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앤 올 에이지 클래식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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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도서관(방학이지만 학교에 나오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조용히 하라는 말도 못하는 이곳 도서관은 아이들에게 일종의 휴식공간이다.)에서도 꿋꿋하게 읽고 집에 가자마자 할 일도 미룬 채 새벽까지 다 읽고 잠들었다. 어린 시절 만화를 보았기에 이미 결론이 어떤지, 중간에 어떤 이야기들이 있는지 알고 있는데 무엇이 이 책에 빠져들도록 했을까. 만약 읽자마자 글을 썼다면 상당히 감상적인 이야기가 많았을 텐데 밤이 지나고 낮이 되니 이성을 되찾았다. 덕분에 나중에 쓴 글을 보며 부끄러워할 일은 줄어들었지만 온전한 마음을 전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빨간 머리 앤> 만화를 보았듯이 나도 그랬다. 저절로 노래가 흥얼거릴 정도로 친숙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꼬박꼬박 챙겨보는 만화는 아니었다. 그런데 희안한 것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동생도 이 만화를 엄청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이 만화를 보며 좋았던 것은 무엇보다 아름다운 배경이 아니었나 싶다. 봄이면 자연이 싹트는 과정이 보이고 벚꽃과 사과꽃이 만발한 곳에서 앤이 빨간 머리를 휘날리며 뛰어다니는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러니까 나는, 그리고 동생은 그런 자연을 동경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며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오는 묘사가 나를 다시 설레게 했다. 길 옆으로 나무가 우거져 아치 모양을 이루고(생각만 해도 낭만적이다!), 집 뒤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면 작은 숲이 나오다가 어느 순간에는 배가 다닐 정도로 충분하지만 그다지 크지 않은 호수가 있는 곳, 바로 내가 꿈꾸는 곳이다. 물론 그곳에서 살기에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마릴라와 매튜가 과수원을 하는데 사실 과수원(목장도 마찬가지다.)이라는 곳이 보기에는 낭만적이어도 일이 오죽 많은가 말이다. 바느질도 해야 하고 겨우내 필요한 땔감도 준비해야 하고 저장식품까지 직접 만들어야 하니 쉴 틈이 없겠다. 시대적 배경이 1900년대 초라는 사실을 이럴 때 느낀다. 옷도 직접 만들어 입고 여자는 배울 필요가 없다고 느끼며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조차 낭만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게다가 캐나다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내가 상상하는 모습이 더 낭만적으로 각색되는지도 모르겠다.

 

  한번 말을 시작하면 온갖 상상을 덧붙여 이야기를 하는 앤의 모습이 떠오른다. 책에서도 입을 열었다 하면 한 페이지는 후딱이니 말이다. 마릴라처럼 냉철하고 상상의 여지가 없는, 무뚝뚝한 사람이 앤의 말을 듣기가 참으로 괴로웠을 것이다. 가끔 딸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날 있었던 일을 쫓아다니며 이야기해서 귀찮아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대화법을 적용해서 처음에는 잘 들어주고 공감도 해주지만 차츰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웃음만 짓다가 급기야 먼저 일어나거나 '아직도 할 말이 남았어?'라는 말을 하곤 했다. 마릴라가 이야기할 틈을 주지않고 자신의 이야기만 하던 앤이 나이가 들수록 말수가 적어지는 걸 보며 내가 더 아쉬웠다. 그리고 마릴라가 앤이 자라는 것이 한편으론 대견하면서도 섭섭해 하는 마음이 충분히 이해된다. 나도 그랬으니까. 아니,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대부분 그런 이중적인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기분을 솔직히 표현는데 서툴다. 특히 단점이나 과거의 안 좋은 기억을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 그래서 때로는 그것이 상처가 되어 안에서 조금씩 자라기도 한다. 그런데 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고아원에 있을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하거나 다른 사람이 자신의 기분을 나쁘게 했을 때는 거기에 즉각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솔직히 이야기한다. 물론 기저에 그런 어린이의 말을 들어주는 어른들이 존재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마도 앤의 그러한 성격 때문에 바르게 자랄 수 있었을 것이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실수를 하는 앤, 그래서 실수조차 배움이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다.

 

  마지막에 장학금을 받아서 대학에 갈 기회를 얻지만 포기하고 에이번리에 남기로 하는 걸 보며, 만약 예전 같았으면 그 아까운 기회를 버린 것에 안타까워 했을 테지만 이번에는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기 때문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의 시각이 하루 아침에, 그것도 특별한 이유없이 달라질 리는 없을 테니까. 그건 아마도 때로는 야망보다 사랑이 더 소중하고 지킬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앤의 어린 시절 뿐만 아니라 내 어린 시절의 추억까지 간직하고 있는 초록지붕 집을 나 또한 떠나고 싶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기숙사에 들어가서 지내는 앤의 모습을 보니 곧 기숙사에 들어갈 딸이 생각난다. 그러면서 딸도 앤처럼 열정과 낭만을 가지고 생활했으면 좋겠다. 물론 100여 년이 넘는 차이와 문화적 차이 때문에 앤처럼 밖에 나가 실컷 뛰어놀 수는 없겠지만. 여하튼 내 어린시절을 추억하며 그 때 느꼈던 설렘을 만나는 시간인 동시에 엄마가 되어 앤을 바라보는 시간-그래서 약간 혼란스럽기도 했다-이었다. 그러니까 앤에게 나를 대입하기도 했다가 마릴라에게 대입하기도 했다가 나중에는 앤에게 딸을 대입하며(신기한 건, 이때는 마릴라에게 나를 대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읽었다고나 할까. 그러면서 이런 책을 읽으며 감동하고 꿈꾸는 감성이 아직 내게 남아있다는 사실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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