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짜’를 보다
 


 


오래전 열독했던 만화 타짜는
저에게 있어 너무나 재미있는 만화였습니다.


고니를 비롯한 주인공 모두가
뚜렷한 개성이 넘치는 캐릭터라
이야기의 전개도 매편 긴장감과 박진감이 넘쳤으며
무엇보다 도박의 승부를 결과 위주가 아닌
도박 전개에 따른 주인공들의 심리를 중심으로 풀어 나갔기에
더욱 맛갈진 아주 매력적인 만화였죠.


그러다 얼마 전 이제는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하던
만화 타짜를 영화로 만나고 왔습니다.
시대적 배경이 바뀌고
인물들 역시 만화와는 조금 색다르게 변형됐으나
나름대로 충분히 재미있었고
영화라는 짧은 시간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원작을 해치지 않을 만큼
도박장면과 스토리의 전개 역시 박진감 있게
훌륭하게 잘 풀어냈더군요.


그렇게 영화가 재미있었던지라 집에 돌아와서
다시 만화 타짜를 1~4부까지 쉬지 않고 열독했습니다.
(읽어본 사람들은 모두가 동감하시겠지만
만화 타짜 역시 한번 읽기 시작하면
도박이상으로 정말 멈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월이 변해서 인지
제가 인생을 보는 각도가 달라져서 인지
새롭게 다시 보는 만화 타짜는
단순한 만화가 아닌 인생의 지침서로 다가 오더군요.
특히나 그 주옥같은 도박대사들은
단순한 만화의 범주를 벗어나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반드시 읽어야할 필독서의 반열에 올려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깊이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사람들 ‘타짜’를 꿈꾸다





많은 사람들은 ‘타짜’를 보며 고니를 꿈꿉니다.


'나도 고니처럼 최고의 타짜라면 얼마나 좋을까?'


“타짜는 쪼고 그러지 않아예.
이미 몇 끝 줬는지 알기 때문에 흉내만 낼 뿐이지예.
타짜는 게임을 몇 분 있다가 끝낼 것인가,
누구를 밀어줄 것인가,
개평을 얼마나 줄 것인가,
돈을 얼마나 갖고 갈 것인가
그것만 생각해요“


영화타짜에 조언을 해준 타짜 장병윤씨의 인터뷰처럼
타짜는 일견 아름답고 화려해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들 역시 타짜처럼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희망하고
어쩌면 타짜보다 더더욱 타짜를 소망하는지도 모릅니다.


넓게 보면 우리가 ‘선택’이라고 부르는 것들도
넓은 의미에서 해석하자면
모든 것들이 ‘베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니까요.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 어디에 베팅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결과(만족감)를 얻을 수 있을까?


어느 학과를 선택하지?
-> 어느 학과에 베팅하는 것이
나의 미래를 위해 가장 행복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어느 길로 가는 것이 가장 빠를까?


어떤 주식을 살까?


지금 아파트를 살까?


어디에 저축하지?


=> 결국 무수한 선택은 말 그대로 크고 작은 베팅의 연속입니다.


우리가 타짜를 꿈꾸는 이유는
우리의 확신할 수 없는 선택들이
우리가 원하는 가장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기를 기대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즉 모든 선택과 결과를
가능만 하다면 마음대로 조절하고 싶은
인간 본연의 욕망과 욕심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욕망을 더욱 직접적으로 압축시켜 놓은
도박판이야 말로
짧은 시간에 사람을 흥분시키고
선택의 결과를 분명하게 확인시켜 주기에
사람을 마약 이상으로 매료시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결국 인간세상이 선택의 연속
즉 베팅의 연속이기에 인간세상이 존재하는 한
도박은 계속 될 수 밖에 없으며
그 도박을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조절하고 싶은
인간 고유의 본능이 존재하기에
타짜는 항상 아름다워 보이기 마련이고
그 정점에 서있는 주인공 ‘고니’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는 누구인가?











여러분들은 ‘타짜’를 보며
누구를 제일 관심 있게 바라보셨습니까?


고니?
평경장?
정마담?
고광렬?
짝귀?
아귀?


