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에 햇살 냄새 난 책읽기가 좋아
유은실 지음, 이현주 그림 / 비룡소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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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식사 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한 분이 '~라도 잘 하니 다행'이라는 말을 하는 순간 이 책의 지수가 생각났다. '도'라는 글자 하나에 따라 어감이 이처럼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물론 지수가 말하는 '도'와 위에서 이야기한 '도'는 다르지만 매번 '도'를 남발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걸 듣는 것도 괴롭긴 하겠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지나가다가 어김없이 만나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도를 아십니까'라며 접근하는 사람들이다. 그럴 땐 바쁜 척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치는 게 상책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동화에서 도를 찾는 아이가 있다니 도대체 어떤 아이일까. 그런데 알고 보니 그런 '도'가 아니다. 역시, 유은실 작가는 평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독자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이 작가는 너무 평범해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문제라'도' 재미있는 소재로 승화시킨다고나 할까. 게다가 현실을 미화하지도, 그렇다고 비관하지도 않는다. 보통 같으면 지수가 변한다거나 현우가 마음을 바꿔서 문제가 말끔히 해결된 다음 날을 맞을 테지만 얘네들의 상황에서는 변한 것이 별로 없다. 아니다. 상황은 안 바뀌었어도 마음은 바뀌었다. 지수랑 짝하기 싫어서 짝 바꿔 달라고 말하고 싶다던 현우가 그냥 아무 말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마음이 바뀌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그걸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때로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감수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대단한 발전이다.

 

  '어린이는 역시 어린이다'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우는 이야기들을 읽으며 웃지 않을 수 없다. 동생이 태어난 걸 시샘해서 미워하지만 그래도 결정적인 순간에 동생을 걱정하는 모습의 <백일 떡>, 햇볕이 잘 안드는 집에 살지만 그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밝은 햇살을 쬐는 표제작, 그리고 가장 웃기면서도 아이다움이 잘 드러난 <기도하는 시간>은 모두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 그대로다. 나를 비롯한 어른들은, 흔히 반지하에 살고 가정환경이 썩 좋지 않아 보이는 아이는 마음도 어둡고 삐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림이가 마음 다치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며 읽는다. 그러나 예림이는 참 잘 크고 있다. 계속 그런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사실 저학년 동화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곤 한다. 그러다 《멀쩡한 이유정》 같은 책을 읽으면 무척 뿌듯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역시 뿌듯한 책 읽기였다. 솔직히 처음에는 <기도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별로라고 생각되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읽을수록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재미있었지만 그 후로 싹 잊어버리는 것보다 이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괜찮게 여겨지는 작품이 진짜가 아닐까 싶다. 여하튼 유은실 작가의 책을 만나는 건 언제나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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