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중계 고래 싸움 일공일삼 82
정연철 지음, 윤예지 그림 / 비룡소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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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부모는 아이 때문에 기분이 좌우되곤 한다. 남들에게서 아이에 대해 칭찬을 듣거나 아이를 잘 키웠다는 소리를 들을 때 혹은 성적을 잘 받아왔을 때 부모는 기분이 무척 좋다. 괜히 웃음이 나오고 모든 일이 잘 될 것만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반대로 학교에서 안 좋은 일을 당했다거나 아이의 행동이 올바르지 않다는 소리를 전해들었을 때는 정말이지 모든 의욕이 사라지고 만다.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 또한 마찬가지라는, 당연한 사실을 간과하곤 한다. 아이도 부모의 행동으로 인해 기분이 좌우되는 강도가 어른의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첫번째 이야기이자 표제작을 보며 그간 내 기분에 따라 아이들을 대했던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다정이 엄마 아빠의 일이 남의 일 같지 않아보이니 말이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라고 생각하는 다정이, 아마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모가 말다툼할 때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처음에는 눈치를 보다가 어느 정도 크면서 부모의 잘잘못을 지적하기도 하는데 그쯤되면 아이가 홀로서기를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된다. 물론 당시는 인정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다정이의 새우 등 터지는 일은 학교에서도 똑같다. 그러나 집에서 잘 헤쳐나간 것처럼 학교에서도 잘 헤쳐나간다. 그 배경에는, 비록 싸우더라도 다정이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엄마 아빠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만약 가정환경이 불안했다면 학교에서 완전 문제아로 전락하거나 다른 아이들의 타겟이 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자꾸 부모 입장에서 이런 동화를 읽어서인지 그 부분에 눈이 간다. 게다가 전처럼 아파트 단지의 비슷한 환경에서 사는 아이들만 봤다면 이렇게까지 부모와 가정의 역할에 큰 무게를 두지 않았겠지만 동화에서나 나올법한 환경에 처한 아이들을 접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제목부터 결론에 대한 힌트를 주고 있었는데도 이야기에 빠져들어서 그걸 읽어내지 못했다. 친구관계를 다루는 이야기는 대개 친했다가 한 명을 왕따시키는 식으로 전개된다. 규원이와 보라도 한때는 무척 친했지만 어른들 문제로 서로를 미워하는 사이로 변했다. 아니 오히려 규원이가 보라를 철저히 왕따시키는 관계라서 독자는 규원이가 얄밉기까지 하다. 그래서 보라의 지갑이 없어졌을 때 여러 정황 상 규원이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일부러 보라를 의심하던 규원이의 행동도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그래서 독자는 마지막의 반전 아닌 반전에 허탈하기도 하고 어린 아이들의 영악함에 씁쓸하기도 할 것이다. 비록 그것이 현실이더라도 말이다. 그나마 실제로 그처럼 멀어졌던 아이들이 화해할 가능성이 거의 없고 그 상태에서 뾰족한 해결책이 있을 수도 없는 현실을 제대로 그려냈다는 작가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으로 씁쓸한 마음을 달랜다.

 

  네 편의 이야기가 때로는 경쾌하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이 싸하기도 하다. 이야기가 경쾌하게 전개되면 현실과 따로 노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고, 그렇다고 마냥 어둡게(현실적으로) 진행되면 너무 칙칙한 것 같아 읽고 싶어지지 않는다.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줘야하는데 오히려 절망을 주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이야기는 그 중간을 적절히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첫 번째 이야기가 모두 친해졌다는 식으로 결말지었더라면 너무 비현실적이고 뻔한 결말이라서 다음 이야기도 삐딱하게 읽기 시작했을 텐데 다행히 현실적이면서도 희망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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