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한 주스 가게 - 제9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푸른도서관 49
유하순.강미.신지영 지음 / 푸른책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남편과 아들은 말귀가 어둡다. 똑같이 딸의 이야기를 듣고 있어도 꼭 다시 물어봐서 중계방송을 하게 만든다. 처음 몇 번은 이야기해 주지만 나중에는 짜증이 나서 아예 대꾸를 안 하곤 한다. <올빼미, 채널링을 하다>의 유성이처럼. 남편은 이어폰 때문에 가는 귀가 먹어서 그렇다지만 내가 보기엔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일 확률이 크다. 유성이가 나중에 말귀가 어둡다는 말을 듣지 않게 된 것도 모두 상대방의 말에 집중했기 때문이지 채널링을 해서가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 속 이야기가 들리는 이상한 경험을 했던 것도 결국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애썼기 때문일 것이다. 뭐, 모두 그런 경험을 하는 건 아니니 유성이가 특별한 경험을 한 것은 맞지만.

 

  청소년 소설이나 동화에서 보면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은 성격이 못 됐다거나 아예 다른 아이들이랑 어울리지 않고 성적에만 연연하는 인물로 그려지곤 한다. 그래서 공부를 좀 못해도 성격이 좋다거나 발전 가능성이 많은 중간 정도의 인물이 주인공으로 많이 그려진다. 공부 잘 하는 아이가 주인공이라면 무조건 성적 때문에 고민하는 인물로만 그려진다. 왜 그들의 마음에는 신경쓰지 않는지, 솔직히 불만이었다. 그런데 <프레임>에서는 지금까지와는 약간 다른 입장에서 그들을 바라봐서 신선했다.

 

  민준과 성택은 학교에서 기대를 걸 만한 학생들이다. 지금까지 소설에서 그려졌던, 공부만 잘 하고 성격이나 태도는 엉망인 그런 인물이 아니라 모든 것이 무난한 학생들이다. 게다가 성적이 떨어져서 고민하거나 이성친구 때문에 방황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소재로 인물의 내면심리를 잘 그린 이야기다. 그래서 민준이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가 성택의 상황에 안타까워하기도 했다가 민준 엄마의 행동이 나쁘다고만 말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드는 등 온갖 인물에 나를 대입해 보았다. 그만큼 심리묘사가 곳곳에 잘 들어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옳은 게 어느 것인지는 알지만 현실적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는 얼마나 용감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민준의 행동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을 뿐더러, 그걸 알기에 성택도 민준에게 오히려 고마웠다고 하는 것일 게다. 그런 경험과 생각 덕분에 전에는 보이지 않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그들의 상황이 보이는 것, 이것이 바로 성장 아닐런지. 우리는 모두 프레임에 갇혀 산다고 한다. 문제는 내가 만든 프레임에 갇힐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갇히기도 한다는 거지. 그리고 후자의 경우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다른 사람이 판단하고 규정지은 것을 마치 내가 그렇게 한 것처럼 착각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스스로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청소년들도 이 이야기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하려나.

 

  나머지 두 이야기는 '이야기'로는 재미있지만 내 아이가 경험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그런 이야기다. 이 무슨 이율배반적인 심보인지. 학교에서 정학을 맞고도 별로 잘못했다거나 반성하는 기색이 없던 건호가 엄마 가게를 맡으면서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이, 다행이다 싶다. 나쁜 일에서 손을 떼려면 상후와 민기에게 호된 신고식을 치러야 할 일이 남아있지만 이야기에는 나오지 않아서 나는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 그것도 다행이다. 진이가 콩가루 집안에서도 건강하게 잘 살고 있어서 또 다행이다.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나이가 열 살 밖에 차이나지 않는 새엄마인 누나와 지내다 아빠마저 돌아가셔서 이젠 둘 만이 남겨진 상황에서도 어쩜 이리 마음이 예쁜지. 환경이 암울하면 대개 그 속에 있는 인물도 판에 박은 듯이 암울하게 그려지는 다른 이야기와 달라서 좋았다.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낙천적으로만 보지 않아서, 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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