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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이 물고 간 노루 꽁지 ㅣ 방방곡곡 구석구석 옛이야기 14
박영만 원작, 원유순 엮음, 이웅기 그림, 권혁래 감수 / 사파리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옛이야기에 나오는 범 혹은 호랑이는 대개 어수룩하다. 표지 그림에서도 눈만 커다란 것이 무섭다기 보다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진다. 곶감을 무서워하는 호랑이처럼 여기 나오는 호랑이는 방울을 무서워한다. 그런데 곶감을 무서워하는 호랑이는 단순히 곶감만 무서워하는데서 이야기가 끝나지만 여기 나오는 호랑이는 노루의 꽁지까지 물고 가는 바람에 지금의 노루 꽁지가 그처럼 뭉툭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즉 어수룩한 호랑이 이야기와 '이래서 그렇게 되었대요'식의 이야기가 합쳐졌다고나 할까. 게다가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는 식의 이야기까지 있으니 다양한 옛이야기를 한꺼번에 만난 듯한 느낌마저 든다.
우선 방울소리에 놀라 지레 겁먹고 도망가는 모습을 보고 어수룩한 호랑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호기심이 많기도 하다. 처음 보는 동물이 궁금해서 이것저것 물어 보니 말이다. 게다가 소금장수는 비록 몸은 약하지만 꾀가 많기 때문에 위험한 순간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기회로 이용했으니 호랑이에게는 이래저래 볼리한 상황이었다. 방울이 범을 잡아먹는 오르릉새라고 말해도 호랑이는 '용감'하기 때문에 다까이 다가갔으나 소금장수가 한 수 위였다. 오르릉새를 범의 꼬리에 잽싸게 매달았으니까. 호랑이가 용감하긴 했으나 호기심이 더 강해서 이런 상황을 자초했다.
보이지도 않는 꼬리에서 범을 잡아먹는 오르릉새가 소리를 내고 있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원래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더 두려운 법이다. 그렇게 도망가다 만난 노루는 범을 보고도 달아나지 않고 오히려 먼저 다가가 말을 건다. 어쩔 수 없이 호랑이가 무서워하는 물건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자진해서 호랑이를 데리고 간다. 노루의 꽁지를 물고 가는 호랑이 모습이라니. 어쨌든 소나무에 걸려 있던 방울 소리에 놀라 지레 겁먹고 도망간 호랑이 때문에 노루 꽁지가 지금처럼 짧아졌다나 뭐라나.
흔히 옛이야기는 교훈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야기에서 억지로 교훈을 찾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서운 호랑이가 골탕 먹고 어수룩하게 나오는 것도 일종의 은유가 아닐까. 무서운 존재를 곯려주고 싶은 백성들의 마음 말이다. 재미있게 웃고 기억에 남아 있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연상될 것이고 그러면서 어떤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비약이 너무 심했나. 그러나 옛이야기에는 풍자와 해학이 들어 있는 것은 확실하니 언젠가는 삶의 지혜로 되살아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옛이야기를 많이 들려주라고 하는 것일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