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사계절 1318 문고 66
황선미 지음 / 사계절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간혹 일반 소설 작가가 자신의 청소년 시절을 되새기며 쓴 글을 읽곤 한다. 한때는 그에 대한 거부감이 꽤 있었다. 어린이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어린이문학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괜히 서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마음에서 약간은 자유로워졌다고나 할까. 작가는 안에 있는 이야기, 즉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담아두고 지금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쓸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 후기에 보면 안에 품고 있다가 그걸 외면하고는 도저히 넘어갈 수 없어서 글을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흔히 읽는다. 황선미 작가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이제 처음 청소년소설을 쓰면서 우선 자기 안에 있는 이야기부터 정리를 해야만 했나 보다. 그래야 다음에는 진짜 지금 여기 있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쓸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멋대로 생각해 본다. 

 한창 개발붐이 일던 때, 그러나 서민들은 여전히 피폐한 삶을 살던 시절,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이 강한 가난한 집안에서의 딸이란 집안일을 하고 동생을 돌보는 역할이 가장 우선시되었다. 남동생과 나이 차이도 많이 났지만 워낙 남녀차별을 하지 않던 부모님 덕분에 '달걀프라이를 해도 아버지와 장남만 먹었다'는 이야기가 그저 책 속에나 존재하는 것으로만 알던 내게 연재 엄마는 이해하기 힘든 인물이다. 물론 이것도 책 속에 존재하는 이야기지만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라는 생각을 하니 자꾸 소설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꼭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주변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니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다.  

 장남인 연후는 엄마가 가장 의지하는 인물이다. 아버지가 있지만 가장의 역할을 제대로 못해서인지 그야말로 존재감이 거의 없다. 어쩌면 그래서 더 아들에게 의지하는지도 모르겠다. 딸에게 모지락스럽게 굴다가도 아들의 말에 순응하는 모습이 지금의 생활에서는 많이 낯설다. 그러나 이것도 우리의 생활모습의 변천사다. 외삼촌네 얹혀 살며 사촌에게도 괜한 미움을 받는 연재가 과연 어떻게 그 상황을 극복할까 궁금했다. 굴러들어온 돌의 입장인 연재가 극적으로 아이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거나 혹은 재순이의 얄미운 행동이 결국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외톨이로 만들어 버리는 고소한 상황을 은근히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그런 건 그야말로 소설 속에서나 존재하지 현실에서는 힘의 방향이 그처럼 갑자기 변하지 않는 법이다. 둘을 화해시키면서도 여전히 라이벌로 남기는, 그야말로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으로 매듭지었다. 

 판자로 대충 지어서 키만 껑충한 꺽다리 집에서 다섯 식구의 삶은 힘겨워보이지만 그래도 가족이 함께 있기에 견딜만 하다. 그래서 연후를 다른 집 양자로 들이라는 제안조차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것일 게다. 그 속에서 연재는 아무리 엄마가 야단을 치고 자신에게 독하게 굴어도 이제 엄마를 이해하겠다는 생각 대신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성장하는 것이리라. 연재 주변에 그래도 힘을 주는 병직이 삼촌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잘 헤쳐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황선미라는 이름 때문에 책을 내면 사람들은 일단 관심을 갖는다. 그만큼 이미 어린이문학에서는 굳건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작가다. 이제 청소년소설에 발을 내디뎠으니 앞으로는 <마당을 나온 암탉>에 버금가는 책으로 독자를 즐겁게 하길 기대한다. 사실 이 책은 대단히 환호할 만큼의 책은 아닌 듯하다. 특히 처음 나오는 은행에 색을 입히는 장면, 요즘의 청소년 독자는 그게 무엇인지, 무엇에 쓰이는 건지 알기나 할까. 지나간 시절의 것들을 모두 알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으며, 또 그걸 모른다고 책을 읽는데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황선미 작가의 첫 청소년소설이라 기대를 하고 집어들었는데 처음부터 너무 생경한 이야기라 당황했을 뿐이다. 어쨌든 그녀가 그리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어떨까. 작가의 이야기가 아닌 그녀에게서 나온 지금의 청소년들 이야기를 얼른 듣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