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35
헤르만 헤세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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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어떤 사이트에 가입할 때 가장 감동적인 책을 쓰라는 질문을 받을 때 적는 게 바로 <데이안>이다. 그러나 무안하게도 내용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중학교 때 읽은 책인데 당시 어려웠다는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구절에 나도 많이 끌렸다는 점이다. 그때만 해도 다른 매체에서 인용된다던가 사람들이 추앙하는 글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던 시절이었는데도 이상하게 그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솔직히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지만 그냥 끌렸던 듯하다. 그러다 어느 순간(그게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 문장의 의미가 이해되면서 머릿속에서 불꽃이 터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더랬다. 모르긴 해도 그 후부터 이 책이 더욱 가슴속에 남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까지 문학 작품에 대해 그런 경험이 딱 두 번인데 한 번은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갑자기 깨닫게 되는 그 순간의 환희란 경험해보지 않고는 표현할 수도, 이해시킬 수도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여하튼 그러한 경험을 했던 책이 바로 <데미안>이라서 언젠가는 꼭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기도 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간사한지라 읽어보고 싶은 것과 읽는 것이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딸에게 읽어봤으면 하는 책 중 하나라서 민음사의 책을 사줬으니 마음만 먹었다면 충분히 읽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다가 이번에 푸른숲주니어에서 보내준 이 책을 받고 그 날 당장 읽기 시작했고 금방 다 읽었다.

 

  책을 덮고 나서 그 여운을 더 느끼고 싶어서 다른 책을 안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리뷰를 쓰고 싶었으나 이 또한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지라 며칠을 미루고 말았다. 한창 감수성이 풍부했던 시절, 무엇 때문에 그토록 마음을 빼앗겼는지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다시 읽은 지금도 그 당시와 다르지 않은 감흥을 느꼈다. 물론 그렇다고 그 둘이 똑같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을 어른이 되어 다시 읽을 때 단순히 내용만 새록새록 상기되는 게 아니라 당시의 분위기와 느낌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테스>에서 건초 냄새가 나는 길을 마차를 타고 가는 부분이 있다면 가을의 어떤 부분과 연결지어서 마치 내가 그 안에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나중에 <테스>를 떠올리면 내용보다 시골의 그런 정취가 기억에 더 남는 것이다. 분명 이 책을 읽을 당시도 주변의 것보다 내 안의 감정에 더 천착하지 않았을까 싶다. 뭐, 그때 고민을 얼마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피상적인 일에 집착하지는 않았을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싱클레어의 자기내면으로 향한 고뇌와 데미안의 충고가 그토록 서늘한 느낌으로 다가와 오랫동안 나를 사로잡아 버렸던 게 아닐까.

 

  지금 다시 읽어보니 당시 내가 얼마나 이해하고 읽었을지 의문이 든다. 서양의 종교가 발전하고 변천하는 과정도 몰랐을 테고 독일이 어떤 나라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을 텐데 여기서는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많으니 그런 부분은 그냥 넘겼을 것이다. 그래도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대화를 읽다 보면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 아닌, 제대로 된 대화와 생각이 무엇인지 느끼지 않았을런지. 솔직히 요즘 아이들의 대화를 들여다보면 도대체 그 중에서 대화라고 할 만한 게 있기나 한지 의문이 든다. 하긴 어른들의 대화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언제나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만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언제나 하나마나 한 이야기만 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서양의 문학고전을 읽다 보면 종교에 천착(솔직히 내가 보기엔 집착같지만)한 것들이 많이 있는데 종교를 갖지 않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그런데 희안한 것은 여기서도 종교적인 삶을 추구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그다지 거슬리거나 이해가 안 가거나 하질 않는다는 점이다. 이 책에 대한 비판도 있다고 하는데 문학도가 아닌 사람으로서 그런 부분까지 알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의아했던 것은 데미안과 싱클레어가 전쟁에 어떠한 거부감이나 의심 없이,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원한다는 부분이다. 데미안이 전쟁에 나갔다면 그것은 독일군으로 참전한 것일 텐데 말이다. 헤세는 전쟁에 반대하지 않았던가? 소설은 당시 사회를 비춘다는데, 요즘 우리 사회를 비추는 소설은 뭐가 있을까. 내가 워낙 그런 소설을 즐기지 않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제대로 사회를 풍자하고 꼬집는 책은 없어 보인다. 자극적이고 판타지적인 것 뒤로 숨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해 본다. 물론 우리 소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지만 말이다. 여하튼 여전히 감흥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아주 오랜만에 옛날을 떠올리며 그때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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