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5월 18일 보림 창작 그림책
서진선 글.그림 / 보림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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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길거리에서 미니스커트의 길이를 자로 재는 사람, 지나가는 남자들의 머리를 길다며 자르는 사람이 있었다고 하면 그 누가 믿기나 할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실제 있었던 일이고 불과 30여 년 전이라고 한다면. 물론 나도 직접적인 세대는 아니다. 그때는 아직 어렸기 때문에 세상 돌아가는 일을 몰랐고, 시골이라 그런 걸 볼 일이 없었다. 다만 같은 동네에 사는 사촌 오빠가 대학생이었는데 한동안 집에 내려와 있었다는 것만 기억날 뿐이다. 아마도 계엄령이 내려졌던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이 책의 배경이 된 5.18민주화운동 전후였겠지.

 

  이제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고 책이나 영화 등 다양한 매체로 다루고 있지만 그림책으로는 못 봤다. 사실 유아나 초등 저학년에게 그러한 사실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겠나. 전국적으로 오랜 기간동안 있었던 한국전쟁조차도 먼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해당 지역에 살고 있는 아이가 아니고서는 광주라는 곳이 어디인지 감조차 없기 때문에 더더욱 공감하기 어려운 아이들에게 말도 안 되는 그 때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느냐 말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이해 못할 것이라고 해서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불편하지만 알아야 할 역사적 사건이란 게 있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그림책답게 접근을 하고 있다. 사실이나 아픈 부분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주변에 다양한 메타포를 배치함으로써 뭔지 모르지만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한다. 말로 설명해서 이해하는 것보다 가슴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 머리속에 더 오래 남는 법이다.

 

  어린 남자아이들 대개가 그렇듯이 주인공은 총을 무척 갖고 싶어하지만 부모님은 절대 사주지 않는다. 대신 누나가 나무젓가락으로 총을 만들어주지만 그래도 다른 친구가 갖고 있는 총을 더 부러워한다. 당연한 결과다. 진짜처럼 생긴 총과 나무젓가락 총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그러나 군인들이 진짜 총을 들고 다니고, 총을 쏘고, 사람들이 우는 모습을 보며 주인공은 스스로 깨달았을 것이다. 총이 어떤 것인지, 왜 부모님이 사주지 않았는지. 만약 군인들이 진짜 총을 들고 다니는 것만 보았다면 더 갖고 싶어했겠지만 사용하는 방식을 보고, 더구나 누나도 거기에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으며 총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나무젓가락 총마저 버리게 된다.

 

  표지를 펼치자마자 다양한 총 그림이 잔뜩 나오기 때문에 남자 아이들이라면 거기서 한참을 머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주인공 아이가 그랬듯이 총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게 되면 적어도 동경할 장난감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주인공의 누나가 무사히 돌아오면 좋겠다. 그런데, 나라면 이 책 속의 부모처럼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물론 그 부모도 나가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이야기했지만 딸이 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진짜 못 나가게 할 작정이었다면 밤새 지키고 있던가 했겠지. 세상에는 용기있고 괜찮은 사람들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많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지금 우리가 아주 자연스럽게 누리고 있는 자유도 그 사람들 덕분이다. 곧 있으면 다가오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맞이하여 희생자들에게 감사와 함께 조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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