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랑골 왕코와 백석이 상수리 큰숲 1
장주식 지음, 박영진 그림 / 상수리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고향인 시골 동네에는 골짜기마다 이름이 있다. 안골, 새미골, 대지골(돼지골인지 대지골인지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다.) 등등. 모르긴해도 바랑골도 있지 않았을까. 이처럼 이름이 낯설지 않은데다가 어린 시절에 집에서 소를 키웠기 때문에 읽으면서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다만 내가 회상한 어린 시절은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아, 내가 나이를 이렇게 많이 먹었단 말인가!)인데 반해 이 이야기의 배경은 구제역 사건이 일어났을 때이니 가깝게는 2010년 겨울이고 멀게는 불과 몇 년 전이다. 시골 동네에서 소가 자취를 감추면서 소를 키우며 일어나는 일은 그저 아득한 옛일 정도로만 생각했다. 지금도 천석이처럼 생활하는 어린이가 있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 것이다.

  천석이와 할아버지에게 왕코는 특별한 존재다. 어떤 것을 무의미하게 바라보는 것과 의미를 두고 바라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다른 식구들은 왕코를 그저 한 마리의 암소로 보지만 천석이와 할아버지는 특별한 존재로 인식한다. 그래서 다른 소들과는 달리 따로 떨어진 외양간에서 키우며 사료보다는 풀을 먹인다. 그야말로 예전 방식 그대로 키우는 것이다. 그런 왕코가 새끼를 낳았는데 천석이는 자신의 조카라고 명명하게 특별대접을 한다. 이름도 자신의 돌림자를 넣어서 백석이라고 지어준다. 사실 시골에서 소는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단순히 재산을 넘어서 한 가족으로 인식하곤 한다. 그래서 어른이라도 소를 파는 날이면 눈시울을 붉히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소를 키우며 그럭저럭 살아가는 천석이네에게 큰 불행이 닥쳐온다. 바로 이 농장이 구제역 대상지역으로 지목되면서 모든 소를 살처분해야 하는 것. 이제부터는 그동안 매스컴에서 보아왔던 많은 영상들이 오버랩된다. 애지중지 키웠던 소를 병이 걸려서도 아니고, 걸렸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모두 죽여야 한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게다가 그것이 거의 전재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들에게 그 소식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일 게다. 객관적 위치에 있는 사람도 소가 불쌍하고 농장 주인의 처지가 안타까운데 당사자들은 오죽할까. 그리고 여기서는 그 일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신경을 썼다. 안락사 시키기 위해 주사를 놓는 수의사들과 공무원들의 고충에도 눈길을 보낸다. 당시 안락사 시키는 주사약의 성분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했다. 말이 안락사지 실은 상당히 고통받으며 죽어간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것도 순전히 예산 때문에. 나중에는 살아있는 동물을 그냥 구덩이에 집어넣는 바람에 살겠다고 기를 쓰며 올라오는 동물의 모습이 보도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 일이 불과 몇 달 전의 일인데 마치 오래전의 일처럼 여겨진다. 아마 기억하고 싶지 않아 애써 외면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처럼 제삼자는 외면하면 되지만 가축을 기르던 사람들은 그럴 수도 없다. 결국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지. 기르던 가축들은 가슴속에 묻고 말이다.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들려주는 이야기, 그래서 더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허구라면 왕코와 백석이를 살려줬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음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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