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악몽을 꾼다. 물 속에서 뱀이 쫓아오는 꿈. 나에겐 이것이 악몽이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악몽일 것이다. 뱀은 그 정도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동물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싫어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다리도 없이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것 자체가 일단 좋지 않다. 게다가 뾰족한 혓바닥과 날카롭게 생긴 눈과 세모난 얼굴 모양 등 무엇 하나 친숙한 부분이 없다. 물론 이 또한 내가 뱀을 싫어하기 때문에 생트집을 잡는지도 모르겠다. 간혹 커다란 뱀을 목에 감고 나타나는 사람이 있으나 그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일 뿐이고(실은 그마저도 그닥 만지고 싶지는 않다.) 대개는 뱀을 만나면 기겁을 한다. 그런데 뱀을 키우고 싶어하는 아이가 있다. 설마. 그러나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작가의 딸이 어렸을 때 뱀을 키우고 싶어했단다. 이 세상에는 별별 사람이 다 있고 별별 희안한 일이 다 있으니 전혀 말도 안 되는 건 아니다. 특히 어린이는 어른이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것까지 키우고 싶어하니까. 우리도 둘째가 어렸을 때 쌀바구미를 키웠다. 만약 뱀을 키우자고 했다면 결사 반대했겠지만 쌀바구미는 적어도 징그럽지는 않으니 쌀바구미 두어 마리를 병에 넣고 쌀알 몇 개 넣어줬는데 며칠이 지나자 꽤 많이 늘어났던 기억이 난다. 주인공 여자 아이는 식구들을 쫓아다니며 쌀바구미보다 더 심한 뱀을 키우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면 어른은 안 되는 이유를 대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가 어른의 말을 그대로 듣지 않는다. 뱀을 얼마나 좋아하면 뱀의 특징을 고스란히 꿰고 있다. 그러면서 뱀을 위해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예를 들어 뱀은 사나워서 무조건 문다고 하면, 그것은 단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며 누가 건드리지 않으면 절대 물지 않는다고 이야기해 준다. 혀가 뾰족하다고 하면 그것은 단지 냄새를 맡기 위해 그러는 것이라며 역시 두둔한다. 즉, 뱀을 키우고 싶어하는 아이를 통해 뱀의 특징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림이 평면적이라 밋밋한데도 나름대로 재미있다. 곳곳에 숨어 있는 그림을 찾는 재미도 있고 어른이 뱀을 키울 수 없다는 이야기에 아이가 어떤 식으로 대처할까를 생각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잠자고 있는 아이 방에 빨간 뱀의 꼬리가 보이는 마지막 그림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뱀인형은 아이의 발에 눌려 있으니 인형은 아닐 테고, 방문이 열렸다 닫히더니 새로운 상자가 하나 생겼는데, 혹시? 아무래도 그런가 보다. 글에서는 말해주지 않지만 두 장의 그림에서 보여지는 변화로 내용을 유추해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림책이다. 창작그림책공모전 수상작이라더니 역시, 그림 '읽는' 재미가 쏠쏠한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