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일은 기분 좋게 해주고 뭘 달라는데, 여기서는 시원찮은 것들(국회의원)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타계한 지 4주기가 지났다.

정 명예회장은 1998년 북한을 다녀온 뒤 인터뷰를 했다.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을 때 있었던 일화를 공개하면서 두 시간이 넘도록 아랫배가 아플 정도로 웃겼다.

정 명예회장의 성음(聲音)은 상당히 독특하다. 목소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단어 하나하나에도 흉내 내기가 고생스러울 정도로 특이한 리듬이 있다.

대화를 스스로 풀어주는 부사인 ‘일테면’은 특허처럼 들어간다. 아마 ‘거… 저… 일테면…’하면서 더듬거릴 때면 정 명예회장은 뭔가를 번개처럼 생각하는 듯했다.

“(김 위원장이) 나보고 정주영 ‘회장선생님’이라고 하면서 회장 밑에 선생님이라는 쟁반 하나 더 받쳐서 불러줬거든.
기념사진 찍을 때도 연장자라고 내가 가운데 서야 한다고 말이야. 그래놓고는 나한테 발전소를 지어주고, 중유 좀 달래,
하하항. 그래도 뭐 여기서는 ‘5공 청문회’할 때 시원찮은 것들(국회의원들을 지칭)이 막 그냥 증인 어쩌고 하면서
손가락질까지 하며 대들고 그랬는데.

북한에선 나를 기분 좋게 해줘 놓고 발전소를 지어달라 하고 기름을 좀 달래니까 밉지는 않잖아! 그러고는 나한테
‘회장선생님은 어째 그리 정력적이시냐고’하며 아주 부러워하는 거야.

그래서 그랬지. 나는 손만 잡아도 아기가 생길 정도라고 말이야. 그랬더니 김 위원장이 ‘백두산 정기가 몽땅 회장
선생님한테 다 갔구먼 기래요!’ 이러는 거야 하하항. 자기(김 위원장)는 시원찮대 요즘. 하하항.”

정 명예회장은 인터뷰 도중에 유언과도 같은 말을 종종 했다.

그는 “내가 죽으면 절대 화장을 못 하게 할 거야”라고 말했다. 자신이 평생 하지 않았던 사업과 앞으로 국가를 위해
꼭 해야 될 사업 등을 말했다.
자신의 사생활을 이야기하면서 평생 주례를 서지 않은 이유도 말했다.

이런 말들은 이제 모두 유언이 되고 말았다. 그는 평생토록 하지 않았던 사업이 세 가지 있다고 밝혔다.


첫째, 목축업이었다. 현대그룹 내부에서도 한때 목축업을 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은 목축업 사업계획서를
받아보고는 휙 던져 버렸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은 생리적으로 살생을 거부한다고 했다.

소를 키우다가 팔게 되면 도살장으로 보내는 셈이 되니까 결국 살생을 하는 사업이라는 논리였다.

그런데 정 명예회장에겐 서산목장이 있었다. 하지만 결코 사업적으로 운영하는 게 아니라고 강변했다.
그는 소를 길러 식용으로 판 적이 결코 없다고 강조했다.


둘째, 농민에게 고통을 주거나 걱정을 끼치는 사업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것은 비료공장이었다.

그래서 현대그룹은 비료공장을 갖지 않았다. 그는 “건국 후 지금까지 오르기만 했지 한 번도 내린 적이 없었던
비료 값을 생각하면서 비료공장 건설 추진 자체를 막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솔직하게 “비료공장을 짓고도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경쟁하기 위해) 손해를 보더라도
원가에 비료를 공급하게 될 테니 기존 사업자들과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였다.

그는 “내가 그 사업을 하면 결국 도산하는 업체가 나올 것이 뻔해 비료공장 생각을 접었다”고 했다.

정 명예회장은 가족사를 얘기할 때 항상 부탁하는 말이 있었다.

