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내 **에게...
사랑하는 나의 아내 지영이라는 이름을 참으로 오랜만에 불러보네.
살갑고 정겨운 이름을 자주 불러주어야 하는데 이제는 이름보다는 "자기야 " 또는 애칭 " 허니 "로 불러야 할 것 같아.
예전이나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내 목숨만큼 사랑하는 자기에게 **아 하기도 그렇고 "야.. 너 .. " 라는 예의에 없는 단어로 소중한 자기를 깍아 내리기에는 정말로 싫어..
어제는 행복했어?
깜짝 놀랬지..
몇일 전에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나는 사회생활한다고 가끔은 모임도 나가고 친구들과 술도 한잔하고 늦은 귀가도 하는데 당신은 억새같고 차돌같은 우리아들 둘하고 씨름하잖아..
둘째 녀석이 워낙 억새서 당신 많이 힘들고 지치는 것 잘 알아..
항상 알뜰하고 검소하게 살림 잘 해주고 아들 둘 잘 키워주고 내 뒷바라지 잘 해 주어서 너무 너무 고맙고 사랑해...
일을 마치고 항상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시장을 지나서 운전을 해서 오잖아..
날씨는 젭법 살쌀해지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식사하고 술도 한잔씩 하는 걸 보면 허기도 지고 부러운 마음에 나도 한잔 하고 싶잖아..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당신 생각이 나는 거야..
애들키우고 살림하느랴 힘들텐데... 가끔 스트레스도 풀어야 하는데..
그래 ... 바로 이거야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애들 다 재우고 나오는 거야..
큰 녀석이 초등학교 2학년, 둘째녀석이 5살이니. 작은 녀석 때문에 항상 걱정이지... 큰 아들에게 만약 깨면 전화하거나 도닥도닥 등좀 두들겨 주렴... 하면 되는데..
어제 얼마만에 단 둘이 하는 데이트였어.
원래는 당신이 좋아하는 가을전어를 먹으로 갈까 했는데
포장마차로 바꾸었지... 우리가 포장마차도 좋아하고 서민적인 운치가 있는 곳도 좋아하잖아...
얼마만이야..
당신과 단둘이 야심한 밤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데이트하며 대화하는것이...애들하고 가끔은 외식도 했지만 우리끼리 하는 결혼하기전의 그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당신과 내가 만난지 어느덧 14년째야.
우리나이 20살때 만났지..
첫눈에 사랑을 느끼며 아끼고 사랑하고 단 하루라도 못보면 눈이 멀 것 같은 소중한 만남으로 너무 행복했지.
금방 만나고 헤어져 버스를 타고 가다가 다시 보고 싶어져서 버스에서 내려 당신이 있는 기숙사로 찿아가 다시 만나고 포옹했던 적이 몇 번이었는지 몰라..
추석때 가정형편 때문에 집에 가지 못하고 혼자 보내는 당신이 안타까워서 나도 시골집에 전화해서 회사일 때문에 시골에 못내려 간다고 정말 죄송하다고 어머니께 거짓말하고 추석 3일을 같이 보내는 불효도 저질렀지...
너무 아끼고 사랑하니까 당신을 혼자 둘 수가 없었어..
그렇게 사랑하고 사랑하다가 나는 군대를 갔었지..
훈련소까지 따라오지 말고 혼자 가겠노라고 전주 터미널에서 버스에 올라타는데 당신은 어머니와 같이 실감이 안나서 울지도 못했지.
나는 혼자 훈련소에 도착했는데 나처럼 혼자 온 사람은 몇 안되더라고...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몰라..
그날밤 입영 첫 날 .
눈은 왜 그리도 많이 오던지.
혼자 시골집, 내 방에서 자면서 밤새도록 울었다는 당신의 말에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몰라.
군대에서의 그 수백통에 사랑의 편지들이 나를 살아가고 힘나게하는 신앙이 되었지...
"안양에서 매미영" 우리 애칭이었지.보내는 편지란에 항상 ...
나는 언제나 당신에게 굳건한 고목나무가 되주겠다고 했었지.
언제든지 지켜주고 쉬게해주는 든든한 고목나무로..
