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나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74
이옥수 지음 / 비룡소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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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히 청소년책은 두꺼워서 술술 읽힌다. 또한 한 번 손에 잡으면 놓을 수가 없어서 더 빨리 읽는다. 그러나 읽는 것과 읽고 나서 곱씹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다. 분명 읽을 때는 재미있게, 다른 일을 다 미루면서까지 푹 빠져 읽었는데 읽고 나서 며칠 지나니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그저 밋밋하게, 보통의 청소년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소재를 좀 더 재미있게 이야기했다고나 할까. 아니다, 읽으면서 한 가지 불편한 게 있긴 했다. 바로 주인공 정호가 끊임없이 가족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을 때다. 정호가 부모님에게 화를 낼 법도 한데 속으로만 화를 내고 겉으로는 말 잘 듣는 아들을 연기하고 있는 게 답답했다. 그러면서 속으로라도 부모님께 화를 내는 자신을 질책하는 장면이 더욱 불편했다. 오로지 가족을 위하여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작가의 생각이 투영된 것인지, 아니면 독자가 그것을 불편하게 느끼도록 해서 청소년을 이해하도록 하려고 한 작가의 의도대로 내가 움직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나치게 가족을 외치는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 청소년까지 가족을 위해서 자신의 감정도 눌러야 하는 것인지, 그저 씁쓸할 따름이다. 물론 나중에는 정호가 선생님들과 부모님 앞에서 솔직한 자신의 감정을 터트렸지만 거기서 이야기가 끝나는 바람에 정호의 변화된 모습을 볼 기회가 사라졌다.

 

  솔직히 정호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가 아니다. 아무리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해도 팔이 뒤틀리고 짧아 제 기능을 못하는 아버지와 다리를 심하게 절고 키가 작은 어머니를 아무런 괴로움 없이 다른 사람에게 드러낼 만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렇기 때문에 정호는 아무와도 어울리려 하지 않고 혼자만의 세계에서 지내고 싶어하는 것일 게다. 그러면서도 정호는 부모님을 부끄러워하는 자신이 더 한심해서 괴로워하는데 누구라도 그럴 수 있다고 이야기 해주지 않는다. 아니지. 효은이가 그 역할을 했구나. 그나마 정호와 비슷한 경험을 먼저 겪은 효은이 덕분에 정호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어른이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것은 단지 잔소리일 뿐이지만 친구가 하는 얘기는 똑같은 내용이라도 충고가 되는 청소년의 특징을 잘 드러내준다. 때마침 정호 주변에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효은이 있었다는 것이 다행이면서도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우연에 김이 빠지기도 한다. 

 

  한 마디로 이 책은 개인의 성장에 초점을 맞췄다기 보다는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을 찾아가는데 큰 비중을 둔 듯하다. 여기에 살고 있으면 당연히 이곳의 영향을 받기 마련인지라 나도 가족을 가장 중시하긴 하지만 가끔은 그런 문화가 부담스럽다. 내가 하고 싶은 것도 가족 때문에 포기해야 할 때, 혹은 가족의 경조사를 챙기느라 정작 중요한 일을 미뤄야 할 때는 더욱 그렇다. 다른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걸 나만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감동적으로 읽은 사람도 있을 테니 순전히 가치관이 달라서 생긴 차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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