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는 날 - 오늘의 일기 보림 창작 그림책
송언 글, 김동수 그림 / 보림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심코 책장을 넘기니 그림일기가 나온다. 딱 세 줄의 글과 함께 제목이 있다. '내 이름은 구동준'과 '내 이름은 김지윤'. 아, 두 명의 일기가 한 면씩 나오는 구성이구나. 그러면서 천천히 읽어나간다. 입학 통지서를 받고 식구들이 어느새 입학을 할 나이가 되었느냐며  기특해 하는 장면. 아이가 처음 입학할 때는 특히나 긴장되고 걱정이 앞섰던 때가 떠오른다. 여전히 해가 저무는 줄도 모르고 노는 동준이. 딱지치기, 구슬치기, 공차기를 했단다. 아직도 구슬치기를 하는 아이들이 있구나. 한때 구슬과 딱지가 유행하던 때가 생각난다. 그리고 지윤이는 병원 가서 홍역 예방주사를 맞는다. 시력 검사도 하고. 맞아, 홍역 예방주사 확인서가 꼭 있어야 했지. 첫 아이 때는 학교 가기 전에 시력 검사를 해야 한다는 누군가의 조언을 듣고 시력 검사를 받았던 것 같기도 하고. 여전히 밖은 추운 겨울 날과 설날을 지내고 예비 소집일이다. 학교 선생님을 처음 봤는데 무섭단다. '입학실 날엔 코 닦을 손수건을 꼭 달고 오라'는 선생님의 말을 읽다가 퍼뜩 정신이 든다. 앗, 요즘엔 코 닦을 손수건 달고 다니지 않는데, 뭔가 이상하다.

 

  그제야 그림을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오른쪽 그림은 요즘의 학교가 맞는데 왼쪽 그림은 어딘가 이상하다.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아, 이제야 그림이 제대로 들어온다. 통장 아저씨가 통지서를 전해주는 그림에는 연탄을 실은 리어카가 지나가고, 오른쪽 그림에는 아파트가 있어 경비실 아저씨가 입학 통지서를 갖다 준다. 여기서부터 오해가 생겼던 것이다. 아직도 연탄을 때는 집이 있으니 왼쪽 그림에서 연탄을 보고도 그냥 넘겼던 듯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영화 포스터가 지금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러고 보니 왼쪽은 지금의 아이들 기준으로 보자면 옛날 입학하기 전의 모습이고 오른쪽은 전형적인 오늘날 여자 아이의 모습이 나온다. 다리가 있는 텔레비전이 보이기 시작하고 한 방에서 엄마는 바느질하고 형은 공부하고 한쪽에서는 실뜨기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사실 지금도 이렇게 사는 집이 있기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으나 자세히 보니 그 옛날의 증거들이 속속 눈에 띈다. 위에서도 언급했던 다리 달린 텔레비전이나 원기소, 오래된 잡지가.

 

  오늘날에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유치원을 졸업하지만 그 옛날에는 유치원이라는 과정이 없어서 마냥 놀기만 했었지. 간혹 공부에 관심 있는 부모들은 학교에 가기 전에 간단한 한글과 숫자 공부를 시키곤 했으나 그마저도 안 하는 집도 있었다. 그래도 동준이네는 형이 있어서인지 한글도 가르쳐주고 사과를 깎아서 숫자도 알려준다. 드디어 가방을 사는 장면. 왼쪽 그림을 보니 현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연히 들어온다. 지금은 영화 세트장이나 시골 재래시장에나서 볼 수 있는 가게 모습이다. 반대로 오른쪽은 여자 아이답게 온통 분홍색으로 치장된 방에 역시나 분홍색 가방이 놓여있다.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입학날이다. 이제 한쪽은 옛날 모습이고 다른 한쪽은 현재 모습이라는 걸 알기에 차이를 알 수 있다. 추운 날 운동장에서 입학식을 치르던 모습과 6학년들의 손을 잡고 실내에서 치르는 오늘날 입학식의 모습이.

 

  다른 반은 예쁜 여자 선생님인데 자기네 반 선생님은 할아버지라 싫다고 투덜대던 지윤이가 그래도 선생님이 그림책을 읽어줘서 괜찮다고 한다. 나 또한 나이가 많아도 그림책의 가치를 아는 괜찮은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준이의 꿈은 선생님이란다. 뭐, 그 시절 대부분 아이들의 꿈이 선생님이었으니까 특이할 것도 없다. 그리고 지윤이도  선생님한테 칭찬을 들었단다. 짝꿍도 칭찬을 들었다는 것으로 보아 아이들에게 잘못된 점을 지적하기 보다 잘한 점을 찾아내서 칭찬하는 좋은 구동준 선생님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왼쪽에서 펼쳐지던 이야기가 이 시점에서 오른쪽과 절묘하게 만난다. 마치 다른 시대에 같은 사건을 겪는 평행이론처럼. 지금까지 잔잔하게 읽혔던 입학하기까지의 과정이 갑자기 커다란 이야기가 되어 나타났다. 단순히 두 시대의 모습을 비교해 보여주는 책 그 이상의 재미와 감동이 밀려왔다. '참 좋은 구동준 선생님.'이라는 단 한 문장에 말이다. 전혀 다른 것을 설명하지 않지만 이 한 문장에 모든 의미가 들어있고 구성을 이렇게 잡은 이유가 한번에 이해된다. 한 문장의 힘이 이렇게 클 줄이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