEO의 본보기로 귀감이 되고 있다.

라이프 스타일 스토어(Life-Style Store)를 표방하는 까사미아의 이현구 사장도 행운의 여신 티케와 한편이다.

그는 종업원 2~3명 시절부터 조회를 서는 등 기업으로서의 모양새를 지키며 사회적으로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 왔다.

특히 고객들에게 ‘행운’을 나눠주고 싶어한다. 그래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고 까사미아 마니아 30만 고객을 확보한 기업이 됐다.


< 사회적 책임 다할 때 행운도 따라 >

그만큼 고객 사랑은 기업인으로서 최고의 미덕이다.

‘내 자식이 먹을 수 있는 과자’ 크라운산도 열풍을 일으킨 윤태현 전 크라운제과 회장은 위암으로 고생하며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과자를 시식했다.

그의 생전 공장에 불이 나는 어려움도 겪었다. 그러나 ‘불난 집이 잘 된다’는 속담처럼 크라운은 승승장구했다. 분발했기 때문이다.

최근 그의 후임자인 윤영달 사장은 화의라는 어려움을 등산 경영으로 극복했다.

답답해서 시작한 등산 경영으로 구성원들의 호연지기가 크게 신장됐다. 나아가서 해태제과를 인수하면서 업계 판도를
바꾸는 저력과 행운을 누리고 있다.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으로 탈락한 임직원끼리 퇴직금을 합쳐 만든 오디티의 이일 사장과 IT 분야 설비제조업체인 미래
컴퍼니의 김종인 사장도 벤처업계의 행운아들이다.
한우물을 파면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수요의 폭발이 가져온 행운들이다.

행운이란 끊임없는 도전과 근면,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행동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닌가 싶다.

‘용장과 지장도 좋지만 최고봉은 행운을 몰고 오는 장수’라는 나폴레옹의 인사관은 음미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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