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트라우마 - 어느 외교 전문기자가 탐색한 한미관계 뒤편의 진실
최형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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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을 보면 중국으로부터 왕이나 세자책봉을 인정받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는 스스로 중국의 속국이 아니었다고 위로하지만 그걸 보며 의미상으로는 속국이었음을 느끼곤 했다. 실질적으로 정국을 따로 운영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중국의 신임을 받기를 원하는 상황을 보며 꼭 그래야만 했을까 싶다가 당시 국제정세가 그랬으니 어쩔 수 없었겠지라는 상반된 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그런데, 현대사를 돌이켜보니 그때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은 착각(이라고 말하면 좋겠지만)이 든다. 박정희가 5.16쿠데타(이 용어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나만의 기우일까.)를 일으키고 미국의 인정을 받으려고 했던 점이나 전두환이 12.12로 정권을 잡은 후 마찬가지로 미국의 인정을 받으려 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국민들이 과연 그들은 미국의 인정을 받았는지를 끊임없이 캐물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미국이 둘을 공식적으로 대통령으로서 인정해줬더라면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이려고 했던 것일까. 거기에 더해 5.18 민주화 항쟁 당시에도 미국의 승인이 있었는지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것을 보며, 만약 미국의 승인이 있었다면 그 후에 어떻게 대처할지도 의문이다. 물론 그런 의심의 기저에는 당시 군을 움직이는 주체가 미국이었기 때문에 그 문제에 집착하는 것을 안다.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인정받는 문제는 그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조선시대의 상황을 보며 한심하게 생각했던 일이 사실은 지금도 형태만 약간 달리할 뿐 비슷한 양태를 띠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하긴 어디 그 문제만 그런가만은, 이럴 때마다 역사는 결국 되풀이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낄 뿐이다.

 

  불과 60년 전의 문제가 아직까지, 그리고 언제가 될지 모르는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을 생각하면 현재 우리의 판단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 새삼 깨닫는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힘을 조금이라도 보태서 해방이 되었다면, 당시 분단되지 않았다면, 아니 전쟁만 일어나지 않았다면 우리의 역사는 엄청 달라졌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한국전쟁을 미국이 방조 내지는 의도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었었고,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지금의 행동을 보면 어느 정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북을 자극한 것이 아니냐 내지는 북의 조짐을 알고도 모른 척 한 것이 아닐까라는 의견이 있는데, 저자는 여러 근거를 들며 그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한쪽의 말만 듣고 진실을 알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 문제만큼은 저자의 말이 충분히 일리가 있어 보인다. 당시만 해도 한국이라는 나라는 미국에게 그다지 중요한 나라도 아니었고 많이 신경쓸 여력도 없었다는 말은, 상당부분 이해가 간다. 당시의 국제상황을 보건대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그때만 하더라도 미국이 세계의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명분에 치우쳐 있기 전이었을 테니까.

 

  미국을 비난하고 미워하면서도 미국에 상당부분 의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저자도 그것을 알기에 이 기회에 미국을 제대로 알고 우리의 나아갈 바를 정확히 하자는 의도에서 해방을 전후해서부터 지금까지의 미국을 파헤쳤을 것이다. 그런데 읽으면서 뒷부분으로 갈수록 약간 불편했다. 북한과의 관계에서 미국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는 듯하면서도 한국의 입장은 간과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미국이 북한과 휴전협정을 맺은 당사국이라고는 하지만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다. 아무리 미국이 한국에 주둔하는 자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미국은 제3자 아닐까. 즉 우리가 북한에 대해 취하는 입장과 미국이 취하는 입장이 동일하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헌데 저자는 우리가 취한 행동, 특히 김대중과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햇볕정책이 잘못되었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기는데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전쟁을 원하지 않는 마음이 아무렴 우리만 할까. 물론 그렇다고 북한의 행동을 이해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어떤 때는 북한이 우리의 보수 정권을 엄청 규탄하면서도 돕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다만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이 북한과 타협해야 하는 상황이 미국보다 더 많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참여정부시절 북한을 두고 미국과 마찰을 빚을 때 미국의 유해발굴을 위해 돈을 주듯 우리도 이산가족의 아픔을 위해 돈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고 접근했어야 한다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여하튼 앞부분은 미국의 의도에 집중하며 읽었다면 뒷부분은 거기에 덧붙여 말이 통하지 않는 북한과의 관계를 어찌하면 좋을지(그래서 갑갑하긴 했지만)에 집중하며 읽었다. 적어도 북한과의 문제에 있어서 통미보다는 우리가 주도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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