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필 무렵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32
이효석 지음 / 네버엔딩스토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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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을 무렵은 가을이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옷깃을 잔뜩 여미게 만드는 겨울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으니 읽을 때의 감흥이 꽤 사라진 뒤다. 한창 햇볕은 쨍쨍하고 공기는 건조한 전형적인 가을날에 문득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 생각났다. 왜, 가을이면 메밀꽃이 하얗게 피지 않던가 말이다. 게다가 당시 1930년대 작가들의 동화를 읽다가, 별다른 반전이나 강한 효과없이 잔잔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메밀꽃 필 무렵>이 그리워졌었다. 마침 그때 이효석의 작품이 실린 이 책을 읽었으니 우연치고는 참 신기하다. 

  항상 그렇듯이 어렴풋이 기억나는, 학창 시절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으면 이런 내용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생소하고 때론 낯설기까지 하다. 그러니까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주 단편적인 부분이었던 셈이다. 어째 모든 책이 하나같이 그런지, 원. 이효석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메밀꽃 필 무렵>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은 단편적이나마 여러 부분이라는 점이다. 봉평을 지나거나 그곳으로 여행 갈 때면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이야기, 다른 작품은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지나치게 이효석을 대표하는 작품이 이 책의 표제작이다. 

  그런데 이 책 덕분에 그의 다른 작품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이효석이라는 인물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인지 어떤 이야기는 이것이 소설이 아니라 수필이나 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작가와 주인공을 동일시하고 있었다. 특히 <들>에서 주인공은 왜, 무슨 일로 학교를 못 다니며 문수는 또 무슨 이유일까 궁금해서 작가의 그 시절을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분위기로 보아 개인적인 일은 아닌 듯하고, 그렇다고 80년대처럼 그런 이유는 아닐 테고,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궁금했으나 작가는 끝내 자연만 이야기할 뿐 별다른 인간사를 들먹이지 않는다. 모르긴해도 작가가 시대에 좌절했던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은 청소년이 주인공인 단편들을 모아 놓았다고 한다. 전혀 몰랐던 이야기가 대부분이어서 새로웠다. 물론 그래서 좋았다. 간혹 이야기가 어렵다고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것은 아마 내가 이효석이라는 작가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강미 작가가 써놓은 작품해설을 살짝 빌리자면 <들>의 경우는 초창기의 작품색과는 많이 다르다고 한다. 어쩐지. 말로는 들을 예찬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좌절과 고통이 배어나고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열망을 느꼈던 터다. 대신 <도시와 유령>은 작가의 사회비판의식이 짙게 느껴졌다. 주인공이 청소년이라고 해서 그것을 청소년소설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굳이 청소년소설만 읽어야한다고 선을 그을 필요 또한 없다. 즉 어떤 작품이든 읽어도 무방하므로 이 책이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모아놓았다는 것에 신경쓸 필요는 없다. 이효석의 좋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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