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몬 라
빅토르 펠레빈 지음, 최건영 옮김 / 고즈윈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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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기억이란 믿을 만한가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분명 교직을 이수했건만 무슨 과목을, 어떻게, 어떤 내용을 배웠는지 기억이 까마득하니 말이다. 물론 내가 그 분야에서 일을 했다면 지금과 같은 생각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예전에 배웠던 것들을 새록새록 떠올리며 현장에서 싸우고 있었겠지. 그러나 그와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일을 했고 한동안 그 사실은 잊혀졌다. 그런데 희안하게 딱 하나 떠오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스푸투닉호'라는 단어다. 아니, 스푸투닉호의 의미도 아니고 그 뒤에 숨겨진 냉전 시대의 상황도 아닌, 단지 그 단어에 대한 기억 뿐이라니, 나도 내가 한심하다. 어느 과목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나이가 연로하신(분명 정년퇴임한 교사가 아닐까 싶다.) 교수님이 낮은 소리로 강의를 하시는데 이 말만 꽤 여러 번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는 도대체 저게 뭐길래 저렇게 자꾸 강조를 하나 싶었다. 당시만 해도 책도 많이 읽지 않고 역사나 정치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으니 그게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러다 아이 키우면서 다양한 책들을 읽고 역사와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 뒤에 숨겨진 여러 정황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스푸투닉호의 거창한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으며 왜 그렇게 교수님이 그 말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참 일찍도 이해했고 지금은 쓸모도 없지만.

 

  책을 읽자마자 아주 오래전의 그 스푸투닉이 떠올랐다. 바로 오몬 라가 그러한 우주비행사를 꿈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치르는 일련의 고생과 희생이 대개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뉴요커가 극찬한 이유가 순전히 '작품성'에만 기인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즉 오론 라 개인의 역사이기 이전에 소련이라는 나라의 비열함과 허구성을 고발하는, 그야말로 시대정신을 담았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더 의미있는 갈채를 받았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원래 보여지는 그대로를 아름답게 보여주는 책은 그닥 환영받지 못하는 법이다. 그 뒤에 숨어 있는 의미를 끄집어내서 진실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욕구가 들게 만드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게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권력의 집요함과 허무함, 그리고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진짜로 유리 가가린이 우주로 나갔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설마 그건 사실이겠지). 마찬가지로 달이라는 곳에 꽂아놓은 성조기가 진짜 달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설마 이것도 사실이겠지). 이쪽 말을 들어보면 그런 것 같고, 저쪽 말을 들어보면 또 그 말도 맞는 것 같으니까. 그런데 빅또르 뻴레빈은 소설이라는 장치를 이용해서 체제의 모순과 허구성을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미국의 달 착륙 사실에 쏟아지는 그 숱한 의혹을 가지고 새로운 소설을 쓰는 누군가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어쨌든 마지막 부분의 반전은 소설에 대해 잘 모르는 나조차도 감탄사가 나오기에 충분했다.

 

  어느 사회든, 어느 조직이든 집행부만 알 수 있는 사실들이 있다. 그렇기에 정치인들이나 정부 관료들이 나와서 어떤 발표를 할 때도 과연 저들이 말 하는 것 중 얼마만큼이 진실일까 궁금한 경우가 있다. 아무도 진실을 모르는 '일'이 있을까. 예를 들면 천안함 사건 같은 경우, 누군가는 진실을 알고 있을 텐데 진짜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진실일까, 아니면 이면의 또 다른 진실이 있는 것일까.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여타의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추측하는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하기도 하다. 이 소설에서 우주 비행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방송국 사람들까지 알고 있을 정도라면 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는 얘긴데, 그렇다면 비밀이 새어나갈 위험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도 된다. 그래서 대개는 그처럼 알면 안되는 사람들은 '사고'가 나게 마련이고. 그래서 사람들은 권력을 가지려고 그토록 노력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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