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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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향인지 서향인지, 여하튼 어둠침침한 도서실에 분위기를 쇄신할 겸 장미꽃을 꽂아 놓았다. 물론 내가 사다 놓은 것은 아니고 어찌어찌 얻어다 놓은 장미다. 오늘 한 선생님이 시든 꽃잎은 따줘야 예쁘다며 벌어진 꽃잎을 따서 꽃병 주위에 흩어 놓고 묻는다. "이렇게 하니까 어때요?" "왜 꽃잎을 거기다 버리셨어요?" 이 선생님, 자지러진다. 선생님 딴에는 떼어낸 꽃잎을 운치있게 꽃병 주변에 배치한 것이란다. 그걸 버렸다고 표현했으니. 그 선생님이 말한다. "이과 맞구나!" 그렇다. 감성적 소양이 약간 부족한 이과 출신. 그래서 소설보다는 뭔가 얻을 게 있는 지식 정보책을 좋아한다. 아니면 팩트를 기본으로 하고 허구적 요소를 가미한 팩션은 '얻을 게' 있으므로 그나마 좋아하지만 순수한 소설은 그냥 시간이 남을 때, 또는 머리를 식힐 때 보는 정도로만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형광펜으로 표시를 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야기속에 푹 빠져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아무래도 어린이 책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동화는 많이 읽는데, 이 책의 주인공이 청소년이라서 지금까지 내가 읽던 종류의 책을 읽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때로는 혼자 킬킬대다가 어느 순간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이런 식의 이야기 방식이야 이미 많이 접했기에 새로울 게 없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건 여전하다.

  처음에는 고등학생이 임신을 해서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힘겹게 살아가는 이야기겠거니 했다. 솔직히 말해서 미혼모 문제가 심각하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딸 키우는 입장에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이야기하거나 문제점을 짚어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빗나가도 한참 빗나갔다.

  어차피 인간은 유한한 삶을 살고,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남들보다 일찍 죽는다는 것을 알고 보내는 삶은 어떨까를 넘어 도대체 삶이란 무엇일까, 무슨 의미를 갖고 사는 것일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매일 똑같은 삶을 사는 것 같아도 어쨌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자 노력하는 현재의 삶이 때로는 힘들고 지겹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이 무척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한계가 분명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현재를 열심히 사는 아름이를 보면서 인생은 양보다 질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래도 누군가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할 때 당사자와 그 가족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싶다.

  문득 아이들 고모부가 생각난다. 암 선고를 받고 투병중일 때 찾아뵈었는데 가족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것이 마지막 만남일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 순간 삶이란 무엇일까 싶었다. 우리는 대개 내가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을 열심히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럼 반대로 언제 떠날지 알면 열심히 살지 않을까. 그건 아닌 듯하다. 아름이는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인지하기 때문에 오히려 현재를 더 열심히 사는 것이다. 오히려 떠날 자신보다 남아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그 마음은 정말이지 이기적인 현재의 나로서는 대단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이유가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라는 글귀가 무척 가슴에 와닿기에 나름 흥분하며 이야기했더니 어떤 이는 말장난일 뿐이라고 일축해 버렸다. 글쎄, 그럴 수도 있겠다. 어차피 글은 말장난이니까. 그러나 그러한 글이 나중에는 사람들에게 읽히고 기억되면 경구가 되는 것 아닐까. 어쨌든 소설을 읽다 밑줄 쳐보긴 또 처음이다.

  어찌 보면 우울한 이야기만 있을 것 같지만 장씨 할아버지와 아름이의 대화 덕분에 수시로 웃을 수밖에없었다. 특히 방송 촬영할 때 할아버지가 인터뷰하는 장면은 어찌나 웃긴지 모른다. 마치 코미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분명 결론은 아름이가 죽을 텐데, 죽을 수밖에 없는데 이처럼 웃어도 되나 싶기도 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서 미래의 자신을 보고 반대로 아버지에게서 아들이 과거의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 슬프다. 처음엔 무슨 소린가 했다. 가타부타 설명도 없는 프롤로그를 아무 생각없이, 조금 갸우뚱하지만 조금 지나면 프롤로그가 이처럼 강렬하고 집약적으로 설명해주기도 드물다는 것을 안다. 소설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의 꼭 필요한 인물과 사건이 잘 어우러진, 감동적이고 그러면서도 삶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던져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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