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넬리 스테판 글, 앙드레 프랑소와 그림, 정지현 옮김 / 보림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글 작가도 생소하고 그림 작가도 생소한데 책을 펼치면 다시 생소한 인물이 쓴 서문이 나온다. 게다가 제목도 사람 이름이다. 이쯤되면 헷갈리기 시작한다. 처음에 서문을 읽으며 별 생각없이 서문을 쓴 사람이 글이나 그림 작가 중 한 명이려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그제서야 넷의 관계를 자세히 살펴본다. 그러니까 롤랑은 이 책의 주인공 어린이고 서문을 쓴 로베르 마생은 아트디렉터이자 작가란다. 로베르 마생의 서문에 '다시 출간했다'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프랑스에서는 많이 알려진 책인가 보다.

  롤랑이 그림을 그리고 '쨍'이라고 외치기만 하면 그것이 살아 움직인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누구나 그런 생각 한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실제로 어린이 책에서는-제목이 기억나지 않지만-그런 식의 이야기가 간혹 있다. 다만 좋은 의도를 가졌다기 보다 못된 친구들을 혼내주거나 자신의 누명을 벗는 일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그런데 롤랑은 아무리 봐도 그냥 그림을 그렸지 싶다. 물론 처음에야 지각해서 벌을 세운 선생님을 원망하며 혼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살짝 의심해 보지만 롤랑의 행동을 보아 그런 의도는 전혀 없어 보인다. 단지 심심해서 호랑이를 그렸고 '쨍'이라고 외쳤을 뿐이다. 또, 호랑이는 그냥 밖으로 나갔으니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
 
  여기서 선생님의 반응이 참 멋지다. 보통의 어른이라면 이게 무슨 짓이냐며 롤랑을 혼내고 호랑이를 내쫓았겠지만 선생님은 '여기 네 자리가 없다'는 말 한 마디로 모든 상황을 정리한다. 여기서 잠깐 우리네 문화와의 차이를 느낀다. 예전의 우리 정서였다면 아이와 호랑이를 혼냈을 테고 요즘, 그러니까 아이의 말을 경청해야 하고 나 전달법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요즘이라면 아마도 이것이 선생님을 얼마나 당황하게 하는지, 교실은 어떤 곳인지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처럼 단 한 마디로 아이의 마음과 상황을 인정해주면서도 한 단계를 뛰어넘어 해결하는 대화법, 정말 재미있다.(이것은 약간 딴 얘기지만 유은실 작가의 이야기가 그런 식이라서 처음에 엄청 열광했다. 물론 지금도 여전하다. 요즘에는 우리 작가들도 재치있고 유머가 넘치며 위트 있는 글을 많이 써서 그런 재미를 느끼곤 한다.)

  선생님이 다시는 '쨍'이라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으로 보아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도 다른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런 반응은 롤랑의 엄마도 마찬가지다. 다만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선을 그으며 이자벨에게 사과하라는 말을 덧붙일 뿐이다. 게다가 롤랑이 생명을 준 동물들이 나중에 모두 롤랑에게 돌아와서 함께 사이좋게 노는 것으로 끝난다. 다시 종이로 돌아가면 어쩌나 괜한 걱정을 했는데 다행이다. 롤랑의 행동이 아주 특별하고 괴짜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나오는 어른들은 그것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애쓰거나 오류를 지적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인다. 그것이 진정 어린이들이 바라는 것일 게다. 아마 어린이들은 매순간 이런 식의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현실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좌절하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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