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 2010년 전면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워낙 유명한 책이기에 진작 사 놓고 읽으려고 했으나 내용이 너무 어려워 쌓아 놓기만 했던 책인데 이번 여름에 다시 시도해보니, 읽을 만하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아마도 그동안 과학 분야 책을 읽었던 것이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즉 독서력이 좀 좋아졌다고나 할까.

 

책에 대한 설명이 따로 필요없을 정도로 워낙 유명하고 많이 읽히고 리뷰도 많은 책이지만, 또한 이 분야의 리뷰는 되도록 쓰지 않지만(대개는 책 내용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자신할 수 없기 때문에) 이번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대개는 책을 다 읽으면 바로 다른 책을 읽는데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다. 이 감동이 사라지기 전에 뭔가를 끄적거려야 할 것 같은 중압감에 결국 간략한 느낌이라도 적어야겠다.

 

이 책에 대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 인간을 유전자가 살아남기 위한 생존 기계로 보았다는 점인데, 맣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처음에는 그 정의에 살짝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갈수록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갔다. 생물의 궁극적인 목적이 자손을 많이 퍼트리는 것이라는 점에 동의한다면 저자의 의견에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자손이라는 것이 결국 유전자의 집합체이므로. 극단적인 표현으로 생존 기계라는 말을 사용했을 뿐이지 의미면에서는 동일하다고 본다. 30주년 기념판 서문에서 '한 여학생이 이 책을 읽고 인생이 허무하고 목적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며 교사가 항의 편지를 보냈다는데 이 또한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책을 덮을 때쯤에는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갔다. 다만 나는 '허무주의적 염세관'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자연의 신비에, 그리고 결국은 유전자의 신기함에 놀랐을 뿐이다.

 

진화론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떻게 진화했을까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처음 생명체가 생겨날 때는 하나의 원소에서 시작했는데 어떻게 전혀 다른 개체들이 생겨났는지, 또 언젠가는 하나의 개체가 다른 개체로 수렴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갖고 있었는데 그게 조금은 해결되었다. 원시 수프(이에 대한 설명이 이 책에는 나오지 않는데 <코스모스>를 전에 읽었기 때문에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만약 <코스모스>를 읽지 않았다면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고 어깃장을 놓았을지도 모르겠다.) 에서 생명체가 태어나고 그러한 것들이 서서히 진화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지만 위의 두 가지 의문에 대해서는 해결이 안 된 상태였으나 이제 이해가 간다.

 

우선 진화란 유전적인 변화, 즉 돌연변이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유전자는 자기 복제를 하면서 개체를 만들고 끊임없이 이어져내려오는데 돌연변이가 없다면 언제나 같은 모습일 게다. 만약 돌연변이가 안 좋은 상태로 되었다면 오래 살아남지 못했을 테니 긍정적인 돌연변이가 결국 개체를 진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병목형' 생활사에 대해 병목말과 가지말을 예로 들며 자세히 설명하는데 명쾌하다. '병목'이란 개체가 단일 세포인 수정란에서 시작하여 수많은 세포분열을 한 후 완성된 개체로 발전하고 최종적으로 수정란이라는 단일 세포를 다음 세대에 전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병목형 생활사에서는 전혀 새로운 제도판으로 돌아가서 어떠한 돌연변이로 인하여 진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개체가 다른 개체로 수렴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인다. 어차피 유전자는 자기 복제자이므로. 기껏 변해봐야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므로.

 

그렇다면 원시 수프에서 하나의 원소로 시작했는데 어떻게 지금처럼 수많은 종이 생겨날 수 있었을까가 의문으로 남는다. 여기에 대한 설명은 13장의 '숙주와 기생자'에서 설명하고 있다. 기생자 유전자와 숙주 유전자가 후손을 남기기 위한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 같이 일한다면 어느 순간에는 두 개의 몸이 하나의 몸이 되도록 진화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애초에는 두 운반자가 존재했다는 것조차 알아낼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즉 '우리 같은 개체는 이러한 유전자들 여럿이 합쳐진 궁극적인 통합체(412쪽)'라고 설명하는데 그렇게 되면 위에서 제기한 첫 번째 의문이 해소된다. 물론 <코스모스>에서는 조금 다르게 설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의 방대한 내용을 내 짧은 지식으로 정리할 수 없으므로 인상적이었던 부분만 적어보았다. 이 밖에도 죄수의 딜레마가 인간의 생활뿐만 아니라 동식물의 생활에도 적용된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으며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치열한 경쟁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는 생각에 조금 씁쓸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졌다는 여학생의 이야기에 공감이 간다. 그러나 저자가 이야기하다시피 어차피 유전자는 스스로 목적을 가지고 행동할 정도로 영악한 것이 아니라 미리 프로그램된 대로 행동할 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냥 자기가 가던 길을 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 읽었던 이 분야의 책들이 실은 이 책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원래 과학이라는 학문이 선과 후가 명확한 경우가 꽤 있다고 들었다. 따라서 저자의 의견을 기반으로 이후 더 많은 연구가 활발했을 테고 그에 대한 책을 읽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한 책을, 그리고 어설프게나마 의문을 해결할 수 있었던 책을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여름은 뿌듯하게 보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모든 세포는 똑같은 유전자를 품고 있다. 다만 다른 종류의 특수화된 세포마다 다른 유전자의 스위치가 켜질 뿐이다. -417-

만일 흡충의 유전자가 달팽이의 난자나 정자 속에 들어가 다음 세대로 전해진다고 하면 두 개의 몸은 하나의 몸이 되도록 진화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애초에는 두 운반자가 존재했다는 것조차 알아낼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 같은 `단일` 개체는 이러한 유전자들 여럿이 합쳐진 궁극적인 통합체다.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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