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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1770년 ㅣ 작은 역사 1
정승모 글, 강영지 그림 / 보림 / 2012년 5월
평점 :
지상이든 지하든 빈틈이 없는 곳, 서울. 지금의 모습만 보아온 우리들로서는 인왕산에 올라 경치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던 정선의 마음에 공감하기 쉽지 않다. 압구정과 광나루 그림을 보아도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하긴 동탄 신도시가 들어오기 전 그 길을 거의 매주 다니면서 지금의 모습을 상상이나 했던가. 어차피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니 예전 모습을 그려보려 너무 애쓰지 말자. 어차피 계속 변해서 지금의 모습도 몇 백 년 후에는 역사 속에 남을 것이니 말이다.
조선 후기의 문화가 가장 발달했다는 영조시대에 가장 중심부였던 서울 아니 한양의 모습을 요리조리 자리를 옮겨가며 보여준다. 지금까지 대개의 책들이 한양하면 으레 임금의 생활 위주로 보여주었는데 여기서는 그야말로 한양의 거의 모든 부분을 보여준다. 그래서 부제를 '작은 역사'라고 했나 보다. 커다란 흐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1770년 정월 대보름를 맞는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보여주는 것. 그러나 그것 또한 역사다. 사실 역사라고 하면 대개 임금을 중심으로 한 고위층들의 권력 다툼을 생각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일부의 사람들에 해당되는 일일 뿐이다. 그런데도 큰 흐름을 이야기할 때면 어쩔 수 없이 그런 방식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책도 있어서 반갑다.
'영조'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탕평책과 사도세자, 노론, 정순왕후다. 그러면서 주로 당쟁의 심화에 초점을 맞춘다. 그것 때문에 사도세자가 죽었고 후에 정조도 힘들었으며 정조가 죽은 후 모든 개혁 정책이 원위치로 돌아가는 일이 발생했지만 여기서는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육조 거리의 모습과 성균관에서 생활하던 유생의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북촌의 어느 양반집과 남촌의 어느 생원집의 모습도 보여준다. 많은 사람이 알다시피 당시만 해도 한강 북쪽에 세도가들이 살고 남쪽은 새로 한양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사람들이 살아다는 점만 보아도 앞일은 모르는 것이다. 아니 거시적으로 보면 당연히 드러나지만 그 안에 있으면 미시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게 우리들이다. 언제나 신흥세력들이 생기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그들이 힘을 얻는 것,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렇게 돌고 도는 것 아닐런지.
본문의 내용 중에 '병풍 앞에서 살다가 죽으면 병풍 뒤에 눕는다.'라는 글귀가 나오는데 그걸 보는 순간 어쩜 이렇게 정확하게 표현했을까 싶었다. 곳곳의 삶을 보여준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양반위주의 생활이긴 하다. 그래도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당시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림책판형이라고 우습게 보면 안된다. 내용도 (판형에 비해)풍부하고 그림도 옛 그림의 느낌을 충분히 살려서 1770년으로 잠시 여행하는데 제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