부친에 대해서는 ‘일등 농사꾼’으로 불러달라는 것이었다. 언제나 부친을 자랑하는 걸 잊지 않았다.

한번은 인터뷰 중 서산농장 이야기를 했다.

“서산농장이 완전하게 조성되면 조그맣게 아버지 동상을 세우려고 해요. 일등 농사꾼이셨던 아버지에게 헌납식을
하려고 그래요. 평생 농사만 지으셨죠.
그 많은 논과 밭을 일구시면서 한 번도 싫어하는 기색 없이 농사를 지어 동생들과 자식들을 다 키우셨지요.
그래서 서산농장을 하늘에서도 풍족하게 바라보시면서 지내시라고 아버지께 헌납하려고 그러는 거예요.”


마지막 셋째는 장의차를 만들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이에 대해 그는 특별히 부연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우리는 안 만들어요”라고 했다.

특히 정 명예회장은 인터뷰 때마다 국가를 위해서도 꼭 해야겠다며 마지막까지 집념을 보였던 사업이 있었다.

바로 거대한 ‘해저(海底) 가족공원묘지’ 건설이었다. 북한이 고향인 사람들을 위해서는 해금강에 해저 공원묘지를
건설하는 방안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이 사업은 즉흥적으로 구상한 게 아니었다. 그는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다고 했다.

그는 “세계 각국의 해저 시설을 살피고 자료들을 검토하면서 많은 자문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결국 유훈이 됐다. 다음은 정 명예회장과의 인터뷰를 일문일답 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 회장님은 사후에 화장(火葬)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그건 어떤 철학에서 나온 생각이십니까?

“회장 다음은 화장인가? 하하항…. 물론 나는 화장을 원하지 않지요. 일테면 인간은 자연에서 나왔으니까 자연으로
돌아가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화장하는 것은 인위적으로 없애는 거다 해서 난 좋아하지 않아요.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인위적으로 화장해 처리하는 것은 좋지 않고 자연으로 돌아가게 땅에 묻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살과 뼈는 전부 흙이 되어버리니까 말이지요.”(그렇다면 해저 가족공원묘지 건설 구상과는 다르지 않으냐고 했더니
‘사람에 따라 화장을 원하는 사람이 있지 않으냐’는 말로 일축했다.)


* 며느리를 볼 때 특별한 합격 기준이 있었나요.

“그런 것 없어요. 나는 회사 일이든 뭐든 치밀하게 관여하는데, 아들들의 배우자에 대해서는 일절 관여를 안 합니다.
왜냐하면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결혼이거든요.

따라서 부모가 선정해 줘서 피차 의견이 잘 안 맞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부모의 책임이 너무 크지 않겠어요?

그래서 ‘부부가 만나는 것은 운명이니까 너희 운명은 너희가 정하는 게 좋다.’ 나는 자식들한테 늘 그렇게 얘기해 왔습니다.

나는 ‘인생의 세 가지는 운명이다’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첫째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거, 이건 본인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운명입니다. 자기의 노력으로 어떤 집안,
어떤 가정을 마음대로 선택해 태어나는 게 아니라 이미 운명적으로 정해진다는 거지요. 어린애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고 운명으로 되는 거다 그거지요.

둘째는 상대를 만나는 것이 운명입니다. 그 나라 그 사회에 수많은 결혼 적령기 남녀가 있는데 어떻게 거기에서
딱 하나를 골라 결혼하게 되는지, 그게 다 만남의 운명이지요. 특히 운명이라는 것이 시간 아닙니까?
그 시간에 그 배우자가 나타나서, 일테면 서로 좋아서 결혼하게 된다는 게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겁니까?

그래서 좋은 부부는 절대 인간의 힘으로 만나지는 게 아니라고 나는 말합니다. 그러니 너희가 정해 가지고
아버지는 인생 경험이 많으니까 아버지한테 이러저러한 여자인데 제가 결혼하면 어떻겠습니까 하는 양해만 구해라.
그러면 내가 참고할 얘기는 해주겠다고 했지요. 그래서 우리 아들들은 전부 자기들이 찾아서 결혼했지 부모가
여자를 찾아서 결혼시킨 적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세 가지 중 마지막은 죽어가는 거라고 생각하지요. 죽어가는 것은 자기 노력으로 못하는 거 아닙니까.

