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둘째의 친한 친구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떠나기 전에 친구들과 놀기로 되어있는데 우리는 시골에 다녀오느라고 놀 시간이 많지 않을 듯해서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친구가 약속 시간보다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다른 모든 친구는 함께 오랜 시간 놀았는데 우리 아이만 빠지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 사실을 나중에 알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둘째에게 원망만 들었다. 친구와 놀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날씨도 안 좋고 데려다 주기도 귀찮아서 억지를 부린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는 점을 시인한다. 마치 주인공의 엄마처럼 말이다. 모처럼 친구와 놀기로 약속했는데 엄마가 공부를 다 하고 가라고 막는다면 아이의 마음은 어떨까. 이번 한번만 봐 주면 안되나 싶다가도 지금까지 계속 이런 식이었을 것을 생각하면 주인공의 엄마처럼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죽했으면 저럴까. 아이들에게 속은 것이 어디 한 두 번인가 말이다. 그래도 다른 아이들이 모두 좋아하는 겐과 남자 대 남자로 약속했는데 그건 꼭 지켜야 하는 것이니 엄마가 좀 이해해 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든다. 하긴 그러면 이야기가 안 되겠구나. 주인공은 엄마가 자꾸 공부를 시키자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는 모습이 얼마나 웃긴지 모른다. 받아내림이 있는 뺄셈을 하면서 앞에 있는 숫자에서 안 빌려주면 어쩔 거냐고 억지를 부린다. 주인공은 심각한 상황인데도 웃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원. 엄마도 아이가 억지를 부린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나 같으면 이번만 봐준다며 그냥 보내줬을 것 같다. 그러니 항상 약속을 제대로 안 지키는 것이지만. 겐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다른 친구들과 노는 모습을 봐야만 하는 주인공의 마음은 편치 않다.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면 간단히 해결될 테지만 그 역시도 쉬운 일이 아니다. 사과라는 것도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하는 법인데 어영부영 하다 보면 시기를 놓치기 일쑤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엄마가 그 상황을 모두 알고 있고 엄마에게 투정을 부릴 수 있다는 점이다. 혼자 속으로만 앓고 있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뿐더러 마음의 상처만 더 깊어지는 게 어린이들이다. 그리고 또 하나 다행인 것은 엄마가 대신 사과해주겠다고 해도 주인공이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하는 부분이다. 만약 엄마가 해결해 주면 친구들에게 보여지는 모습도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도 계속 부모에게 의지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문제가 아주 바람직한 방법으로 해결되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아이 스스로 선택한 일이니 부모의 입장으로 읽는(아무래도 이런 경우는 자꾸 부모의 입장으로 읽게 된다.) 내가 다 기분이 좋다. 한 마디로 말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다 들어있으면서도 작위적이거나 훈계조로 이야기하지 않고 재미있기까지 한 괜찮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