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째 나라 높새바람 30
김혜진 글.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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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력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눈에 보이거나 가능성 있는 것만 믿는 성격 때문인지 판타지 소설이나 동화는 읽기가 어렵다. 작품배경을 스스로 상상해 내야 하니 시간이 더 걸리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탄력이 붙으면 손을 떼기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책도 전편을 읽은 지 너무 오래 되어서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야 할 때는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술술 읽혔고, 심지어 뒷부분이 궁금해서 밤 늦게까지 읽었다. 읽는 동안 각 나라를 상상 속에서 어렵지 않게 그릴 수 있었는데 그런 내 자신이 어찌나 기특하게 느껴지던지. 전 같으면 그거 상상하느라 읽는 속도가 느려서 덩달아 책 읽기도 힘들었는데 장족의 발전이다.

 

  판타지 소설의 배경은 현실에서 접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나라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인간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조금씩 바꿨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를 테면 빈땅 왕(솔직히 말하자면 허수아비 왕을 세운 현자가 맞지만)이 불의나라 사람을 노예로 부리면서 그들은 생각도 감정도 없는 돌덩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부분을 보면 그 옛날(뭐, 그리 오래된 옛날도 아니지만)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을 잡아다 노예로 팔면서 감정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일이 오버랩된다. 모르긴해도 당시 사람들도 아프리카 사람들이 감정도 있고 인격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느끼고 있지 않았을까. 단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모르는 척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빈땅의 현자처럼.

 

  공중도시의 아이라서 날개가 있지만 꿈의 사막에서 자랐기 때문에 날지 못하는 참이 자신의 본연의 이름인 차미시나로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기까지의 모험이 길게 이어지는 이 책은 완전한 세계란 어떤 것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잠자는 동안 꾸는 꿈이 사실은 꿈의 사막이라는 나라에서 사람들이 소망상자를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상큼한 설정은 잠시 정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꿈이라는 단어를 소망과 동일하게 쓰는 것만 봐도 일이 있어 보인다. 남의 꿈에 간여할 수 없고 꿈 꾼 이의 의지를 존중해야 하지만 명은 소망상자에 있는 이의 소망을 이루어주어야 한다는 자신만의 소망을 갖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고 봐야겠다. 참이 공중도시로 가게 된 이유보다 그 이유가 이야기의 비중을 더 많이 차지하고 있으니까.

 

  또한 공중도시의 페카와 투랏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려는 인간을 빗댄 듯하다. 자연은 그대로 있을 때 가장 가치 있다는 사실을 우리 인간은 종종 잊고 산다. 최초존재에게 자연의 이치를 묻고 도움을 구하는 대신 자신들이 발견한 뜬돌을 이용하여 공중도시를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페카는 결국 호된 대가를 치르고 만다. 독자는 참의 모험을 통해 페카의 계획이 무모하고 잘못된 것이라고 알고 있으니 참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현실에서 모든 상황을 다 파악할 수 없는 인간으로서는 페카처럼 행동하거나 그런 행동을 지지하는 경우가 꽤 있다. 과학의 힘을 빌린다는 명목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만 봐도 알 수 있다.

 

  파라도가 참을 영웅이라고 추켜세우자 참은 단지 필요한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처음 꿈이 사막에서 나올 때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진 것을 깨닫게 된다. 본문 중간에도 뮬의 시선을 통해 모험과 다양한 경험을 통해 단단해지고 성숙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만 정작 참의 내면의 성숙은 많이 느끼지 못하겠다. 처음으로 푹 빠져 읽었고 읽고 나서도 길게 여운을 느꼈던 <끝없는 이야기>의 감흥을 기대했었나 보다. 그 책도 읽는 동안은 좀 지루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읽고 나자 주인공이 진짜 성장한다는 게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저절로 느껴진 것에 비하면 이 책은 주인공의 모험을 정신없이 따라다니느라 내면의 모습에는 귀를 기울일 여유를 주지 않았던 게 아닐런지. 그래도 이만한 판타지 동화가 있다는 게 어딘가. 4편 모두 상당한 두께에, 많은 나라가 나오지만 구성이 탄탄해서 서로 잘 맞아 돌아가는 이런  판타지 동화를 김혜진 작가의 책 외에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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