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그림책을 많이 보면서도 목욕탕을 소재로 한 책이 없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마 은밀한 곳이기 때문에 당연히 접근하지 못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러한 목욕탕을 소재로 한 책이 있다니, 일단 궁금하다. 과연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냈을까, 도대체 목욕탕의 모습을 어떻게 그렸을까 등등 궁금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아이들은 목욕탕 가는 걸 좋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깨닫는다.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목욕탕에 간 적이 별로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혼자 감당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잘 가지 않았던 것이다. 가더라도 하나씩 맡아서 가던가 여럿이 가서 아이가 사촌들과 어울려 다녔으니 내 기억 속에는 주인공처럼 지옥탕이라고 생각할 만한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둘째도 그런다. 이렇게까지 싫지 않은데라고 말이다. 그래서 만약 엄마랑 같이 여탕엘 갔는데 거기서 유치원 친구를 만난다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그제야 주인공의 마음을 이해한다.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소재인 목욕탕 가는 이야기를 가지고 이처럼 재미있게 보여주다니. 목욕탕에서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고스란히 보여진다. 탈의실에서 같은 반(유치원이겠지, 설마) 친구를 본 것부터 시작해서 샤워기를 틀었는데 갑자기 뜨거운 물이 쏟아져서 놀란 일, 눈에 샴푸가 들어가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고 머리를 감기는 엄마의 모습이 특별할 게 하나 없다. 그러나 재미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니까. 그리고 이제부터 진짜 지옥탕이라는 때 밀기. 어른이야 때를 밀면 시원하다고 느끼지만 아이들은 어디 그런가. 하지만 엄마는 엄마 기준대로 아이를 빡빡 씻긴다. 그리고 압권은 바로 다음. 종이를 펼칠 수 있게 만들어서 아이가 얼마나 막막했을지 충분히 짐작하게 만드는 장면이 펼쳐진다. 사실 이 장면 하나 때문에 지금까지 그저 그런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어졌다. 목욕을 마치고 먹는 음료수 한 잔에 모든 것이 풀렸는지 아이는 목욕도 괜찮은 것이라고 여긴다. 물론 깨긋하게 씻고 뽀송뽀송 말려서 기분이 좋은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음료수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들어갈 때는 지옥탕처럼 보였던 것이 나올 때는 목욕탕으로 '제대로' 보인다. 일상에서 만나는 특별할 것 없는 일을 이처럼 재미있게 보여주다니. 이 책이 첫 작품인 듯한데 다음엔 소소한 일상에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까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