그 편지 때문에 고참 들에게 페치카에 매달려서 맴맴 하기도 했지..
기억나 ..
상병 6호봉때 불미스러운 일로 당신이 면회를 왔는데 외출이 안됐지.
하루내 부대안에 있으니 안타깝고 미안해서 죽겠더라구..
고참들의 성화에 당직사관에게 말을 잘하여 부대앞 에서 식사나 하고오라고1시간 허락을 받아 내었지.
정말 귀하게 얻은 한시간 이었지.
그런데 보신탕집이나 오리탕 집이어서 가는 곳마다 식사는 안된다고 하는거야..
그래서 내가 간절하게 멀리서 애인이 면회를 와서 그러니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아무거라도 좋으니 밥만 달라고 했지..
군인아저씨가 딱하다고 하시면서 허름한 방에 맘좋게 생기신 아주머니가 보리밥에 된장찌개를 주시는데 얼마나 감사하던지...
보리밥을 수저로 입에 넣는데 왜 그리도 서럽고 비참하던지 눈물이 계속나는거야...
닭똥같은 눈물이 하염없이 나는데 내 자신이 그렇게 밉고 싫더라고..
이렇게 까지 내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해야 하나...하는 생각과 내 처지가 안쓰러워서 눈물을 흘리자..
당신이 웃었지!
내 우는 모습보고 도리어 당신이 웃었지..
내가 우는 모습 처음보았다며, 보리밥을 삼키지도 못하는 내모습이 웬지 바보 같다며 웃고 말았지...
알지.. 나 그날 이후 이 날까지 한번도 울어본적이 없다는 걸...
그렇게 눈물의 보리밥을 먹고 당신을 버스에 태워보내는데 내 마음은 찟어 지는것 같았어.
그때 결심했어...
사랑하는 나의 사람.
내가 군대 제대하면 평생을 행복하게 아끼고 사랑해줄거야..
떠나는 버스를 바라보면서 굳게 다짐했지.
그렇게 군대 3년이 안되는 시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면회와주고 편지 해주니 어느덧 제대를 하게되었고 우리 사랑의 결정체인 큰아들 설빈이를 낳은거야.
내나이 25살에 어린나이에 아빠가되어 약간은 당신에게 힘들게도 했지.
백만원에 10만원 월세로 시작해서 정말 어렵게 어렵게 살고 정말 당신 고생도 많이 했어..
나 하나 믿고 어려운 살림과 그 고생들 ...
항상 변함없는 사랑... 정말 너무도 감사하고 고마워..
시간이 흘러 이제 우리 나이34살.
둘째아들 찬빈이도 5살이야.
작지만 감사한 우리 아파트도 장만했고, 내 작은음료 도매업하는 신풍물산 사업체도 어느덧 만 2년째로 힘들지만 잘 꾸려가고 있어.
이 모든 이루어놓은 것들이 다 당신 덕분이야.
내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성공은 당신을 만난그순간 51%가 성공을 이루었고 나머지 49%는 내가 정말 열심히만 하면 잘 될 것이라는 믿음 난 확신해..
요즘 경기가 어려워서 내가 새벽에 아르바이트 한다고 걱정이 많은데 걱정하지마..
나는 고생이라고 생각지 않아.
운동도 되고 아주 하루가 활기차고 즐거워.
세상에 감사하는 마음이 더욱 생긴 것 같아.
나는 열심히 사는 걸로는 만족하고 싶지가 않아.
열심히 산다는 것은 나름데로 최선을 다 한다는 것이잖아.
나는 그 이상을 최선을 다하는 그이상을 더욱 열심히 살고 싶어..
당신과 내사랑하는 가족이 있는한 나는 항상 땀흘리며 행복을 위해 질주하는 야생마가 되고 싶어.
항상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앞으로 십년후에 돈많이 벌어서 잘해준다는 말은 안할께.
그냥 오늘 하루 하루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고 아이들에게 자상하고 든든한 아빠..
당신에게 멋지고 당당하고 따스한 눈빛으로 웃음을 전하고 싶어...
나의 사랑 아내 ** !
진심으로 내생명 다하는 그날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