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교생활이 거의 끝나고 이제 취업이라는 사회속으로 나가기 위한 몇일이 얼마 안남은 시즘에 어쩌면 조금은 아쉬운 마음과 어쩌면 이 날을 기다렸다. 이제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그 마음에 더욱 좋았을 것이다.




몇친구 녀석이 완주 시골의 저수지에서 텐트를 치고 놀고 있다고 시간되면 오라고 연락이 되었다. 얼마나 좋았겠는가? 이제 사회인으로 가는 마지막길에 청춘을 불사르라고 시간이 마지막으로 주어진 느낌이었다.

이리에서 전주까지 버스에 몸을 실고 내 달렸다. 전주에서 완주까지 가는 골자기 시골길을 지나니 큰 저수지가 나왔다.




나와 2명이 갔는데 개개인의 손에는 먹고 죽자는 건지 소주 댓병( 당시 유리로 된 소주대병)에 안주 맥주 많이도 사왔다.

친구들을 아무리 찿아도 보이지 않는다. 텐트가 있었던 흔적까지 찿았으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없다. 무언가 오차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이렇듯 없을 수가 있다는 것인가.

저녁노을이 넘어가는 그 저수지에서 어둠을 벗 삼아서 그렇게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깊어가는 밤과 취하는 술들...    하여름이지만 어딘가에서 자고 가야만한다.

한 녀석을 고주망태가 되어버려  여기저기로 쳐벅힌다.    미친놈 다 보겠네   하는 표현을 받앗다.  정말 미친놈들이지  밤 열두시가 넘어서 부량한 얼굴로 잠을 재워달라니  어디 그것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여름 날씨지만 쾌 쌀쌀해지네...




더 몇군데 가보니 다른집으로 가보시오  하는 말들 뿐이다.

그래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가보자...




하여 간집에서 할머니가 나온신다.   이어서 할아버지가 나오시어  사정 말씀을 드렸다.     선뜻 누추하지만 사랑방이 있으니 자고 가라고 하신다.

대나무 돗자리가 깔린 그 방에서 피곤과 술에 찌들려 나는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간밤의 술들을 얼마나 많이 마셨음을 알고 있었다.

속이 쓰리고 어질어질한데 입구 문이 열리면서 할머니가 들어오신다.

양손으로 양은 상에 음식들을 가득차려 오시는 것을 거들어서 내려 놓는다.

“젊은 사람들이 웬 술들을 그리 많이 마신 게야..”

어서 식사들 해야제  속 버린당게..

간밤에는 자네들이 막내 아들같아서 남같지가 않아서 재워 준거야.

우리막내도 서울로 일하러 같거든 ...  막내보다더 더 어려보이는 군...




밥상을 보니 상추, 고추에 갖은 반찬들.  시골의 냄새가 물씬 하구나.

국도 우리 술 마신걸 아시고 콩나물국이시네..

결정적으로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 ....

술은 술로 풀어야제.   자  한잔씩들 해야지.

사홉들이 한병을 꺼내시더니 양은 그릇에 반잔씩 따라 주신다.

지금은 사홉들이가 안 나오니까 기본지금 소주가 이홉들이 한병이니까.

두병인 것이다.   할머니가 손수 다 따라주시면서 자 어서들 먹자고 ...

간밤에 그렇게 먹고 또 술이라..

빈속으로 들어가는 짜릿한 그 느낌의 술을 두 번에 나누어서 쭉 들이켰다.

콩나물국물을 떠 먹고 고추를 찍어 먹으니 입맛이 절로 난다.




우리 영감은 새벽에 밥에 나가셨거든.   영감과 이렇게 가끔 한 잔 씩하면 이게 술이 아니고 약이라니까..  그래서 약주라고 하나봐..

언제든 또 놀러오라고 .    다음에는 그리들 술들 많이 마시지말고...




정말 감동의 마음이 일었다.

이런 분이 세상에 또 계실까.




식사를 그렇게 맛있게 해 주시고 우리가는 걸음에 차 타는 곳까지 보시면서 차비하라고 5000원 까지 주셨다.

정말 평생에 잊을 수 없는 분.

연락처나 위치를 안 알아둔 둔것이 지금도 후회스럽다.




전주에 도착하여 이리로가는 차를 기다리는데 참 속에서는 편안하다.

그 이후로 내가 과음한 다음날도 소주 한 병 이상을 가볍게 마시나보다.




술은 술로 풀어야 한다는 그 할머님. 

정말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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