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올해가 몇 년인지 모르겠기에 둘째에게 물었다. "올해가 몇 년이지? 2011년? 2012년?" 둘째 왈, "엄마는 그런 걸 항상 기억하려고 애써야 해?" 물론 아니다. 날짜도 아니고 일 년 365일을 같은 숫자로 쓰는 연도를 '올해가 몇 년이더라, 아하, 몇 년이지!'라고 되뇌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왜 그랬을까. 그건 바로 이 책을 읽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먼 미래도 아닌 2030년과 2060년 등 나도 살게 될(지도 모르는)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으니 이것이 현실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모호한 세계가 되어 버린 것이다. 판타지 책을 읽으면 유난히 읽는 속도가 느리다. 상상력이 부족한 탓도 있을 것이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완전히 이해해야 직성이 풀리는 탓도 있을 게다. 즉, 읽어 가다가 상황이 이해가 안 간다거나 조금 안 맞는 것 같다 싶으면 다시 앞으로 돌아가 자세히 읽는다. 무슨 시험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정확히 맞아야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으니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SF판타지를 읽는 동안은 두 세계를 사는 기분이다. 현실과 책 속 세계. 책을 읽는 동안은 완전히 그 속으로 들어갔다가 책을 덮으면 마주치는 현실 세계가 공존한다. 그래서 2030년인지 2011년인지 순간적으로 헷갈렸던 것이다. 블랙홀에서 유래한 듯한 타임 홀이 있어서 그곳으로 시간을 거슬러 갈 수 있다는 발상이나 그러한 과거로 가서 상황을 바꿔 놓으면 미래가 되돌려지는데 이때 아주 커다란 영향을 줄 일이라면 집단으로 같은 꿈을 꾼다는 발상이 재미있다. 아니, 흥미롭다. 대개의 SF에서는 과거로 가든 미래로 가든 조건은 상황을 바꿀 어떠한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데 여기서는 자주 과거를 바꾼다. 미래에서 온 사람들이 현재의 사람과 다시 과거로 가서 과거를 바꾸면 그로 인해 미래도 바뀌지 않을까, 그래서 미래에서 온 사람들의 존재가 불투명해지지 않을까라는 의구심 때문에 객관적 상황으로 받아들이느라 속도가 더욱 느려졌다. 현실의 아라가 과거로 돌아가 미래의 아라와 동일인인 홍나영의 정체를 파헤치고 홍나영처럼 되지 않기 위해 다시 자신의 과거를 바꾸고 아버지의 모습을 바꾼다면 지금까지 아라와 현성이네가 겪었던 일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진서가 애초에 타임 슬립을 한 최소영으로 돌아간다면 아라가 마주친 진서는 아예 처음부터 없었다는 이야기일까. 단순히 과거를 바꿔서 현재를 바꾸는 것까지는 많이 보았던 이야기지만 여기서는 다시 미래에서 현재로 와서 현재와 과거에 개입하는 것으로 한 발 더 나아갔다. 이런 식으로 계속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지금 현재 있는 사람들 중 진짜 현재를 살고 있던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기 위한 어떠한 방법이 있어야 한다는, 책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생각도 해본다. 마치 지구인 속에 끼어 있는 외계인을 식별해 내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처럼. 이미 이 작가의 다른 책을 통해 시간대를 옮겨 가며 여러 곳의 상황을 동시에 끌고 가는 방식을 접했기에 조금 익숙한 상태에서 읽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너무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서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과거의 필연을 바꾸는 것이 큰일이므로 조심하다가도 때로는 아주 아무렇지도 않게 필연을 바꾸는 모습은 약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또 어느 순간부터 그토록 아라와 일행에게 애착을 갖고 있고 인간적인 면을 보여줬던 가디언고의 교장은 사라지고 기술부장의 역할만 남았다든가 이 모든 일이 결국 GMO 식품의 부작용을 감추기 위한 거대 기업의 음모였다는 평범한 결론이 약간 아쉽다. 어쩌면 그래서 수긍이 쉬운지도 모르겠다. 전혀 듣도 보도 못한 병이 출현했더라면 전혀 터무니없는 공상과학소설로만 기억될 수도 있으니까. 여하튼 책을 읽는 동안 전혀 다른 세상에서 생활하다 온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