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면서 뿌듯함과 희열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러면서 이렇게 좋은 책이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기에 앞서 이런 책을 읽은 나 자신을 대견해 한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좋은 책이 우선이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니 웃기는 소리한다고 속단하지는 마시길. 여하튼 오랜만에 뿌듯함과 희열을 느끼는 책을 만났다. 이 시리즈의 책이야 진작에 읽었고, 여행(이 책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주로 역사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많았다.)을 떠나기 전에 미리 살펴보는 책으로 자리잡았는데 새로운 책이 나왔다니 안 읽으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문화재청장할 때 무슨 일을 얼마나 잘 했는지 모른다. 구설에 오른 적도 있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도 굳이 신경쓰지 않았다. 내게는 다만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의 저자로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차라리 문화재청장을 하지 않았더라면 구설에 오르지 않고 좀 더 좋은 이미지로 남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을 가졌는데, 이 책을 읽으며 보니 그게 아니다. 오히려 문화재청장이기에 가능했던 일을 많이 추진했다. 이래서 어느 분야든 잘 알고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하는가 보다. 경복궁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구구절절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경복궁과 자금성에 대한 이야기부터 내 마음과 어찌 그리 같은지. 자금성에 가서 느꼈던 것은 비록 규모는 우리의 경복궁과 비교도 안 될 만큼 거창하지만 섬세한 면에서는 우리가 월등히 앞선다는 사실이었다. 경복궁 곳곳에서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사였다면 자금성에서는 규모의 장대함에 대한 감탄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팔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라 규모보다는 섬세한 아름다움이 더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자금성에는 온 세계 사람들이 밀려들지만 우리네 경복궁은 한산하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을 뿐이다. 저자는 자금성과 경복궁의 규모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니까 당시 어느 모로 보나 중국이 동아시아의 중심국으로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국제적인 관례를 따랐을 뿐이라는 얘기다. 즉 왕궁과 황궁의 차이일 뿐이니 거기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겠다. 책을 보고 경복궁에 가거나, 설명을 들으며 갔을 때와는 또 다른 이야기들이 있다. 사실 처음에는 경복궁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해서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겠거니 했는데, 역시 아니다. 우뚝 솟아 있는 근정전의 뜻을 풀이하는 부분에서는 웃지 않을 수 없다. 아, 이 양반이 전 정부에서 일 했던 사람이었지. 정도전이 이름을 근정전이라 지으면서 했다는 이야기, 어쩜 이리 지금의 상황과도 맞는지. 이래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나 유효한 것이 고전이라고 하는가 보다. 반교리에 집을 짓고 살면서 들려주는 부여의 이야기는 어찌나 재미있는지 모른다. 마늘쫑을 바늘로 찔러서 뽑는다는 사실은 나도 처음 알았다. 엄마는 어떻게 뽑는지 물어봐야겠다. 내 기억으로는 잡아 뽑다가 끊어져서 저자처럼 머리만 먹었던 것 같은데 그게 근 이십 년 전 이야기니 지금은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특징을 역사적인 지식과 개인적인 이야기가 절묘하게 결합되어 유익하면서도 재미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전문적인 지식과 함께 현장에 직접 가서 느낀 감상을 곁들이고 있어서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때로는 저자처럼 깊은 지식이 없기에 내가 갔을 때는 그만큼의 느낌을 못 받는 경우가 있어 좌절하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가는 것보다는 훨씬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번 여름에는 이 책을 들고 선암사를 가야겠다. 저자는 봄꽃이 피는 계절이 좋다고 하는데, 이미 그 시기는 놓쳤고 내년을 기다리기에는 너무 머니까 여름에라도 가야겠다. 한 번 갔다오긴 했는데 그때 내가 본 것들과 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 중 겹치는 게 거의 없으니 새로운 마음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