물론 자신이나 주변 사람의 노력으로 죽음을 지연시킬 수는 있지만 영원히 죽음을 막을 수는 없다 이겁니다.

지금 집사람(변중석 여사)이 병석에 누워 있는데 말도 없이 저렇게… 있는 걸 보면 내 마음이 말할 수 없는 심정이 되고.
어디 구경 가고 싶으냐 해도 말이 없고…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아 화 좀 내보라 해도 그냥 표정이 없고…

* 자기 친구가 부탁한다고 24평짜리 현대아파트 하나만 당첨되게 해달라고 할 때 왜 화를 내고 그걸 못해줬는지…

생각하면 참으로 내 자신이 원망스럽고 미안하고… 내가 아무리 도움이 되어 주고 싶어도 예전처럼 건강하게 해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어쩌다 병에 걸려 죽고, 좋지 않은 암에 걸린다거나 또는 자동차 사고로 죽는다거나, 어떤 모양으로 죽든
그건 운명이니까 슬퍼하지 말자고 합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지만 자식의 죽음을 몇 번 봤습니다. 자식의 죽음을 보는 아비의 가슴보다 더
아픈 일은 이 세상에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건 아비도 막을 수 없는 자식의 운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뜻이고 인명은 재천이다. 모든 게 운명이니까 어떤 죽음이 선택되더라도 슬퍼하지 말자’ 그렇게
말하고 또 내 자신이 그렇게 소화해 왔습니다.” (여기서 정 명예회장은 잠시 눈빛을 내리고 소파의 팔걸이를
자꾸 만지작거렸다.
손가락 끝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이 아마도 솟구치는 회한을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 아들들이 여자를 선택해 오면 회장님께서는 꼭 말씀을 해주신다던데 내용이 무엇입니까?

“나는 그 여자의 학벌이나 가문은 보지 않아요. 그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하면 더 사귀어 보라고 합니다.
피차 장단점을 깊이 알고 나서 결혼해야 한다는 걸 강조합니다. 후회 없도록 하기 위해 더 사귀어 보라고 하는 거지요.

그래서 몇 달 사귀고 나서 결혼하겠다고 하면, ‘안 된다 더 사귀어 봐라’고 해서 우리 아이들은 거의 다 1년
이상이나 끌었지요. 서로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그렇게 해서 다 결혼했는데, 아직 우리 집안 애들은 파경이 하나도 없습니다. 본인들이 선택을 잘했다고 생각하고
또 부모가 신중을 기하라고 권한 것이 옳았다고 생각하지요.

부모 말 잘 들어 손해 보는 자식 없어요. 그렇게 하고 내 말을 안 들으면 안 도와주는 거지 뭐, 지가 무슨 수로 큰
회사 회장이 돼요. 하하항….”


* 깊이 사귀어 보라고 하는 동안에 여자가 바뀐 경우도 있습니까?

“있죠. 좋다고 결혼하겠다는 걸 안 된다, 잘 사귀어 보라고 하는 동안에 (바뀐 경우가) 한 두번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부부가 되지 않은 여자는 그 여자도 불행을 막은 셈이지요.”


* 그 여자는 재벌가 며느리가 안 된 것이 오히려 불행하다고 했을지도 모르잖습니까.

“철없는 여자라면 그렇게 생각하겠지요.”


* 몇째가 그랬습니까.

