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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굳이 “잃은 것”을 쓰는 이유는 우리 카페 회원님들이 나와 같은 “무지”“어리석음” “조급함” 등에서 왔던 후회와 회한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란 시에서 80 이 넘은 노인이 인생을 되돌아 보면서 쓴 그 시인의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10억은 큰 돈일 수도 있고 작은 돈일 수도 있다. 몇 백억원 몇 천억원을 가진 진짜 부자들은 내 이런 글을 보면 뭐라 할까?
요금을 못내 전기, 상수도가 끊겨 고생하는 사람이 이 글을 보면 그들은 또한 뭐라 할까?
그러나 우리는 맞벌이 부부로서 텐인텐이다.
우리가 남의 도움 없이도 노력하면 모을 수 있는 금액이다.
그것이면 누가 뭐라 해도 우리는 부자다!!
이 글은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글임을 분명히 말씀드리고자 한다.
“동물의 왕국”은 내가 좋아하는 프로다.
사자는 얼룩말의 여러 무리 중에서 한 마리만을 선택하여 공격한다. 다른 얼룩말이 옆에 있어도 거들떠 보지 않고 그 놈에게 집중한다. 그래야 성공률이 높으니까......
비난이 두려운가?
사람 좋다는 말을 듣고 싶은가?
후하고 동정심이 많다는 소리들어가며 적당히 즐기면서 살고 싶은가?
그럼 테인텐을 포기하고 그렇게 살라. 부모님의 유산이 많으면, 고소득자면, 가난도 조금 불편할 따름이지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굳이 나 같이 살 필요는 없다고 진심으로 말하고 싶다.그것도 살아가는 한 방법이고 결코 나쁘지 않을 것이다.
지난번 글에서도 일부분은 밝혔지만, 결혼비용을 내 힘으로 했으며, 농촌의 단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으로 1년 동안 공짜로 살기 위해서 다섯 번이나 이사를 해야 했다. .........당신 미안!
아버지는 무능하셨고(도박.........등등 ....유산 모두 탕진), 딸 하나 보시고 6.25 때 돌아가신 작은 아버지의 유산이고, 우리집의 마지막 보루인, 논 7마지기(1400평)를 형수님이 나 대학 가르치는 비용으로 쌀 84가마에 팔아 갔다.(작은 아버지가 내 양부고 그 논은 내 명의로 되어 있으며 지금 제사는 우리가 지내고 있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형수님은 가난하고 어린 시동생들이 줄줄이 있는 시집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형수님의 현명한 판단
형님의 사회적 배경과 형수님의 탁월한 재테크로 형님네는 그 당시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미혼으로 23살 때 취직을 했으니 형수님 입장에서는 나에게 맡기고 분가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아니겠는가? (형님은 한 핏줄인데 그렇게 까지 모질게 생각하지는 안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고서도 앞뒤 가리지도 못한 형님은 만났다 하면 우리가 너를 가르쳤다는 말로 순종하도록 했다.................지금 생각하면 형님이 고맙다
우리 텐인텐은 남의 도움을 받지 말라. 복종과 굴욕을 원하지 않는다면......
이웃을 도왔다면 그것을 말하지 말라. 자랑했다면 상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다.
아무튼 나는 결혼하여 분가하게 되고 무기력한 부모님과 동생은 힘든 생활을 해야했다.
아버지가 다행히 벌을 치셨는데 그것이 유일한 생계수단이 되었다.
이와 같은 동기에서 나는 경제로부터의 독립을 결심하게 되었다.
에이!! 또 심각해질려고 하네
“제가 굉장히 딱딱하고 이마에 바늘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것 같죠?”
나, 생각보다 아주 부드러운 남잔데 .........이거 정말!
2. 잃은 것 - 두 번째 글
*신혼여행의 추억을 잃었다.
신혼 여행은 우리 고장에서 가까운 내장산에서 1박하고 대전 유성 온천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우리는 신혼여행을 하면서 찍은 사진이 없다.
아니, 딱 두 장 있다. 다리 위에서 안고 찍은 사진......
이 사진만 보면 아내는
“이 때가 제일 예뻤는데..... ”
하면서 자꾸 본다.........그나마 두장 뿐인 사진 닳아 없어지겠네!
필름, 현상값을 아끼자고 사진 찍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이것은 무지였어!
내 아내는 나를 너무 잘 안다.
얼굴표정만 보고도 내가 뭘 생각하는지, 원하는 것이 뭔지 금방 알고 내가 말하기 어려워 하는 것을 먼저 말해서 나를 편하게 해준다.
아내의 제의로 우리는 대전 유성가는 것을 생략하고 꽃병을 기념으로 하나 사 가지고 처갓집으로 직행했다. 절약한 돈으로 선풍기 사자고 하면서 .....
우리 집에는 30년이 넘은 골동품이 3가지가 있다.
신혼 여행에서 그 당시 800원 주고 산 꽃병, 내가 아내에게 연애할 때 생일 선물로 준 목도리, 지금도 아내는 겨울이면 꼭 한번씩 착용 하고 외출한다.
촌 스럽기는 하지만 멋있다. 색깔도 하나 변하지 않았다.(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한 변하지 않을 거야! 회사내 총각 7명의 경쟁을 뚫고 하나밖에 없는 여자직원를 겨우 차지했는데.....)
또 하나, 우리 아들 서너 대여섯살 때, 꿰매고 꿰매어 입힌 내복 한벌 .................에그! 맞벌이 하면서 피곤했을 텐데......
“만족의 지연”은 더 큰 만족을 얻기 위한 인내일 것이다.
그 인내의 댓가로 신혼여행 때 찍은 사진 보다 더 큰걸로 금년 봄에 김천 직지사에 가서 그 것도 왕과 왕비가 되어 6만원이나 주고 2장 찍었다.
신혼여행 때 찍은 것 보다 훨씬 좋다. ..................... 우리는 역시 왕과 왕비가 어울려!!
#가볍게 쓸려고 노력은 했지만 아프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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