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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하기 보고서 - 은지와 호찬이 1 ㅣ 사계절 저학년문고 53
심윤경 지음, 윤정주 그림 / 사계절 / 2011년 10월
평점 :
대체로 여자 아이가 '말'에서는 남자 아이를 훨씬 앞서간다. 그래서 오빠와 여동생의 경우 큰아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분명 오빠인데 동생이 말로 앞서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전적으로 불리한 것은 오빠이니 왜 안 그렇겠나. 사실은 그게 아닌데 설명은 안 되는 큰아이의 심정이 어떨지 짐작이 간다. 이 책에 나오는 은지의 말투를 보니 전형적인 여자 아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같은 여자인 엄마도 이처럼 답답한데 남자 형제라면 오죽할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은지는 오빠가 있지도 않은데 만약 오빠가 있었으면 엄청 고생했겠다 싶다.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특히 아이들은 사물을 자기 위주로 판단한다. 그래서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자기에게 불리한 상황은 쏙 빼놓고 이야기한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이야기할 때도 그렇고 반대로 집에서 있었던 일을 학교에서 이야기할 때도 그렇다. 누군가가 아이의 말만 듣는다면 못된 부모라고 욕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은지도 그런 면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아이다. 엄마한테 혼났다는 사실만 일기에 쓰고 왜 그랬는지는 비밀이라고 하는 것까지는 그런대로 넘어갈 수 있지만 '사실대로 다 쓰면 엄마는 또 화를 내면서 고치라고 할 것'이라고 쓰니 엄마 입장에서는 어떤 심정일지 말 안해도 안다. 그렇다면 이제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떨까.
엄마 입장에서 보자면 모든 일은 알림장을 제대로 쓰지 않은 것 때문에 일이 시작되었다. 물론 은지 입장에서는 그것보다는 엄마가 내복만 입혀서 밖에 내쫓은 사실 자체만 가지고 엄마에게 따진다. 어떤 일에 있어서 일방적인 것은 절대 없다. 은지와 엄마가 모두 화가 났다는 사실은 둘 다에게 조금씩 잘못이 있다는 얘기다. 내복바람으로 쫓겨 났는데 하필이면 속으로 좋아하는 남자 친구를 만났다면 얼마나 창피할지, 그래서 얼마나 화가 날지 이해 못하는 바가 아니다. 또한 퇴근해서 한참 있다가 화원이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 준비물 사야한다고 이야기하고 그마저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으면서 엉뚱한 걸 샀다고 일방적으로 떼를 쓰면 얼마나 황당할지 이해 못하는 바 아니다. 그러니 이쪽 얘기를 들으면 그게 맞는 것 같고 반대쪽 얘기를 들으면 또 그게 맞는 것 같을 수밖에.
어쨌든 두 모녀의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나서 도저히 안 되겠기에 화해하기 보고서를 작성하지만 그 마저도 쉽지 않다. 서로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의 잘못만 지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씩 대화를 하다 보니 드디어 엄마도 잘못을 인정하고 딸에게 사과하자 은지도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다. 아마 은지 입장에서는 어른인 엄마가 사과를 한다는 사실에 상당히 고무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어른이 어린이에게 사과한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솔직히 말해서 속으로는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도 표현이 쉽지 않다. 그건 바로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게다. 은지처럼 어려서부터 대화하고 사과하는 데 익숙해진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그닥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은지와 엄마가 앞으로 싸우지 않느냐면 그건 절대 아니다. 또 그게 당연한 거고. 다만 이처럼 하다 보면 상대방의 입장도 헤아릴 줄 알게 되니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게 된다는 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책을 읽으며 그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