“녹음기 끄면 내가 얘기하지요 하하하. (끄겠다고 했더니 ‘우리 ○○ 회장이 알면 괴로워할 거 아니야.
며느리도 괜히 좋은 마음 안 생기고. 그래서 과거는 아무 쓸모가 없어’라고 했다. 그러곤 약속을 했다.)
인연이 안 되려니까. 나는 괜찮아 보이는데 성사가 안 된 적도 있지요. 다 운명이지요. 조금 전에도 얘기했지만
여자를 선택한 뒤 장단점을 다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더 사귀라는 것이니까 서두르지 말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애들 엄마는 마음이 여려서 그런지 애들이 여자를 데리고 오면 손도 잡아주고 등도 토닥거려 주고 해서 내가
어떨 땐 한소리 하지요. 그렇게 하면 그 여자애가 며느리가 되는 줄 알고 혼동할 거 아닙니까. 그래서 나만 인기
떨어지고, 하하하.”


* 안 된다고 하신 것은 관상적으로나 회장님께서 보시기에 마땅치 않아서였습니까.

“나는 관상 같은 거 볼 줄 모르는 사람이에요. 엉덩이가 크면 좋다고 그래요, 하하하. 사실 내가 어릴 적에 어머니가
그런 말씀을 자주 하셨지요.
엉덩이가 커야 자식을 수월하게 낳을 수 있다고. 엉덩이가 작으면 듬직해 보이지 않지요. 남자가 큰일을 하는데 집안을
꾸려야 하는 여자가 가볍게 쏘다니면 안 되잖아요. 엉덩이가 가벼우면 발딱발딱 일어날 거 아니에요, 하하항.
사고 내서 신문에도 나고 대통령한테 불려가서 혼이 난 회장, 높은 양반들을 보면 다 부인들이 엉덩이가 작더래, 하하하항!”


* 세 가지 운명론은 새로 인생을 출발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지침이 될 수 있겠는데. 주례를 서본 일이 있으십니까?

“결혼식 주례는 평생 한 번도 안 섰습니다. 나는 거짓말과 위선을 제일 싫어합니다. 나는 30대에 내 아내 아닌 다른
여자도 좋다고 생각해본 일이 있기 때문에 주례를 선다는 것은 위선이다, 그렇게 생각했지요. 그래서 (평생)
주례를 한 번도 안 섰습니다.

자기가 표본이 될 만해 가지고 주례를 서야지, 과거 30대에 탈선했던 사람이 무슨 주례를 서느냐 싶어 자책감 때문에
주례를 안 섭니다.

그건 위선이고 전도양양한 젊은 사람 앞에서 주례는 안 되지요. 주례는 성직자나 아주 고결한 스승이나 그런 사람이
서야 한다고 나는 생각해요.

중요하고 신성한 결혼식에, 더구나 많은 하객 앞에서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바탕으로 교훈이 될 수 있는 얘기를 해주어야
하는데 사회적으로 이름이 좀 있다고 해서, 아니면 직위가 좀 높다고 해서 젊은 사람 앞에 위선이나 거짓을 해선 절대
안 되는 거 아닙니까.”


* 회장님의 근검절약은 어디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십니까?

“부지런하거나 근면해야 한다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가난한 농촌에서 자랐기 때문에 몸에 밴 거지요.
우리 집 가난을 쫓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 부지런히 일해 수입을 도와야 했고, 또 수입이 있다고 해서 헤프게
다 쓰면 열심히 일해 얻은 보람이 없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축적되지 않기 때문에 말이지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어렵고 힘든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그렇게 소년 시절을 지내다 보니까
근면하고 검소해야 한다는 게 생활이 됐고 내 철학처럼 된 거지요. 그래서 나도 근검절약하는 생활이 몸에 밴 거죠.

나는 어떤 것이든 사람들의 일생을 통해 몸에 배고 자기화(自己化)되는 것은 생활의 습관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생활 습관이 아주 중요하다 이렇게 생각하지요. 내가 부지런하고 근면하고 근검하는 것도 어렸을 때부터
어떻게 하면 가난에서 벗어나느냐 하는 그 일념으로 생활해 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어요.

누구를 막론하고 어려운 사람은 다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가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첫째로 근면하고
둘째로 절약하는 생활이 제일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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