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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수의 탄생 ㅣ 일공일삼 91
유은실 지음, 서현 그림 / 비룡소 / 2013년 11월
평점 :
오랜만에 만나는 유은실 작가의 책인데 읽고 나서도 참 오랜만에 글을 남긴다. 그동안 바쁘기도 했고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고민하느라 선뜻 쓸 생각을 못하기도 했다. 유은실 작가의 글은 아주 웃긴 이야기를 시침 뚝 떼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게 매력이었는데 이 책은 그런 매력이, 없다. 대신 다른 매력이 있다. 간결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여전하지만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일상을 그리고 있어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코 평범한 사람의 일상이 아니다. 만약 일수 씨(이처럼 3인칭으로 부름으로써 독자가 주인공에게 일정한 거리를 느끼게 한다. 이 또한 동화책에서 만나는 새로운 시도가 아닐까 싶다.)와 일석 씨가 그냥 각자의 가게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끝났다면 평범한 이야기가 되었겠지만 서른이 넘어서 자아를 찾기 위해 떠난다는 마지막은 평범하다고 할 수 없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동화지만 그 주인공이 어른이 되기까지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 부분에 다다랐을 때는 동화 같은 느낌이 안든다.
사람은 언젠가는 사춘기를 겪는다고 한다. 부모가 모든 것을 정해주는 평탄한 삶을 살더라도 결혼을 하고 나서든, 아이가 다 큰 후에든 한 번씩은 앓고 지나가는 홍역 같은 것이라고 한다. 간혹 주변에서 자녀의 삶을 설계해 주고, 자녀가 그 길을 착실하게 따라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 말이 꼭 맞는 것 같진 않지만 일수 씨의 삶을 보면 그들도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너무나 평범해서 완벽하게 보통인 아이라고 여겨지는 일수지만, 부모에게는 언젠가는 특별한 재능을 발휘해서 크게 될 귀한 인물인 것이다. 그래서 혹시 늦되는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일수의 성장기를 지켜보지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평범이 지나쳐 비루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제대로 된 직장도 없이 그저 초등학생처럼 쓴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붓글씨를 대신 써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 버는 일수 씨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자기의 생각과 의지는 하나도 없이 사는 삶을 아무런 의심 없이 살던 일수 씨는 동네의 명필에게서 쓸 모는 누가 정하느냐는 말을 듣고 그 말이 계기가 되어 결국 자신의 쓸모를 찾기 위해 떠나고 만다. 적어도 일수 씨와 일석 씨의 돌아왔을 때의 삶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자각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대의 많은 어른들이 문제겠지.
처음에 읽을 때는 일수가 어린 시절을 너무 빨리 지나 청소년 시기에 이야기를 집중할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청소년기를 지나 이십대를 지나 삼십대까지 나간다.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대개의 동화에서 주인공은 동화를 읽는 아이들 나이에 머무는 것에 비해 이 책은 한 사람의 일대기(비록 삼심대까지만이지만)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처음엔 이게 뭘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동화도 아닌 것이 청소년 소설도 아닌 어정쩡하게 끼어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다시 한번 들춰 보니 은근 매력있다. 일수 씨의 행동을 따라가는 것도 그렇고 결국 자아를 찾기 위해 떠나는 마지막 장면도 그렇고 서술 방식도 그렇다. 작가가 꼭 써야만 했던 이야기라는 건 결국 주제가 아니라 소재가 중요했던 것일 게다. 작가는 일수 씨의 삶을 통해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일수 씨의 삶에 그와 비슷했던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었던 건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