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없는 동화책 창비아동문고 265
김남중 지음, 오승민 그림 / 창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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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자 없는 그림책은 봤어도 동화 없는 동화책이라니. 그래서 처음에는 하나의 소제목이려니 생각했다. 일부러 차례를 보지 않고 바로 동화부터 읽어가는데, 어느 순간-정확히 말하자면 태안의 기름 유출 사고를 의미하는 <마지막 손님>을 읽는데- 뭔가 이상하다. 갑자기 동화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 제목이 바로 그런 의미였구나. 그러면서 지금까지 읽었던 앞의 단편과 아직 읽지 않은 뒤의 단편이 연결되면서 생각이 한가지로 수렴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로 '김남중답다'는 것!

  두어 편의 동화를 읽기 전까지 김남중에 대한 생각은 '무겁다', '주제의식이 너무 강하게 드러난다'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썩 재미있지는 않다'는 마음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물론 <자존심> 같은 경우 재미있지만 어린이 입장에 선 동화가 아니라 어른의 입장에서 어린이를 바라본다는 인상이 좀 더 강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불량한 자전거 여행>을 만나고 <속 좁은 아빠>를 만나면서 이 작가에게 이런 면도 있구나를 느끼는 동시에 유연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다시 예전의 작가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렇다고 전처럼 너무 작가의 목소리가 강하게 드러난다거나 무겁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문제를 피해가지 않으려는 작가의 강한 의지가 느껴지면서도 이야기는 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졌음을 느낄 수 있다. 이쯤되면 내가 지향하는 바와 일치한다. 현실을 외면하거나 비껴가지 않으면서도 지나치게 경직되거나 강하게 이야기하지 않는 것 말이다.

  동화란 아이들에게 대리만족과 희망, 그리고 때로는 나중에 혹시라도 부딪치게 될 문제에 대해 미리 생각하게 해주는 등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아이에게 동화를 읽히려고 하는 대개의 부모들이 생각하는 동화는 아무래도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기본적으로 아름다운 이야기,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이야기가 동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과연 그럴까. 어린이들은 아직 어리므로 세상의 모든 면을 알 필요가 없는 것일까. 한때는 동화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동심천사주의적인 시각이 대세였던 때가 있지만 지금은 골고루 필요하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들려줘야 할까의 문제가 남는다. 지나치게 비관적이지 않으면서도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으로 동화가 접근해야한다는 무거운 숙제가 남는다. 그 숙제를 김남중이라는 작가가 이렇게 조금 해놓았다.

  각박하고 힘든 현실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분명히 있음을 직시하고 그들을 돌아볼 줄 알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여기 있는 동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싶다. 그들의 문제를 풀어줄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또한 아이들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실은 어른도 마찬가지다.) 힘든 사람들의 상황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알고 있는 것과 아예 모르고 있는 것은 처음엔 차이가 없더라도 나중에는 확연히 차이가 날 테니까. 아마 그래서 작가도 이야기하기 힘든 주제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일종의 사명감에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결국 글을 썼을 것이다. 이 작가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라는 게 지금까지 그의 작품을 읽은 독자로서의 생각이다. 

  <그림 같은 집>을 읽으면서 그동안 누르고 있었던 어떤 것들이 다시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은 동화속에서나 일어날 법한데 이것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니 화가 나는 것을 떠나서 이런 현실에서도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좌절과 패배감이 느껴진다. 아무리 봐도 경찰 책임자는 사과하고 물러났어야 할 상황인데도 오히려 승승장구하는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나중에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까. 아마 후세에서는 '이런 시대도 있었단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을런지. 하긴 그나마 이렇게라도 제대로 평가한다면 다행이다. 오히려 별 일 아닌 것처럼 취급되는 상황이 더 암담할 테니 말이다.

  아이들도 어차피 사회 속에서 살아가므로 알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자칫 어른에게 들은 이야기를 가지고 자기 생각인 양 말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것도 결코 바람직하다고 생각진 않는다. 단순히 결과를 놓고 이야기하기 보다 과정에서 잘못된 부분이 무엇인지, 그리고 대안은 없었는지 등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키워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비판하는 것과 논리적으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는 것은 차이가 있으니까. 가끔 중학생인 딸도 현실을 무조건 비판하는 듯한 이야기를 한다. 그럴 때는 오히려 내가 현 정부를 옹호하는 이야기를 하고, 현실이란 그렇게 흑백으로 정확히 나눌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아무튼 약간 무거운 이야기에 암담한 현실을 비춰서 우울하지만 꼭 필요한 동화라고 생각한다. 어느 독자와 이야기 나눈 에필로그의 마지막 말이 이 책 속에 있는 모든 동화가 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른으로서 이런 현실을 만들었고 바꿀 힘이 없어서 미안하다는 말. 나도 그런 어른이라는 사실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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