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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당무 ㅣ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39
쥘 르나르 지음, 전혜영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4년 9월
평점 :
예전에 초등학생용으로 된 <홍당무>를 읽으며 어떻게 이런 가족이 있을까 의아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의구심은 청소년용으로 된
책을 읽으면서도 여전하다.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게 아니라 이것도 가족인가 싶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덜
아픈 손가락이 있다는 사실이야 안다. 그러나 르픽 부인처럼 그렇게 노골적으로 차별을 하는 엄마가 있을까 싶어 의아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엄마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 안달하는 홍당무가 안쓰럽다. 굳이 그렇게 애쓸 필요가 있을까 싶다가도 어린이에게 부모란
절대적인 존재이므로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홍당무가 더 안쓰럽다.
흔히 소설은 주인공의 상황이 차차 나아지길 바라며 읽는데 홍당무에게는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르픽 부인이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는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끝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잠시 홍당무가 엄마에 대한 불평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오길래 앞으로는 홍당무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서 상황이 조금 나아지려니 기대했건만 이 조차도 거기서 끝이었다.
작가는 어린이들이 사실은 마냥 순진한 것이 아니라 악덕과 미덕을 동시에 지닌 복합적인 인격체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고자 홍당무를
창조했다고 하는데 그 의견에 일견 동의하면서도 책을 덮었을 때 무언가 찜찜함이 남는 게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소설에 비현실적인 환상을
기대하는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 비록 어린이들이 선하지 않고,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가족도 많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소설에서는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홍당무에게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아버지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이왕이면 조금 더 나아가 홍당무가 자신의 고민과
부당함을 털어 놓을 수 있는 단계까지 나아가길 기대했으나 아버지도 자신의 삶의 무게에 짓눌려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작가는 당시의 가족 문제를 꼬집고 싶었던 것일까. 사랑없이 결혼하고 교양없는 아내가 못마땅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살아야만 했던 홍당무의 아버지를
통해 남자의 고뇌에만 집중한 듯하다. 여자 작가였다면 어떻게 풀어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프랑스 중산층 가정을 모델로 한 모범적이고 이상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루던 시절에 인간과 가족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이 책이 나왔을
당시 사람들의 충격을 이해할 만하다. 그래서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한 사회적 배경과 함께 읽었을 때 이 책의 가치와 의미가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단순히 홍당무가 가족들로부터 차별받는 모습에만 초첨을 맞추고 읽으면 처음에 내가 느꼈던 것처럼 그저 홍당무가 안쓰럽고 답답하기만 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뒷 부분의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나처럼 문학에 문외한인 사람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또한 그래서 이 시리즈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