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명탐정은 밀항중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어떻게하다보니 계속 와카타케 나나미의 작품들을 몰아서 보고 있다. (원래 그런 취미는 없다) 이번 작품은 아마 1910년 혹은 1920-30년대가 배경일 것이다. 이 때를 배경으로 한 일본 소설들을 읽으면 아무래도 입맛이 좀 쓴게 사실이다. 개항 후 일본이 세계무대에 막 등장하기 시작하던, 그리고 세계적으로는 브루조아지의 문화가 절정에 달했던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일본 소설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은 편이고, 나는 소설에 묘사된 그 시대의 패션과 유행, 신문물, 그 모든 것에 관심이 많지만, 어쩔 수 없이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그 시절의 조선의 모습이 겹쳐보일 수 밖에 없다. 중고등학교때 읽었던 수 많은 이 시기의 한국 단편소설들에 등장한 그 어둡고, 지쳤으며, 절망스러운 분위기가 자꾸 떠오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 시대를 낭만적으로 그리고 있는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나, 우리나라의 그런 작품들조차 바닥엔 우울하고 어두운 정서를 깔고 있는 데 반해, 많은 일본소설들에서는-특히 그 시대를 겪지 않은, 전후세대의 장르작가들 작품에서는-이 시대를 그저 향수와 낭만이 뒤섞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마치 그들이 서양의 귀족문화나 부르조아지문화를 그리듯이 말이다. 소설중에-이 소설에는 나오지 않지만-조선인에 대한 묘사가 나오면 정말 마음이 아파진다. 특히 전쟁을 낭만적으로 그리는 것보다, 마치 태평양 전쟁과 군국주의 시대가 없었다는 것처럼 구는 소설들은 아무리 재미있게 읽고 그저 시간 때우기라고 주문을 외우더라도 좋은 뒷맛은 결코 없다.
서론이 길었는데-이 소설은 일본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유람선 안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 코지 미스터리이다. 와카타케 나나미는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 뒤에 숨은 악의나 모순을 슬쩍 드러내는 것으로 유명해진 작가인데, 이 소설에는 그런 부분이 다른 작품에 비해서 발견되지 않는다. 도리어 마지막 부분은 상당히 로맨틱하다.
그나저나, 등장인물들 이름이 헷갈리기 시작했으니 일본소설을 좀 쉴 때가 온 것 같다. 누가 범인이고 누가 피해자고 누가 탐정역인지 이름이 헷갈리니...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