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마을의 거대 바위 창비아동문고 266
김종렬 지음, 홍지혜 그림 / 창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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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띠지에서 교과서에 작품이 실렸다는 글을 본 듯하다. 띠지는 오자마자 버렸기 때문에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한 발 뒤로 물러서는 이유는, 분명 2011년 2학기 초에 교과서에 실린 작품을 정리하며 본 줄 알았으나 이 책의 초판이 2011년 10월이라고 하니 내가 착각했다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어째서 이 책을 보자마자 예전에 나온 책을 다시 펴낸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림이 일단 옛스러웠고(그래서 개정판이라고 생각했다.) 교과서에는 오래전에 나온 글만 실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런지. 아니면 교과서에 실린 작품만 다른 책에 실렸던가. 확인할 길이 없어 답답하지만 어쨌든 교과서에 이런 작품이 실리다니 우리 교과서도 많이 발전했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교과서에서 반말을 가르칠 순 없다며 제목을 존댓말로 바꾸는 그런 판국에 다분히 현실 비판적이고 기성세대를 비꼬는 그런 이야기를 싣다니 대단히 고무적이다.

 

  우선 표제작 이야기를 계속 하자면, 읽으면서 모 개그프로그램이 생각났다. 위급한 상황에서 해결책은 뒤로 한 채 탁상공론만 일삼는 윗분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각자 자신의 의견을 내놓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론만 내세우는 건 별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각자 자신의 의견이 맞다고 우기는 모습이란. 결국 인간이 자연을 거스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판타지를 섞어서 오싹하게 들려준다. 비가 와서 무너져 내리는 산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지난 여름이 생각난다.

 

  어쩌면 현대 사회는 사상누각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는 듯한 <모래 계단>이나 개성이란 존재하지 않고 모두 똑같은 사람으로 만들려는 현실을 비판하는 <모두 다, 웃는 가면> 등 이야기 하나하나가 현실을 잘 묘사했다. 모든 사람이 그 신분에 맞게 똑같은 가면을 쓰고 다닌다면 어떨까. 주인공이 가면을 쓰지 않고 나가자 모든 사람들이 비난을 하지만 주인공은 가면의 의미를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가면으로 가린다고 그 사람의 본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유괴범도 웃는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결국 나쁜 짓을 했다는 사실을, 왜 다른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아마도 아무 생각없이 관습을 따랐기 때문일 것이다. 가면으로 가린다고 해서 그 뒷모습까지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섬뜩하게 들려준다.

 

  큰 부자는 하늘이 내리고 작은 부자는 근면이 이룬다는 말이 있다는데 <아빠가 가져온 나무 상자>의 노신사의 말이 오버랩된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들도 그 도깨비 상자를 통해 부자가 되었다는. 책은 오래 전에 읽었고 큰 부자는 하늘이 내린다는 말은 오늘 아침에 들은 말인데 이렇게 연결되다니 아무래도 그 말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나 보다. 그렇더라도 이왕이면 현우 아빠나 엄마가 근사한 소원을 말해서 상자를 시험해 보았으면 하고 바랐다. 아직도 요행을 바라는 마음을 버리지 못했나 보다. 물론 작가는 그런 요행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은근히 도깨비가 소원을 이루어줬다고 말하긴 하지만. 이렇듯 모든 이야기가 현실에서 있을 듯 없을 듯한 이야기지만 살짝 기대하게 만들면서 또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재미와 의미 모두 놓치지 않았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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