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독자로 하는 책은 대개 어린이가 주인공이다. 그런데 이 책의 화자는 봉지라는 개이며 주인공은 할머니다. 어린이인 은지는 할머니의
손녀로 등장할 뿐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봉지와 할머니의 공통점은 늙었다는 점이다. 즉, 노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가족의 모습, 더
나아가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쯤되면 어린이가 과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걱정될 법하지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봉지가 꽤 재치있는 개이기 때문이다.
시골에 사시는 할머니가 몸이 안 좋아 도시의 자녀들 집에 돌아가며 머무는데 은지네 집이 마지막이다. 오메 할머니라는 별명은 할머니가 말할
때마다 접두사로 '오메'를 연발하기 때문에 봉지가 붙여줬다. 오메 할머니는 봉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 나이의 노인들이 그렇듯 개는
개답게 밖에서 키워야 하고 사람의 필요에 의해 기르는 동물일 뿐인데 봉지는 집안에서 곱게 자라는데다 은지와 같은 방에서 잠을 자는 것이 영
못마땅하다. 하지만 오메 할머니는 봉지의 입장에서 보자면 굴러 들어온 돌이기 때문에 선택권이 없다. 아니, 오히려 그나마 봉지가 있어서 오메
할머니는 심심하지 않게 지낼 수 있다. 동네 할머니들을 만나러 갈 때도 언제나 봉지를 데려가고 집에서 혼자 있을 때도 말벗이 되어주는 건
봉지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 서로를 이해한다고나 할까. 그래서 봉지가 아픈 것도 가장 먼저 알아보는 것일 게다.
오메 할머니는 은지네 집에 있는 동안 동네 할머니들 문제를 해결해 주지만 정작 본인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다. 아들 내외가 힘겹게 사는
모습을 보고도 도움은 커녕 짐이 되는 것만 같아 괴롭다. 결국 시골로 내려가기로 결심하고 그동안 함께 지냈던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는데 이것이
정말 마지막 선물이 되고 만다. 봉지도 늙어서 이가 빠지고 다리가 아파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며 과연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할머니를 좋아하는 은지를 통해, 함께 늙어가는 처지인 봉지를 통해 우리 시대 노년의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동화다.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주제가 너무 무겁다고, 열 살만 넘어도 엄청 나이 먹었다고 생각하는 어린이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걱정할 필요없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개를 화자로 설정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이 공감하기 힘든 노년의 문제를 아이들이 좋아하는 개를 화자로 설정하여 이야기를
풀어간 작가의 혜안이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