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엘리어트
멜빈 버지스 지음, 정해영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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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부모의 역할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한다. 만약 아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뒷바라지 해주지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깝고 자괴감을 느낄까 싶다. 어느 한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능력되는 한, 아니 능력이 조금 안 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뒷바라지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생각으로는. 그렇다면 특별한 재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원하는 것이 있다면? 원하는 것이 타당하다면 해줘야겠지. 그게 부모의 역할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럼으로써 약간의 희생을 치러야 하고 노후를 담보로 해야겠지만 그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빌리의 아빠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큰아이가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고 싶다고 강력히 요구하는 바람에 살짝 그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때에 이 책을 보게 되어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주변에서 이 영화를 추천하기에 아이들과 함께 봤었다. 중학교 교과서에도 나왔다기에 더욱 뿌듯한 마음으로 봤는데 마지막 장면(거의 마지막인지 완전한 마지막인지는 모르겠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본격적으로 발레를 배우기 위해 발레학교로 떠나는, 빌리와 아버지가 가방을 들고 허름한 동네 한가운데 난 길을 걸어가는 장면이었지 아마. 앞으로의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묻어나는 빌리의 표정, 아들이 어려운 발레 학교에 입학해서 기쁜 마음과 함께 앞으로 뒷바라지를 어떻게 할지 걱정이 교차하는 아버지의 표정이 떠오른다. 앞뒤로 이어진 길 위를 걸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 말이다.

 

  어느 나라나 비슷한 과정을 겪나 보다. 우리나라도 한때는 호황을 누리던 탄광산업이 새로운 산업의 발전에 밀려 탄광이 폐쇄되면서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떠났고 지금은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영국에서도 탄광을 폐쇄하는 절차에 들어가자 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탄광일을 하는 빌리의 형과 아빠가 파업에 적극 동참하면서 살림은 점점 궁핍해진다. 발레 선생님인 중산층을 비꼬는 그들의 모습에서 계층간 위화감이 느껴지는 동시에 속으로는 부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파업에 참여하다가 사측의 회유에 넘어간 사람들을 맹비난하던 빌리의 아빠가 아들의 발레 오디션 참가비를 벌기 위해 자신의 신념을 버리는 모습을 보며 과연 빌리의 아빠를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었다. 마침 노사가 타협을 해서 빌리의 아빠는 명분도 잃지 않고 일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배신자라고 비난받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마음을, 부모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빌리의 형도 말로는 발레를 하겠다는 동생을 못마땅해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이다. 가족이니까.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훔치던 장면이 떠올라 책을 읽으면서도 역시 그 장면에서 눈물이 핑돌았다. 어쩌면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부딪치며 힘겹게 적응해야 할 빌리를 보며 그보다 더 험난한 길을 가고자 하는 딸이 오버랩되어 감정이입이 됐는지도 모른다. 버거운 현실을 헤쳐나가기도 힘든데 자식을 위해 어쩌면 자신의 인생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빌리의 아빠에게서는 우리 부부가 오버랩되었다. 발레 오디션을 보러 가서 인터뷰 할 때 심사위원의 질문이 꼭 내게 하는 질문 같았다. "빌리를 전적으로 뒷바라지 하시겠습니까?" 무엇이든 일단 시작하면 전적으로 뒷바라지 해야 하는 것, 그게 우리 부모의 역할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원작이 있는 소설을 영화화하는 것과 반대로 영화를 소설화하는 것은 모험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감동적인 영화로 인정받고 성공한 영화라면 더욱 더. 사실 소설을 읽으면서도 소설에 빠져 읽었다기 보다 영화 장면을 떠올리며 읽었다. 그래서 이게 잘 되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만약 영화를 안 본 사람이 책을 읽는다면 어떨까. 잘은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는 게 더 감동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책을 읽었더라도 영화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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