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 얘기 들리세요? - 아이들의 닫힌 마음을 여는 따뜻한 이야기
롭 부예 지음, 김선희 옮김 / 다른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존 어빙의 서문을 읽지 않았다. 작가 소개 또한 읽긴 했어도 그냥 글자만 읽었던 듯하다. 나중에 책을 다 읽고 나서 서문과 작가 소개를 다시 한번 읽으니 그제야 그 말이 유의미하게 다가온다. 읽으며 줄곧 이것이 소설인지 아니면 작가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쓴 글을 모은 것인지 궁금했던 터였다. 우리네 아이들이 쓴 글을 문집 형태로 낸 책이 있으니까 이것도 그런 종류일지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그러다가도 문체가 너무 안정적이고 내용도 아귀가 딱 맞는 것이 아이들 작품은 아니겠거니 싶기도 했다. 여하튼 그렇게 의문과 기대를 품고 다시 서문을 읽으니 역시 소설이었다. 아이들에게서 영감을 얻었더라도 전적으로 작가의 창작품이라는 글귀가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동 문학의 작품들을 탐독하고'가 무슨 의미인지 절로 다가온다. 처음부터 각자의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인데 제시카를 통해 테업트 선생님이 소개해 줬다는 책이 나온다. 바로 <열네 살의 여름>. 문득 책꽂이 어딘가에 꽂혀 있었던 기억이 나서 그 책 먼저 읽었다. 오래 전에 사 놓고 아직 읽지 않았던 책이었는데 이 기회를 통해 읽었다. 그러다 도서관에서 영미권 부분을 훑어 보다가 문득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와 <산사나무 아래에서>가 눈에 들어오길래 그 책들 먼저 읽었다. 헌데 뒷부분에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의 주인공인 제시를 이야기하고 인터뷰 부분에서 <그래도 내일은 희망>을 언급하는데 모두 내가 읽었던 책이라 어찌나 반갑던지. 특히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의 경우 책에 대한 정보를 들은 것도 아니고 제목을 들어본 적도 없는, 순전히 무언가에 이끌리듯 읽었던 책이다 보니 마치 운명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누구나 다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어린이들은 특히 심하다. 그래서 부모가 자기 아이 말만 듣고 상황을 판단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테업트 선생님의 반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다행히 독자는 한 가지 사건에 대해 여러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기 때문에 그나마 객관적인 눈을 가질 수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못 말리는 말썽꾸러기나 친구들을 이간질 시키는 못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 본인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했는데 여기서 피터와 알렉시아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결론은, 그들도 모두 똑같은 아이들이라는 것. 마음속에 아픔이 있거나 판단력이 부족할 뿐이지 그들이 본래 나쁜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피터도 나중에 자신이 던진 눈 때문에 테업트 선생님이 혼수 상태에 빠졌다며 자책하고 스스로를 벌 주고 있었다. 알렉시아도 자신의 잘못을 정확히 지적해 주는 선생님이 밉지만 그것이 관심과 사랑을 전제로 한 충고라는 사실을 알기에 변하려고 노력했다.

  각각의 아이들이 일기처럼 글을 쓰는 형식이기 때문에 자기의 환경에 대해 일일이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설명이 필요하면 간략하게 과거를 이야기할 뿐이다. 그래서 애나가 툭 하면 결혼 반지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때로는 뜬금없이 왜 선생님이 결혼 반지 끼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걸까 의아할 정도였다. 그러나 모두 이유가 있었다. 제시카도 마찬가지다. 계속 아빠 이야기를 하는데 뭔가 이상하다. 뭐랄까, 현재가 아닌 과거에 집착한다고나 할까. 아니 그 보다는 자신과 관련된 아빠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바라본 아빠를 판단하는 듯하다. 또한 지나치게 책에 집착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와 아빠의 이혼을 겪으며 아빠를 용서하지 못하고 심지어 자신마저 아빠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해서 책 속으로 도피했던 것이다.

  테업트 선생님이 혼수 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선생님은 여러 가지 일을 했다. 그동안 아이들이 변할 기회를 만들었다면 병원에 누워서는 아이들이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했다. 그것도 선생님이나 어른의 도움을 받아서 변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말이다. 게다가 아이들이 모두 변하고 나서-심지어 어른들도 변했다-교실로 돌아왔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존 어빙이 서문에서도 말하듯이 이 책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우연이 하나도 없다. 처음엔 우연인 듯하지만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억지스럽거나 부자연스럽지 않다. 잘 짜여진 양탄자처럼 씨실과 날실이 잘 맞물려 있다. 그래서 더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오랜만에 사람들에게 추천하고픈 책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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