저는 우습게도 영화속 주인공들 보다
어쩌면 평범하게 스쳐지나가 버리는
평범한 도박판의 엑스트라들을 제일 관심 있게 바라봤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대체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의 이웃이며
그들이 바로 대체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들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속아도 속은 줄 모르고
자신의 모든 것을 도박판에 쏟아 붇는 불나방들...


사실 영화나 만화가 아닌 현실이라면
우리는 과연 누구를 응원하며
누구를 가장 불쌍하게 여길까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들 주인공 대신 평범한 엑스트라를 선택하고
걱정하거나 가여워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영화만 아니라면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고니도 평경장도 아닌 스쳐지나가는
도박판의 수많은 엑스트라들일 것입니다.


혹시 영화를 보며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시지는 않으셨습니까?


여러분이 타짜속의 수많은 인물 중에
과연 누구를 가장 닮아 있는지를 말입니다...





타짜와 도박사










 

 





영화 속 타짜(도박꾼)와
라스베가스와 같은 곳에서 직업적으로 게임에 접근하는 도박사 즉 겜블러 들은
겉으로 비슷할지 모르나 너무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영화 속 타짜들은 소위 ‘구라’를 실력으로 연마하는 도박꾼들입니다.
이들은 원하는 시점에 언제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결과를 조작해 낼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겐 이점이 일견 너무나 화려하고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소위 도박사(겜블러)들로 불리는 사람들은
소위 ‘확률’이라는 개념을 실력으로 연마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원하는 시점에 이기고 싶다고 해서 언제든지 이길 수 없습니다.
일견 겉으로 보기에는 삶이 타짜보다 더 불안해 보이고
과연 도박을 업으로 삼는 사람인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영화 속 도박꾼들이
겜블러들 보다 훨씬 불안해 보이기 마렵입니다.


왜냐하면 타짜들은 결국 속임수에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실력만을 믿고
너무나 자주 자신의 모든 것을 올인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원하는 시점에 언제든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올인해도
그 순간만은 두렵지도 않고 언제나 자신 있기 마련입니다.


하긴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패를 돌릴 수 있다면
세상이 마음먹은 대로만 흘러간다는 것인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반대로 도박사들은 결코 올인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질 확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그들은 결코 올인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지 50%를 넘어선 확률에 지속적으로 베팅해서
그 확률에 근접한 만큼을 이윤으로 이끌어 내야하기 때문에
결코 올인하지도 올인할 수도 없습니다.


타짜 도박꾼들은 조작에 의존하고
도박사들은 확률에 의존하기 때문에
운영방식과 승부를 이끌어 내는 방법도
이처럼 확연히 차이가 나기 마련입니다.




당신은 누구를 꿈꾸는가?








인생에 있어 우리가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보다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즉 보다 나은 선택의 기회를 얻기 위해
그리고 어떤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결과를 떠나 더 확률 높은 선택을 하기 위한 지혜를 얻기 위해
공부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유로 책도 읽고
경험도 하도 자기수양도 합니다.


때론 즐거움이나 행복이 목적일 때도 있지만
즐거움이나 행복 또한 많은 경험 혹은 다양한 공부가 없이는
보다 더 나은 즐거움과 행복을 꿈꿀 수도 선택할 수도 없습니다.


도박이 인생의 축소판이듯
도박의 확장판이 인생이기에
우리는 어차피 인생에서
원하건 원하지 않던 베팅(선택)을 계속해 나가야만 합니다.


혹시 타짜를 보고 타짜를 꿈꾸지는 않으셨습니까?


혹은 진정한 인생의 타짜를 꿈꾸시지는 않습니까?


만약 진정 인생에서 타짜가 되기를 꿈꾸신다면
항상 현재의 그들보다 그들이 걸어온 과정
즉 숨겨진 그들의 실패와 노력을
먼저 바라보는 지혜를 가지도록 애쓰십시오.


왜냐하면 ‘타짜’가 진정 우리에게 들려주는 교훈은
짜릿하고 화려한 결말이 아닌
승리하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는 베팅의 준비과정
즉 보다 나은 결말(보나 나은 선택)을 위한
준비와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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