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들으면 자동적으로 작가가 튀어나오는 작품들이 있다. 그렇지만 그 중 읽은 책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 책도 워낙 유명해서 읽었다고 착각할 정도다. 다만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는 책은 이름이 하도 복잡해서 지레 겁먹고 포기하니 읽었다고 착각하지는 않는다. <전쟁과 평화>를 읽으며 어찌나 정신이 없는지 가계도를 그리며 읽다가 그마저도 헷갈려서 중도에 포기했었다. 그 후로 톨스토이의 작품은 조금 읽었지만 <전쟁과 평화>는 다시 집어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연장선에서 이 책도 비슷했는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읽게 되었고 3권 모두 읽었다. 읽어보니, 재미있다. 이렇게 술술 넘어가는 걸 그땐 왜 그렇게 힘들어했을까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것은 완역이 아니라는 점, 즉 분량을 많이 줄였기 때문에 줄거리를 이해하는데는 문제가 없지만 작가의 섬세한 문장을 이해하기에는 약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안 읽는 것보다는 이렇게라도 읽는 게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게다가 심하게 축약한 것은 아니니까. 내가 종종 하는 말이 있는데 내 수준에는 이런 책이 딱이라는 것이다. 완역본을 힘들게 읽다가 포기하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다. 사실 원전의 맛을 느끼려면 완역을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얼마전에 <돈 키호테>를 읽으며 느꼈다. 축약본과 완역본을 함께 읽으니 확실히 차이가 났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처음 감동받았던 책은 이 시리즈의 <돈 키호테>였다. 책을 읽고 문체나 서술방식에서 감동을 받을 수도 있지만 말로 표현하지 못할 어떤 느낌에 감동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완역본의 <돈 키호테>를 읽고 작가의 재치와 문체에 대한 감탄이었다면 이 시리즈의 <돈 키호테>는 돈 키호테에 대한 연민이 감동으로 다가왔었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읽었느냐가 중요한 것 아닐까. 장장 세 권의 책을 단숨에 읽었다. 예전에는 러시아 사람들의 이름이 그토록 헷갈렸는데 이제 그 정도는 아니다. 각 인물들의 특징이 확연히 드러나고 서사가 긴박하게 전개되어서 구별이 잘 되었다고나 할까. 어느 나라나 한 집안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당시 사회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있다. 어차피 개인이든 가족이든 나라와 떨어져서 살아갈 수는 없는 법이니까.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비인간적이고 비상식적인 모습을 보고 자란 세 형제가 은연중에 자신들도 아버지의 피를 이어 받아 인간답게 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알렉세이만 다른 형제들과 구별된다. 그러나 그마저도 후속편에서 살인을 저지르게 될 뻔했다니 전혀 아니라고는 못하겠다. 그래서 도스토에프스키가 후속편을 쓰지 않은-아니, 못 쓴-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원래는 애칭을 많이 쓰지만(어떤 관계냐에 따라 애칭이 다르단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정식 이름을 썼다고 한다. 어쩌면 그래서 덜 헷갈렸는지도 모른다. 만약 친밀도에 따라 부르는 애칭이 달랐다면 그거 쫓아다니느라 애먹었을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이야기에는 유독 죄와 살인이 많고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게 드러난다. 애초부터 종교에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는 나로서는 공감하기 힘든 부분이다. 이래서 사람은 문화적인 영향도 크다고 하는가 보다. 그런데 그런 책도 자꾸 보니까 이제 조금 이해가 되고 공감이 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